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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통신] 대통령을 보는 '이중 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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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추석 선물 제작을 맡았던 경남 합천의 한 한과(韓菓)집은 예년에 비해 40% 가까이 주문이 폭증, 경기 불황을 무색하게 했다.

이 한과집 영업상무의 얘기가 재미있다. "'이 집이 하사품 집 맞느냐' '대통령이 주문했던 내용물이 뭐냐'고 꼬치꼬치 묻더니 '똑같은 걸로 해달라'고 하더라. 어쨌든 주문이 밀려 임시 직원을 20명 더 고용해야 했다."

함께 납품했던 전북 고창의 한 복분자주 공장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여러 공장 제품을 시음해 본 뒤 '선정됐으니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했다는 얘기가 퍼지자 30~40% 주문이 늘어났다"고 했다.

여전히 우리 대통령에 대해 '나라님'이란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 때 각인됐던 '무소불위.절대권력 대통령'의 이미지는 21세기로 넘어온 요즘도 여전한 것 같다. 그래서 여러가지 '이중성의 혼란'을 낳고 있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의 전언. "친구가 찾아왔다. '새 정부 인사에선 과거처럼 딴 짓을 안해 참 좋더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더라. 그런데 떠나기 전 '이런 사람이 있는데 네가 좀…'이라며 슬며시 말을 꺼내더라."

청와대 정무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정치권은 겉으론 검찰 수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외친다. 그런데 현대 비자금 사건 직후 '우리에게도 검찰 정보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 쪽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평소 盧대통령의 신당 불개입을 점잖게 외치던 민주당 의원과 전화통화를 했다. 통화 말미에 '그런데 왜 내겐 신당으로 가라고 언질을 안 주느냐'고 하더라"며 씁쓰레해 했다.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수차례 조르다 안되자 반노(反盧)로 돌아선 한 호남 의원의 얘기도 거론된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최근 보좌관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었다. "약속도 않고 '인사차'라며 찾아온 인사들은 따끔히 혼내 돌려보내라"고 했다.

청탁, 정보 귀동냥을 위한 눈도장 행렬이 여전한 때문이다. '대통령 지지도 40%'의 수치에도 불구하고 70여 차례에 이른 盧대통령과의 토론에선 해달라는 민원만 나올 뿐 고언(苦言)과 충고를 찾긴 어렵다.

무관할 땐 원칙을 들이대고 자기 일에 걸리면 권력에 기대려는 이중성은 지금 혼란의 요인이 되고 있다. "나는 옛날식 대통령과 다르다"는 盧대통령의 선언은 막강 대통령 40년의 기억과 부딪치며 숱한 금단(禁斷)현상을 낳고 있다.

한쪽 당사자인 盧대통령에겐 '원칙 유지'의 긴장이 요구된다. 언론 독립 주장과 달리 KBS 사장을 측근으로 슬쩍 임명하려 했던 대목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의심을 낳은 계기였다. 신당에 대한 盧대통령의 행보는 신뢰의 갈림길이 될 듯싶다.

정말 과거와 다른 민주적 대통령을 요구하려면 먼저 대통령직을 보는 각자의 이중 잣대가 없는지 한번쯤 돌아봐야겠다.

언젠가 말과 다른 盧대통령의 '이중성'이 확연히 드러난다면 야단을 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최훈 청와대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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