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의사에 밑반찬·속옷까지" 제약회사 리베이트 백태

중앙일보

입력

전국 병원 384곳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유명 제약사 간부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약을 의사 등에게 판매하기 위해 금품은 물론 의료인 교육이나 의사 자녀의 어린이집 행사 등에 대신 참석하기도 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0일 약사법 혐의로 중견 제약사인 A사 대표이사 B(37)씨 등 전·현직 대표와 직원 등 1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이들에게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와 병원 사무장 등 117명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거하고 이중 울산지역 의사 C(46)씨를 구속했다.

[자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자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A사 관계자들은 지난 2013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전국 384개 병원과 의원의 의사 등에게 42억8000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사는 영업기획부서에 대표이사 승인을 받아 특별상여금·본부지원금·출장비·법인카드 예산 등의 명목으로 영업사원들에게 돈을 주고 영업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영업사원들은 의사들에게 '처방 기간, 처방 금액 등의 10~20%를 선금으로 주겠다'고 약속한 뒤 본사 영업부서장이나 지점장 등과 동행해 현금이나 상품권 등을 건넸다.

경기남부청, 리베이트 제공한 제약사 관계자 무더기 입건 #수 차례 리베이트 받은 의사 등 127명도 적발 #리베이트 제공은 물론 향응 등 제공도 요청

[자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자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의사들은 병원 내 원장실 등에서 300만원에서 최고 2억원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갑(甲)의 위치를 이용해 영업사원들에 갑질을 하기도 했다. 대리운전 등 각종 심부름은 물론 의사들이 매년 8시간씩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교육에 영업사원을 대리 참석시켰다.
일부 의사는 영업 사원에게 자신의 자녀들의 어린이집·유치원 등원을 부탁하기도 했고 재롱잔치 등 개인 행사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일부 영업사원은 "어머니에게 부탁해 기러기 아빠인 의사에게 밑반찬을 보내거나 속옷 등을 구매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자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자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일부 의사들은 영업사원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하기도 했다.
구속된 의사 B씨는 1억5000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챙기고도 영업 사원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서 도와줄 테니 '돈을 건넨 적이 없다'고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경찰은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에 리베이트 수수 사실이 확인된 의사 106명과 A제약사에 대해 면허정지, 판매업무정지 등 행정 처분해 달라고 통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의약 리베이트는 제약회사 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면서, 의약품 가격을 왜곡해 보험 수가 결정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며 "지속해서 단속해 제약·의료 업계에 만연된 리베이트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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