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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달러면 도장·서류 위조 가능해” 중·러 무역 속여 북에 중간 떨구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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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앙일보 창간 53주년 특집 - 평양·평양사람들 <5>

“이건 제재가 아니라 봉쇄입니다. 그래도 방법이….”

해외 무역일꾼들 회피방법 진화 #제재 대상 땐 이름 바꾼 여권 사용

동남아 지역에서 무역 사업을 하다 입국했던 탈북자 A씨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관련한 얘기를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대북제재 강화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루트를 뚫어야 하며 그렇게 해서 ‘과업’을 완수하는 게 무역 일꾼의 능력이라는 뜻이었다.

북한의 여권 사진. [뉴스1]

북한의 여권 사진. [뉴스1]

A씨는 “북한에선 지난 70년 동안 미국의 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에 내성이 생겼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그러나 지난해 두 차례의 대북제재(안보리 결의 2375ㆍ2397호)로 활동폭이 좁아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당에서 지시하면 합법이고 불법이고 수단이 중요한 게 아니다”며 “(외화든, 상품이든) 평양에 가져다 놓아야 하기 때문에 감시의 눈을 피하는 방법도 발전했다”고 말했다. 제재 수위가 높아지며 제재 우회술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수시로 제재 대상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름 바꾸기는 이미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고 한다. 외교 부문에 근무했던 탈북자 B씨는 “제재 대상에 오르면 일단 귀국해 이름을 바꾸고, 여권을 새로 만드는데 국가(북한 당국)에서도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물건값을 더 주거나 ‘중간 떨구기’가 대표적인 회피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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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다른 지역에 주재했던 C씨는 “대방(사업 상대방)들도 물건을 팔아야 막고 살지 않겠냐”며 “돈을 더 주면 ‘북한에는 안 판다’고 하면서도 슬쩍 북한에 넘기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C씨는 “일단 중국이나 러시아로 물건을 보내기만 하면 현지에서 ‘세탁’을 거쳐 북한으로 보낼 수 있다”며 “석탄 등 덩치가 큰 화물을 제외하곤 밀무역과 중간 떨구기 식으로 거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간 떨구기는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또는 중국에서 러시아로 수출하는 물품으로 위장한 뒤 북한을 경유토록 하고 중간에서 내리는 방식이다. 그는 또 “300~500달러를 주면 도장이나 서류를 위조할 수 있다”며 “위조한 서류나 뒷돈을 챙겨주면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이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다양한 방법으로 빈틈을 찾으며 회생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대북제재의 강도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경제 전반에 입는 타격을 만회하는 수준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용수·권유진·김지아 기자 nkys@joongang.co.kr
◆도움말 주신 분=김보미·김일기·이상근·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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