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눈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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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눈이 오는 날이면 버선발로 달려나가고 싶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박용철의 시엔 이런 귀 절도 있다.
-눈이 어리게 아장거리는 애기 같이 비척 여 올 때/나는 가슴을 풀어놓아 이를 맞습니다.
이 시인들이 요즘 눈이 펄펄 내리는 정경을 보면 어떤 시를 쓸지 궁금하다. 가슴을 풀어놓고 맞을 눈도, 버선발로 맞을 눈도 우리 주위엔 없다.
며칠 전 서울 불광동 지역에 내린 눈은 산성도가 환경 기준치의 무려 10배나 되었다. 환경청의 조사였다. 서울대 직물학과 김준호 교수가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내린 눈을 조사한 결과는 10배의 10배, 그러니까 산성도가 기준치의 1백 배를 기록하고 있었다.
눈은 이제 아름다운 자연의 숨결을 떠나 한낱「공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그보다 더 실감나는 말이 있다. 1983년 캐나다의「로버트」환경청장관은『산성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환경오염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형태의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 곳곳에서 삼림이 죽어 가는 현상은 오래된 일이었다. 생태학자들은 그 원인이 바로 산성비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 냈다.
요즘 한창 공장을 짓고 있는 중국의 중경에 내린 비는 산성도가 PH3이나 되었다. 식초의 시큼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산도다.
산성비란 수소이온 농도(PH)5·6이하의 강한 산성을 갖는 빗물을 말한다.
증류수는 PH7. 그 수치가 하나 (PH1) 내려갈 때마다 산성은 10배로 늘어난다. 공장·자동차등에서 내뿜는 유황 산화물 등 오염물질이 대기 속에서 산화하면 유황 염·초산염 등으로 변한다. 이것이 빗속에 녹아 들어가 산성비나 산성 눈이 된다. 벌써 19세기후반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영국에서 처음으로 산성비가 보고되었다.
바람에 국경이 없듯이 산성비에도 국경이 없다. 「국제공해」라고 불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성비나 눈도 우리 자체의 공해와 멀리 중국대륙에서 불어오는 공해바람이 섞여 빚어진 현상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제 공해의 문제는 개탄의 단계를 지났다. 공해방지는 하루가 급하게 우리의 목을 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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