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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몰카파문…'이원호'는 어떤 인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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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몰래카메라 사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몰래카메라의 진상이 어느 정도 밝혀지면서 수습되는 듯했으나 이원호(50·키스 나이트클럽 사장, 구속중) 씨가 청주지검과 청와대에까지 로비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시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 사건에는 지역 토호세력간 업권 다툼에 조폭이 등장하고 청주지검의 검사와 대검, 심지어 권력 핵심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한눈에 전모를 이해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이지만 큰 얼개로 보면 지역 토호 사업가인 이원호 씨와 김도훈 전 검사의 대결로 압축해 볼 수 있다.

김도훈 전 검사는 이원호 씨를 살인교사·조세포탈·윤락행위방지법위반 혐의로 내사했고, 이원호 씨는 이를 피하기 위해 성공했든 실패했든 검찰과 청와대를 향해 구명 운동을 시도했다는 것이 큰 줄거리다. 몰래카메라 사건은 이 와중에서 터져 나온 일종의 돌발사건이라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특히 이원호 씨와 로비 대상이 되는 검찰 그리고 청와대측은 이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렇다면 김 전 검사가 그렇게 추적했던 이원호 씨는 어떤 인물인가부터 살펴보자. 이씨는 5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어릴 때 부모님이 가정교사를 두 명이나 붙여줄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부모형제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학업에 취미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최종 학력이 청주 대성중학교 졸업이라는 점에서 공부에 대한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1970년대에 해병대를 제대한 후 정육점을 하면서 이씨는 재산을 어느 정도 모았던 것으로 지역에서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오늘날처럼 재산가로 불릴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이후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덕분이라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 무렵 그는 경매로 사들인 리호관광호텔·진양관광호텔 등 호텔 두 곳과 진양볼링장 등 볼링장 세 곳을 운영하면서 재산을 불려 나갔다. 진양볼링장은 지난해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에는 형 O씨의 사망으로 부도난 B건설 아파트 사업장을 채무변제 방식으로 넘겨받아 C주택을 설립, 건설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이씨의 재산을 관리한 이씨의 사촌형 M씨에 따르면, 이씨의 재산은 대략 200억원 정도. 청주에서는 최고 재력가로 꼽힐 만하다. 이씨는 사채에도 손을 대 언제든 50억∼60억원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지역사회에서는 소문나 있다.

이런 현금 동원력을 가진 이씨가 은밀히 손을 댄 것 중 하나가 그림과 도자기 수집이다.<122쪽 이원호 부인 G모씨 인터뷰 참조> 이씨는 20억∼30억원어치 정도의 도자기와 그림을 소장한 것으로 지역사회에는 알려져 있다. 억대의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운보의 화첩 같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물건들은 정상적인 공개 입찰로 매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엄청난 세금 때문에 음성적으로 사고파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 거래할 때는 무조건 ‘현금 박치기’나 현물 맞바꾸기로 한다. 이 바닥에는 도굴된 물건이 많기 때문에 거래가 더욱 은밀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 설명이다. 해당 물건이 국보급이라면 더욱 문제가 된다.

이 같은 밀거래는 세금을 포탈할 수 있지만, 가짜를 살 위험 또한 높다. 때문에 감정이 매우 중요하다. 골동품의 감정은 세 사람이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고가의 그림을 보면, 그림 뒤에 감정사의 이름과 날짜가 붙어 있다. 수억 원대의 그림과 도자기라면 감정료만 최하 500만원에서 수천만 원선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민당 청주을지구당 부위원장을 지낸 K씨는 “이원호 씨는 청주 시내에서 골동품상을 하는 C씨와 B씨한테서 항상 감정을 받았다. 이 세 사람은 자주 어울려 다녔다”고 말했다. 골동품상 C씨는 이원호 씨가 자신의 호텔에 고급 그림을 진열할 때도 이들 그림을 감정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호 씨는 1995년께 자신의 소유였던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진양볼링장 3층에 소장품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만들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보안 문제 때문에 취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씨의 조카 아무개(35) 씨는 “삼촌은 도자기의 ‘도’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도자기 수집을 했다는 말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며 도자기 수집가라는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이원호 씨가 김도훈 전 검사의 내사를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청주 지역 나이트클럽 간의 세력권 다툼에서 비롯됐다. 내막은 이렇다. 이원호 씨가 운영하던 리호관광호텔 내부의 B나이트클럽에 대항해 경쟁업체가 길 건너편에 A나이트클럽을 개장하자 B나이트클럽의 매출액이 급감했다.

다급해진 이씨는 전 국정원 충북지부 정보과장 출신인 H씨와 합작해 지난해 10월 1,000평 규모의 초대형 나이트클럽인 키스나이트클럽을 개장했다. H씨는 문민정부 시기까지 이씨의 뒤를 봐주던 인물이었다. 그는 DJ 정부가 출범하고 1년 만에 옷을 벗었다.

