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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탐색

한복 입기는 놀이 … ‘제멋대로’ 입어야 한복이 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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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가 있는 진짜 이유는 미국 사회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디즈니랜드를 구경하면서 자신들의 현실이야말로 디즈니랜드스럽다는 것을 망각한다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에는 일본 형사가 독립투사를 고문하는 모습의 디오라마(모형 설치)가 있다. 일제의 악행에 분노하는 동안, 대한민국에서도 오랫동안 고문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가려지고 만다.

리얼리티 사극 벌어지는 #연극적 공간이 된 고궁 #한복의 미래는 세계화 아닌 #놀이화·콘텐트화에 달려

독립기념관의 디오라마는 마치 디즈니랜드처럼 이 땅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것을 가리켜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simulacre)라고 부른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이미지.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할까. 달을 가리킬 때는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진실은 달도 손가락도 아닌, 그 사람의 등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가 저기를 가리키면, 오히려 그 사람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속지 않는 길일 수도 있는 법이다.

얼마 전 종로구청은 전통한복이 아닌, 국적 불명(?)의 한복을 입은 사람은 고궁에 무료입장 시키지 말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화재청에서는 몇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일로 인해 또다시 ‘한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어떤 네티즌들은 가슴을 드러낸 조선시대 여성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이것이야말로 전통한복이다’라고 하면서 이런 처사를 조롱하기도 했다. 과연 한복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 이전에 한복을 입은 사람에 한해 무료입장을 시켜준다는 고궁은 무엇인가를 먼저 물어보자. 고궁은 조선시대에 왕이 살던 곳이다. 물론 지금은 왕이 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왕국이 아니라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궁은 영국의 버킹엄 궁이나 일본의 황거(皇居)와 다르다. 그러므로 고궁은 문화유산이지 청와대나 정부청사와 같은 현재의 정치적 공간이 아니다. 이를 혼동하면 안 된다.

서울 경복궁에서 퓨전한복을 차려입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종로구청은 이들의 궁궐 무료입장 불허 방침을 추진했다가 논란을 낳았다. [연합뉴스]

서울 경복궁에서 퓨전한복을 차려입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종로구청은 이들의 궁궐 무료입장 불허 방침을 추진했다가 논란을 낳았다. [연합뉴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고궁은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소이다. 그런 점에서, 일단 역사적 의미는 차치하고, 그곳은 조선왕조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수문장 교대식 등 리얼리티 사극이 날마다 펼쳐지는 연극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가 한복인 만큼, 이러한 연극에의 자발적 참여자인 한복 착용자에게 무료입장 정도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두고 뭐라 할 일은 전혀 아니다. 아무튼 고궁에서의 한복 입기는 조선시대의 코스프레이자 실감 나는 문화유산의 분위기 살리기로서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직시할 것이 있다. 다시 한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고궁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하나로 엮어서 고궁에서 한복 입기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보자. 이 대목에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한복은 이제 생활복도 의례복도 아니고 놀이옷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한복을 가장 많이 입는 이들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사극 등을 통해 문화 콘텐트로서의 한복을 체험한 젊은 세대이다. 이들에게 한복입기는 놀이이다. 이런 현실에서 한복의 생활화와 세계화 주장은 망상이다.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 아니면 주제넘은 제국주의적 욕망의 표출일 뿐이다.

물론 근래 새로운 디자인의 한복이 많이 등장하고 일상에서 한복을 입는 경우도 늘어나지만 이것이 한복의 생활화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젊은이들의 하위문화로서 자발적인 쾌락과 차별화된 취향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답은 한복의 놀이화이다. 이미 젊은이들은 그렇게 한복을 입고 있다. 그리고 한복의 놀이화는 한복의 생활화나 세계화보다 훨씬 더 싹수가 파랗다. 놀이를 결코 우습게 보지 마라. 나는 한복의 미래가 생활화나 세계화 같은 국수주의적 발상이 아니라 놀이화와 문화 콘텐트화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복은 제대로가 아니라 ‘제멋대로’ 입는 것이 좋다.

그런데 무료입장 여부 논쟁에 가려진 고궁에서 한복 입기의 진짜 비밀은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고궁이 거기에 있는 이유는, 아니 거기를 진짜 왕궁이라고 믿고, 거기에 맞게 한복을 갖춰 입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은 고궁 바깥도 조선시대와 그리 다르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은 아닐까. 디즈니랜드에 있는 백설공주의 성이 진짜 성처럼 보여야 하듯이, 고궁은 진짜 왕궁인 것처럼 보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소품이 전통한복이라고 믿는 것은 아닐까.

보드리야르는 이런 말도 했다. 우상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거기에 그렇게 세워져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상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우상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는 욕망뿐. 그래서 그것은 기실 결핍의 기호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없는 것은 왕이 아니라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결핍의 기호로서 고궁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연극은 실감 나게 해야 하는 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극과 현실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왕궁의 존재를 너무 진지하게 믿으면 공화국에 대한 반역이 된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이 되는 해이다. 광화문을 바라보는 우리의 등 뒤에 있는 것은 공화국인가, 왕국인가. 고궁에서 한복 입기의 진짜 의미는 이 물음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