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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정치권서 좌지우지 … 사회적 대화 힘 받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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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노동시장을 선진화하지 않으면 제조업도 없다“며 노동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대화를 하면서 정부에 경영계의 입장을 제대로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노동시장을 선진화하지 않으면 제조업도 없다“며 노동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대화를 하면서 정부에 경영계의 입장을 제대로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현 정부가 들어선 뒤 1년여 동안 고난의 행군을 했다.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꿔야 한다(비정규직 제로)’는 정부 방침에 맞서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청와대를 시작으로 3단 경고를 받았다. “경총이 적폐로 낙인 찍혔다”는 얘기가 나왔다. 경총은 그때부터 입을 닫았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빠르게 조직은 위축됐다.

김용근 경총 상임부회장 인터뷰 #한국, 노사관계 힘든 나라로 낙인 #노동개혁 안 해 외국서 투자 꺼려 #고임금 저생산 구조론 더 못 버텨 #경총도 개혁 필요 … 곧 개선안 발표

현 정부 출범 1년 새 김영배 상임부회장과 이동응 전무가 떠났다. 고용노동부의 고용보험위원회에서도 퇴출당했다. 경총은 1970년 고용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유일한 사용자단체다. 그런 단체가 노사 당사자의 지위를 박탈당한 셈이다.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그 경위를 김영주 장관에게 물으며 사실상 질책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총은 고용보험위원회에 돌아가지 못했다. 이재갑 신임 장관이 취임하기 20일 전인 지난달 3일에는 고용부 직원 10여 명이 경총에 들이닥쳐 업무 전반을 샅샅이 털었다. 경총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굴욕이었다. 고용부가 이런 식으로 경제단체를 타깃 삼아 지도감독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 경총이 최근 들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주 최대 52시간)으로 산업현장의 부담이 커지자 “올해 말까지 처벌을 유예하고,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고용부는 이를 일축했지만,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리가 있는 건의”라며 수용했다. 최저임금 제도개선을 위한 여러 방안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용부 장관이 교체됐다. 이재갑 장관은 취임 후 첫 경제단체 행선지로 경총을 택했다. 김영주 전임 장관이 맨 마지막에 방문해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했던 것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이 장관은 “사회적 대화에서 경총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대화를 통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경총 업무를 사실상 총괄 지휘하는 김용근 상임부회장도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공익위원 구성, 논의 내용 등에 대해서는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 장관이 경총을 다녀간 5일 오후 그를 찾았다.

그동안 경총이 많이 위축돼 있었다.
“우리는 회원사인 경영계를 대변하는 조직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강하게 하셔도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강한 것보다는 올바른 것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경총이 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의견이 많다. 책임감을 느낀다.”
이재갑 장관이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다. ‘정책 균형을 잡으려는 뜻이 담겼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학자가 많다.
“사회적 대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부터 균형감을 찾아야 한다. 노사정 대표끼리 만나 얘기할 때는 쏠림 현상을 보기 힘들다. 그러나 의제를 다루는 분과로 가면 공익위원부터 균형감을 찾을 수 없다. 노사의 의견이 고루 반영돼야 한다. 전 세계와 경쟁하는 기업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 말은 균형을 잡을 복안이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적극적으로 안건을 내고, 논의토록 할 방침이다. 예컨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중 단결권과 같은 것을 비준하는 문제다. 해고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건데, 회사 직원도 아닌 그들과 임금 협상을 한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단결권만 개방할 것이 아니라 파업요건을 강화하고, 파업 때는 대체근로를 허용해 공장을 계속 가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 세계가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우리만 안 한다. 앞으로 모든 현안에 대해 학계와 공동작업으로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등 연구자료를 축적할 생각이다.”
최근 정치권이 노사문제를 많이 다룬다. 이에 대한 경영계의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정치권의 산업현장 개입은 노사 자율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노사문제를 정치화하거나 이슈를 사법부로 끌고 가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노사자율이라는 게 없는 형국이 됐다. 노사관계가 정치화된 상황에선 사회적 대화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걸 정치판이 좌지우지하는 데 사회적 대화가 힘을 받을 수 있겠는가. 노사정이 설령 합의해도 일부 노동단체가 정치권에 문제를 제기하면 합의문 자체가 헝클어지고 휴지조작이 되는 이상한 구조다. 사회적 대화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이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노동시장 구조개혁 작업이 멈췄다. 학계와 국제기구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데.
“노동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지 않는다. 노사관계가 힘든 나라로 낙인찍혀 있다. 심지어 노사관계가 좋은 기업도 힘들다고 한다. 법인세와 같은 세금이 다른 나라와 달리 오르는 데다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스웨덴, 영국, 미국, 스페인 등을 추월하지는 못하더라도 따라가는 정도는 돼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고임금 저생산 구조로는 더 못 버틴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 정년을 못 박을 이유가 없고, 생산성이 낮은 비정규직을 쓸 까닭도 없다.”
경총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변화상을 담지 못했다. 시스템을 고쳐야 할 때다. 조만간 경영개선안을 낼 것이다. 지방 경총, 각 산업협회와의 교류도 활발히 하는 등 지역 일자리 창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삼성전자 서비스 노조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이 경총 직원도 기소했다.
“삼성전자 서비스의 노사협상 컨설팅은 성공사례다. 회원사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아 교섭에 나서거나 인력 운용 등의 문제에 대해 컨설팅을 하는 것은 경총 본연의 고유업무다. 검찰이 다른 각도로 보는데, 경총은 매뉴얼을 만들어 앞으로도 회원사에 대한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고, 그렇게 해야 한다. 책임은 내가 진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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