키스나이트클럽은 개점 이후 6개월 동안 카드 매출액이 1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경쟁에서 밀린 A나이트클럽은 결국 이름을 바꾸고 중년층을 대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가 청주 지역에서 재력가로 성장하기까지에는 경쟁자들의 원성을 살 만한 일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충북도경 강력부가 이씨에 대한 내사에 나선 것도 익명의 제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업소의 비리를 파악해 수사기관에 제보해 타격을 주는 것은 유흥업계의 오래 된 생존 수법이다.

김도훈 전 검사와 이원호 씨의 악연은 여기서 비롯됐다. 청주 현지 취재 결과, 김도훈 전 검사를 잘 아는 주변 인물들은 한결같이 김 전 검사는 청와대 같은 중앙의 권력기관 동향에는 무지할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지역 현안에만 관심을 쏟는 검사였다고 한다. 이원호 씨가 중앙에 어떤 선을 대고 있는 인물인지,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수사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몰래카메라의 주인공 양길승 씨는 청주라는 지방 도시의 토호세력과 한 검사의 대결에서 ‘등이 터져 버린 새우’가 된 셈이 된다. 청와대 같은 국가 최고권력기관의 제1부속실장이 ‘고래’가 아니라 ‘새우’가 돼버린 것이 격에 맞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검사 김도훈이 만난 적수 이원호 씨의 범죄 혐의점은 단순한 탈세 차원이 아니었다. 이원호 씨는 2001년 진양관광호텔 오락실의 승률 조작 등 불법 운영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구속된 바 있다. 이씨는 당시 검찰 수사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그 무렵 모 신문에 1단 기사로 처리된 검찰 직원들의 룸살롱 소란 행위 보도 제보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청주지검은 2002년 3월부터 이씨에 대한 범죄 혐의점을 인지해 은밀하게 내사를 벌였다. 검찰이 조사한 혐의 내용은 C건설회사 인수 과정, 볼링장·호텔 터키탕 탈세 여부, 조직폭력배 살인 사건 배후 교사 등이었다.

특히 검찰은 1989년 청주 북문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배후를 캐기 위한 조사에 주력했다. 그 배후로 지목받은 사람이 이원호 씨였다. 당시 피살자는 조직폭력배로 알려진 배아무개 씨로, 사건 직전 진양관광호텔 대표였던 이원호 씨에게 오락실 영업권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앙갚음으로 위협한 사실이 있다는 것.

얼마 후 배씨는 북문로에서 일명 ‘대명파’조직폭력배 2명에게 피습당해 칼에 찔려 숨졌다. 당시 배씨 살인 사건은 특별한 범행 동기가 드러나지 않아 미해결 사건으로 남았지만 살인 혐의로 복역중이던 두 명이 2년 전 만기 출소한 뒤 살인 교사 배후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검찰이 내사를 벌이게 된 것이다.

살인 사건 배후 수사에서 뚜렷한 용의점을 찾지 못한 담당 Y검사는 탈세 등의 혐의로도 이원호 씨를 내사했으나 이렇다할 이유 없이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Y검사는 지난 3월 평택지청으로 전보 발령되었다.

Y검사의 바통을 넘겨받은 사람이 바로 김도훈 전 검사다. 김도훈 전 검사는 이씨 사건을 넘겨받아 지난 4월부터 청주지방경찰청 강력계를 수사지휘하면서 K나이트클럽 탈세 혐의를 집중 수사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 사건은 몰래카메라를 찍은 김도훈 전 검사와 검찰 사이의 진실게임 공방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현재 김도훈 전 검사와 검찰측이 맞서고 있는 의혹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몰카' 사건의 7대 의혹과 쟁점

