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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의 슬픔이 새겨져 있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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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호 32면

책 속으로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
이응준 지음
민음사

시인·소설가·영화감독. 여기다 덧붙인다면 산문가. 더 세밀하게 간다면 북한문제 전문 작가? 이런 이력의 이응준(48)씨의 네 번째 시집이다. 목화는 꽃 이름만으로는 밋밋하고 불투명하다. 나무 목(木), 꽃 화(花). 그저 나무에서 피는 꽃이다. 시인은 그 이름에서 “재가 되어 사그라지는” 영혼에 “상처로 새겨진 문양”을 읽는다. 표제시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에서다.

고압으로 충전된 듯한 자의식, 여전히 시적 자아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소년 의식, 지는 목화처럼 스러진 청춘, 그렇게 떠나간 사랑…. 이씨의 새 시집을 더듬다 보면 이런 이미지들이 남는다. 김광규 시인은 짧은 추천사에서 “눈 부릅뜨고 귀 기울여야 겨우 읽어낼 수” 있는 텍스트, 정현종 시인은 “이응준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시인인 것 같다”고 평했다.

‘멀리서 얼굴을 감싸다’ 같은 작품을 열심히 읽으면 시인이 읽은 세상, 시인이 바라보는 곳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인간의 길은 연인의 길인데, 연인의 길은 이별의 길로 이어진다. 이별의 상처에서 오는 아픈 마음을 기댈 곳은 서슬 퍼런 “강철 같은 문장”인 모양이다. 시인이 시에 매달리는 이유다.

짧은 시 ‘춘화(春畵)’는 예쁘고 슬프다.

“무성한 벚꽃나무들 그 아래/ 휠체어에 앉아/ 오열하고 있는 한 여인.// 봄바람에 벚꽃 잎들 천국이 눈송이처럼 부서지듯 흩날려/ 온 세상, 잘 보이질 않는다.// 하나님은 그녀를 사랑으로 모질게 때리고 나서/ 기껏해야 꽃바람으로 달래고 있다.// 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슬픔에 새겨져 있는 것.//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오늘도/ 이 이승의 눈부신 날에 그러시고 있다.” 전문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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