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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까" 호기심이 부른 참사…18분간 화재 아무도 몰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소방관들이 7일 고양시 강매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 화재를 진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소방관들이 7일 고양시 강매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 화재를 진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뜰까?” 싶은 호기심이 부른 참사였다. 지난 7일 발생한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고양저유소에 불을 낸 스리랑카인 A(27) 얘기다. 자신이 일하던 공사장에 떨어진 풍등이 날아오를까 싶어 불을 붙였다가 저유소 탱크 폭발이라는 대형 화재를 일으킨 것이다.

그는 왜 풍등을 날렸나 

강신걸 고양경찰서장은 9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A씨가 풍등을 쫓아가는 장면, 잔디에 떨어져 불이 붙고, 18분 뒤 폭발하는 폐쇄회로TV(CCTV)를 공개했다. 경찰은 앞서 전날인 8일 오후 저유소에 불을 낸 혐의(중실화)로 A를 긴급체포, 조사 중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고양 저유소 화재현장에서 8일 오전 관계자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고양 저유소 화재현장에서 8일 오전 관계자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강 서장은 “피의자가 당일 오전 10시 32분 자신이 일하던 공사현장에서 풍등(지름 40cm, 높이 60cm)에 불을 붙였다”며 “‘뜰까’ 싶어 붙였는데 갑자기 바람에 날려 300m 떨어진 저유소 쪽으로 날아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의자가 저유소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중실화죄를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저유소가 위험시설물인지는 몰랐고, 기름을 보관하는 곳 정도로 인지했다고 한다.

경찰이 공개한 CCTV 확인 결과 A는 풍등에 불을 붙인 직후 갑자기 바람에 날려 이를 뒤쫓았다. 풍등이 저유소 쪽으로 넘어가자 한참을 지켜보다 공사장으로 되돌아갔다. 경찰은 다만 A가 풍등이 떨어져 잔디에 불이 붙은 것은 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A가 날린 풍등은 불이 났던 탱크 바로 옆 외부 잔디에 떨어졌다. 오전 10시 34분이다. 2분여 뒤인 오전 10시 36분부터 잔디에서 연기가 피오르기 시작했다. 폭발은 18분 뒤인 오전 10시 54분에 일어났다. 잔디를 태우며 탱크 쪽으로 가던 불꽃이 탱크 덮개에 설치된 유증기 환기구로 빨려 들어가면서 폭발한 것이다.

9일 오전 피의자 A씨가 호기심에 불을 붙인 풍등과 같은 크기의 풍등을 경찰이 들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9일 오전 피의자 A씨가 호기심에 불을 붙인 풍등과 같은 크기의 풍등을 경찰이 들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A가 날린 풍등은 전날 인근 서정초등학교 행사 때 날아온 것이다. 학교 측에서 주말을 맞아 실시한 ‘아버지 캠프’ 때 80개의 풍등을 날렸는데 이 중 2개가 A가 일하는 공사장으로 떨어진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학교 측에서 풍등 행사 전 신고했는지는 조사하고 있다.

대한송유관공사, 18분 동안 불난 거 몰랐다

18분 동안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화재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당시 근무자는 6명이었다. 경찰이 공개한 CCTV에 연기가 보였음에도 당시 근무자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탱크 주변에 화재를 감지하는 센서가 없었던 점도 작용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풍등 행사를 사전에 신고했는지 여부, 직원들이 화재를 왜 인지하지 못했는지, 당시 매뉴얼대로 근무했는지 등을 추가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강신걸 고양경찰서장이 저유소 화재 피의자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강신걸 고양경찰서장이 저유소 화재 피의자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경찰 관계자는 “풍등으로 인한 화재로 확인됐으며, 피의자 A씨에게 동영상을 보여줬더니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며 “합동 감식을 다시 해 화재 원인 등을 재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양=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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