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독일 선진기술에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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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이 독일과 '열애'에 빠졌다. 독일의 선진 기술이 사랑의 대상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방문(21~23일)이 계기다. 중국 수뇌부는 메르켈 총리의 방중 기간 내내 독일에만 매달렸다. 관영 언론도 1면 톱과 국제면 톱을 할애하며 연일 비중 있게 다뤘다. 양국은 자기부상열차 등 굵직한 기술협력 사업에 서명한 것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외교 공조까지 다짐했다.

◆ '총리끼리 데이트'=메르켈 총리는 취임 6개월을 맞은 22일 아침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베이징(北京) 창푸허(菖蒲河) 공원에서 20분간 산책하며 '외교 데이트'를 즐겼다. 이어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회담했다.

회담 분위기는 상당히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측 참석자는 "마치 가족행사 같았다"고 전했다. 중국 측 참석자도 "근래 후 주석이 이처럼 즐겁게 외국 정상과 얘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원 총리는 "문화적 이해를 돕기 위해 양국이 서로 상대 국가의 문화를 소개하는 '중국 문화의 해'와 '독일 문화의 해'를 제정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특정 국가를 기념하는 해를 정한 것은 '러시아의 해'에 이어 두 번째다.

◆ 굵직한 경제.기술협력 사업 수두룩=실무협상과 합의는 이날 오후 원 총리와 메르켈 총리 간 회담에서 이뤄졌다. 양국은 전자통신.교통.에너지.자동차 등 9개 분야, 19개 항목에 대한 협력에 서명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가 교통이다. 중국자기부상열차기술연구센터 우샹밍(吳祥明) 소장은 22일 "상하이(上海)와 항저우(杭州)를 잇는 자기부상열차용 철도 건설을 위한 주요 문제를 독일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200㎞의 거리를 시속 450㎞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용 철도를 건설하는 이 사업은 2003년 확정돼 2010년 완공 예정이다. 우 소장은 독일 지멘스사가 전력공급 기술과 운영 시스템을 중국 업체에 이전하고, 독일 철강업체인 티센크루프가 차량과 철로 스위치, 부품 제조 기술을 넘겨주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독일의 수주가 확정된 셈이다.

◆ 국제 공조 다짐=후 주석은 메르켈 총리와 국제문제를 놓고 깊숙한 부분까지 대화했다. 원 총리는 한걸음 더 나갔다. 우선 올해 안에 양국 외무차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전략회담을 개최키로 메르켈 총리와 합의했다. 국제문제에 대한 공조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중.독 양국의 정부관리.기업인.과학기술자 등 600여 명이 모여 양국 간 첨단기술 협력을 논의하는 중.독 첨단기술 논단의 확대 개편도 확정했다. 올해 4회를 맞는 이 모임을 내년부터는 '중.독 경제기술 논단'으로 확대하고, 참석자도 1000명으로 늘린다는 게 골자다.

유럽문제 전문가인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의 쑨커친(孫恪勤) 부소장은 "독일은 그동안 유럽.미국.러시아를 중심으로 외교를 벌였지만, 메르켈 총리의 이번 방중으로 외교적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이동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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