쓰나미가 지나간 마을에 올레길이 났다.
이 한 문장을 쓰고 1주일이 흘렀다. 문장은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꾸역꾸역 밀려오는 파도처럼 생각은 자꾸 안으로 파고들었다. 바다는 어떻게 저토록 무심할 수 있는지, 살아남은 자들의 미소는 왜 저리 슬픈지, 폐허였던 땅에 길을 내는 일은 어떤 생의 의지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제주올레 자매길 ‘미야기올레’ 개장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가 일본 미야기(宮城)현에 올레길 2개를 냈다. 이름하여 미야기올레다. 7일 게센누마·가라쿠와(気仙沼·唐桑) 코스가, 8일 오쿠마쓰시마(奥松島) 코스가 잇달아 열렸다. 올 초 21번째 규슈올레 코스가 열렸으니, 제주올레로선 일본에 자매길 23개를 거느린 셈이다. 자매길은 ㈔제주올레가 직접 코스를 선정하며 간세·리본 같은 상징을 공유한다. 길은 길을 만나 또 다른 길을 낳는다지만, 제주올레의 사례는 각별하다. 일본이 공들여 모시는 길이어서다.
제주올레 자매길 미야기올레 개장 #2011년 쓰나미 휩쓸었던 마을 2곳 #37년마다 대재앙 되풀이되는 운명 #쓰나미에도 사람들 마을 못 떠나고 #폐허 디디고 일어서 일상 이어나가
미야기올레 개장 행사는 요란했다. 현(縣: 우리나라의 도)지사와 일본의 유명 아이돌 스타가 참석했다. 21번이나 열렸던 규슈올레 개장식 땐 없었던 소동이다. 일본 유력 매체 대부분이 개장 행사를 보도했고, 우리 정부도 박용민 센다이(仙台: 미야기현 최대 도시) 총영사가 2박3일 동행하며 성의를 표시했다.
개장 행사가 유난히 소란스러웠던 이유는, 그 아름다운 해안길을 걷고서도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와 대개 포개진다. 올레길이 쓰나미가 할퀸 땅을 구석구석 헤집고 다녀서다. 제주올레가 밝힌 “치유와 상생의 길”이라는 의의는, 안타깝게도 바다가 삼켰던 길 위에서 공허하게 흩어졌다. 이 통곡의 길에서 우리는 웃으며 걸을 수 있는가. 아니 그래도 되는가. 시끌벅적했던 개장 행사 말미에 잠깐이라도 희생자를 기리는 의식을 치렀으면 그나마 마음이 편했을까. 혹여 우리는 당신의 불행을 구경하려 길을 나선 것은 아닐까.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가슴이 저렸다.
쓰나미를 견디며 사는 사람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18초. 규모 9.0의 강진이 일본 동해 130㎞ 지점에서 발생했다. 뒤이어 최대 높이 10.35m의 파도가 일본 동북 해안을 덮쳤다. 이 한 번의 파도가 1만845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일본 총무성). 올레길이 들어선 두 마을도 피해 지역이었다. 게센누마시(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는 1434명,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시(오쿠마쓰시마 코스)는 1152명이 죽거나 사라졌다. 두 마을의 40% 가까이가 바다에 잠겼었다. 지금의 마을은 쓰나미가 닿지 못한 언덕에 새로 세워진 것이다.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들은 원래 풍경이 아니다.
쓰나미(津波)는 이름처럼 포구에 밀려온 큰 파도를 가리킨다. 아무리 파도가 높아도 사람의 영역에 미치지 않으면 쓰나미가 아니다. 쓰나미가 사람과 바다의 관계를 품은 단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이번에 안 건 또 있다. 쓰나미는 이들 갯마을에 저주 같은 손님이었다. 쓰나미는 오랜 세월 정기적으로 마을을 찾아왔다. 정확히 37년에 한 번꼴이었다.
마을마다 쓰나미가 올 때 여기까지 도망가면 살 수 있다고 전해오는 피신처가 있었다. 대부분 신당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바다가 불쑥 일어서면 여기 사람들은 마을 뒤편 신당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가는 제 집과 제 밭과 제 배와 제 가족과 제 이웃을 내려다보며 용케 지킨 제 목숨에 감사했다. 바다는 이렇게 꼬박꼬박, 바다에 기대어 사는 목숨들을 거둬 갔다. 한 번 쓰나미가 지나가면 한 세대는 무사히 바다에 빌어 붙어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마을은 이어졌다. 길고도 서러운 마을의 유래를 들은 뒤에야 나는 그 끔찍한 일을 겪고서도 고향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에도(江戸)의 부엌’. 오래전부터 도쿄(東京) 일대에 해산물을 댄 이들 갯마을을 이르는 말이다.
미야기올레를 걷는 건 상처를 보듬는 길이 아니었다. 자연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삶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미야기올레는 제주올레와 가장 닮은 길이었다. 서명숙 이사장이 길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제주도도 일상적인 재난지역이잖아. 태풍이 해마다 쓸고 가도 사람이 살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제주도나 여기나 신당이 많다. 재앙을 업으로 아는 삶에게 기도는 최후의 힘일 테다.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가 끝나는 지점 앞바다에 서귀포 외돌개를 닮은 선돌이 우뚝 서 있다. 이름이 오레이시(折石), ‘잘린 바위’다. 16m 높이의 대리석 바위인데 1896년 발생한 쓰나미에 바위 꼭대기가 잘려나갔다고 한다. 오레이시가 내다보이는 갯바위에 드러누웠다. 파도가 몽돌 해안을 들락이며 경쾌한 소리를 냈고, 훈훈한 바람이 귓가를 간질였다. 갯바위 틈에서 구절초 닮은 들꽃이 흔들렸다. 한숨 자고 싶어졌다.
여행정보
현재 미야기현의 방사능 수치는 서울보다 낮다. 다만 미야기현 해산물은 아직도 수입이 금지돼 있다. 센다이 공항에서 게센누마시는 자동차로 약 3시간, 히가시마쓰시마시는 약 1시간 30분 걸린다.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와 오쿠마쓰시마 코스 모두 10㎞ 길이다. 쉬엄쉬엄 4시간이면 족하다.
게센누마·히가시마쓰시마(일본)=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