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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양 급한 중국, 금리 올리며 '포치' 방어 포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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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이강 중국인민은행 총재가 위안화 약세에도 경기 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미국과의 무역 마찰로 인해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다. [연합뉴스]

이강 중국인민은행 총재가 위안화 약세에도 경기 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미국과의 무역 마찰로 인해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다. [연합뉴스]

중국인민은행이 다급해졌다. 미국과의 무역 마찰로 경기 둔화 위험이 커지자 경기 부양을 위해 돈줄을 더 풀 기세다. 위안화 약세와 자금 유출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인하까지 시사하고 나섰다.

무역마찰로 올 성장률 6.6% 전망 #경기부양 위해 금리 인하 내비쳐 #이강 “중국, 금리 조절 공간 충분” #류스진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도 #“포치 주장은 시장원리 무시한 것” #달러당 7위안 방어 포기 힘실어

이강(易綱) 인민은행 총재는 14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30 국제은행 세미나’에서 “미·중 무역마찰이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과 경기 하방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며 “중국은 금리 정책이나 지급준비율(지준율)을 조정할 충분한 정책적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지준율 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인민은행은 15일부터 대형 상업은행과 외자은행의 지준율을 14.5%로 1%포인트 낮췄다. 시장에 7500억 위안(약 123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민은행이 지준율을 내린 것은 올해 들어 네 번째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기준금리 성격인 ‘1년 만기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것이다. 기준금리 성격의 1년 만기 대출금리는 2015년 12월 이후 연 4.35%에 묶여 있다.

중국은 지준율 인하 등을 통한 통화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등 돈줄 죄기에 돌입한 미국 등 주요국과는 반대의 행보다. 그런 중국이 기준금리 인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며 미국과의 거리를 더 벌리려는 건 무역마찰의 충격이 경기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다.

인민은행의 걱정에는 이유가 있다. 12일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부과했거나 논의하고 있는 보복 관세 등을 모두 고려하면 첫 2년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최대 1.6%의 손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경제성장률 하락도 불가피하다. IMF의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전년 대비)는 6.6%, 내년은 6.2%다. 지난해 성장률(6.9%)에 못 미친다. 이  행장은 “인민은행의 경기 예측 결과도 IMF와 비슷하게 나왔다”고 밝혔다. 경기 둔화가 가시화하는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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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준금리 인하는 인민은행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카드다. 경기 둔화를 막을 수는 있지만 주요국이 긴축으로 방향을 튼 가운데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커진다. 유동성이 흘러넘치면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기업대출은 더욱 부풀어 오를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기업 부채는 이미 GDP의 160%에 달할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위안화 약세다.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에 돈이 풀리면 위안화 약세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위안화 가치는 최근 6개월간 미 달러화 대비 9%가량 급락했다. 금리 인하는 위안화 가치 하락세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다. 중국이 불문율처럼 여겨왔던 ‘포치(破七·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위안대 아래로 떨어지는 것)’ 방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1달러=7위안’은 그동안 인민은행의 최후 저지선으로 여겨졌다. 위안화 가치가 이 아래로 떨어지면 자본 유출이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15일 인민은행이 고시한 위안화 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0.0034위안 낮은 달러당 6.9154위안. 마지노선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포치’를 용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듯하다. 유융딩(余永定) 전 인민은행 정책위원은 최근 중국 증권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민은행이 자본 수지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는 한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위안보다 떨어지더라도 인민은행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류스진(劉世錦)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도 최근 인터뷰에서 “포치나 바오치(保七·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7위안으로 지키는 것)를 주장하는 의견 모두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환율 메커니즘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강 총재가 통화정책을 펼칠 때 국내 상황이 가장 우선순위에 놓인다고 밝힌 것은 환율을 방어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힌트”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이 총재가 자율변동환율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위안화 약세에는 더욱 무게가 실리는 눈치다. 이 총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위안화 가치는 안정적인 범위내에 머물고 있으며 유연한 환율 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상황에 맞게 움직인다면 위안화 가치가 흔들리더라도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이 때문에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달러당 7위안 선이 무너질 것으로 전망한다. JP모건은 12월 말 달러당 7.01위안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9월에 위안화 가치는 더 떨어져 달러당 7.19위안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15일(현지시각)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둔 미국 입장에서는 위안화를 더 약하게 만들어 경기 부양에 나서려는 중국이 곱게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신들은 섣불리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정작 위안화 약세를 두려운 눈길로 지켜봐야 하는 곳은 한국이다. 최근 원화와 위안화 동조화 현상이 심화하는 만큼 위안화의 자유 낙하가 이어지면 원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서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한국과 중국 경제의 상관성이 높은 데다 원화가 위안화의 대체 통화로 여겨지면서 동조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위안화 약세는 원화 약세의 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 연구원은 “지나친 약세는 도리어 중국 경제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중국이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일정 수준에서 위안화 환율 관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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