▷먼저 이원호 씨가 대선자금으로 3억원을 민주당에 제공했다는 설이다. 김도훈 전 검사가 작성한 수사일지를 보면 2002년 여름께 이원호 씨가 김아무개(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 구속중) 씨를 통하여 민주당 간부에게 3억원을 전달했으며, 이를 김씨의 운전기사가 말하고 회사 관계자가 목격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대해 검찰은 “김아무개는 ‘민주당 간부에게 돈을 전달한 사실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이원호와 친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원호가 자기에게 부탁할 처지가 아니라고 부인’했으며 김씨의 운전기사나 회사 관계자도 ‘보도 내용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두번째는 이원호 씨의 처 예금계좌에서 현금으로 인출된 50억원대의 자금 사용처다. 지난해 대선 전후 시기부터 최근까지 이원호 씨의 부인 등 계좌에서 50억원대의 현금이 인출되었는데, 그 사용처에 대한 의혹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언론에 보도된 자료에는 거액의 현금이 인출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이 중 상당부분이 계좌이체나 수표로 발행되었는데도 은행에서 내부 업무 규정상 현금 출금으로 기재했던 것이라며 수사 무마 청탁 및 금품 제공 의혹과 이씨 등 관련자들의 자금 흐름에 대해 계속 추적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김도훈 전 검사의 수사일지의 신빙성 여부도 논란을 빚는 쟁점 사항이다. 김도훈 전 검사가 작성한 수사일지를 보면 청주지검 간부들의 부당한 압력이나 정치자금 제공 의혹의 근거가 될 만한 문구들이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김 전 검사의 수사일지 최초 작성일자가 지난 8월7일이었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8월17일 최종 수정된 점으로 미루어 8월7일 이전의 내용은 모두 소급 작성된 것이라며 사실과 다른 부분도 적지 않고 취지가 왜곡된 부분이 있어 수사일지에 간부들의 부당 압력이나 정치자금 제공 의혹 등의 근거가 될 만한 것이 있다는 김 전 검사 변호인단의 주장은 그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이어 검찰은 “김 전 검사가 사용한 컴퓨터에는 그가 업무일지를 작성했던 2002년 11월부터 지난 7월 초까지 수사 외압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며 수사 외압 주장이 몰래카메라 제작 이후였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원호의 탈세 규모 축소 의혹이다. 김도훈 전 검사측은 키스나이트클럽의 탈세액이 경찰청 내사중에는 14억원 규모였으나 검찰로 송치되어 5억원 미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축소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경찰이 확정한 탈세금액 6억4,000만원에 포탈세액 산정시 포함해서는 안 되는 가산세가 들어 있는 것을 검찰을 지원했던 세무서 직원이 발견해 이를 빼고 다시 계산해 구속영장을 청구해 금액이 줄었다. 이는 단순한 계산착오다. 이번 기소 단계에서 빠진 30만원 이상 룸매출 부분에 대해서는 세무서에 조사를 의뢰해 결과가 통보되면 당연히 추가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도훈 전 검사가 이원호 수사팀에서 배제된 것을 둘러싼 의혹. 김도훈 전 검사는 이원호에 대해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고, 그가 특별수사 전담인데도 수사팀에서 빠진 것은 애초부터 검찰이 이원호 비호 사실을 덮으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각종 의혹이 제기된 상태여서 신속한 수사가 필요했으며 수사 의뢰 당시 아무런 단서가 없어 특수수사에 경험이 많은 검사들이 수사팀을 구성할 필요가 절실했다. 김 전 검사의 경우 수사 결과의 신뢰성이나 본인 보호 차원에서도 수사팀에 합류하는 것이 적절치 못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김도훈 전 검사에게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해 긴급체포한 것이 청주지검의 외압 폭로에 대한 보복성 수사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다. 검찰은 김 전 검사가 모해위증 혐의로 조사받던 박아무개 여인으로부터 현금 1,000만원과 수표 1,000만원(100만원권 수표 10장) 등 모두 2,000만원을 받았고, 또 정보원인 장아무개 여인에게 현금 1억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김 전 검사의 뇌물 수수 여부는 몰카 촬영이나 배포에 관여한 정도를 놓고 김 전 검사가 이를 부인해 김 전 검사가 정보원으로 활용한 박여인과의 대질신문 과정에서 화가 난 박씨가 우발적으로 발설해 드러난 것이다.

장아무개 여인의 경우는 김 전 검사와의 관계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보복수사가 결코 아니다. 두 여자가 자발적으로 말하기 전까지 김 전 검사가 사건 관련자로부터 뇌물을 받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설명했다.

뇌물 수수 여부와 관련해 피의자를 인신구속할 때는 계좌추적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거나 수표 번호를 확인한 뒤에 실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기본적인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채 김 전 검사를 지난 8월19일 긴급체포한 뒤 구속했다.

이는 9월2일 오후 청주지검에서 있었던 한나라당 진상조사단과 청주지검 고영주 지검장, 추유엽 차장검사와의 일문일답에서 잘 드러난다. 그날 김도훈 전 검사는 청주교도소에 구속 수감중이었다. 다음은 면담 내용이다.

=조사단: 전격적으로 검사를 구속했는데, 김검사의 돈 받은 부분에 대해 계좌추적 결과가 있습니까.

-청주지검: 통상적인 뇌물 수수 사건은 계좌를 조회해서 수표를 추적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관련자를 대질하다 우연히 말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추후에 있을 수사 결과 발표에서 이를 밝힐 것입니다.

=조사단: 김도훈 전 검사는 2,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청주지검: 그렇습니다.

=조사단: 김 전 검사가 받았다는 수표를 확인했습니까.

-청주지검: 수표가 나온 출처와 관련해 우리가 추적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수표를 주었다는 사람이 어떤 수표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조사단: 수표 번호를 확보했습니까.

-청주지검: 아직까지 수표가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조사단: 그 정도의 확신만 가지고 검사를 구속할 수 있습니까.

-청주지검: …

청주지검은 아직까지 김 전 검사의 뇌물 수수 여부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3일 김도훈 전 검사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된 것도 이런 정황이 반영된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청주지검이 이원호 씨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 내사를 외압을 받고 중단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씨는 1989년 청주 북문로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배후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검찰이 이원호 씨의 살인교사 혐의에 대한 관련자 진술을 확보하고도 뚜렷한 이유 없이 내사를 중단하고 뒤늦게 내사 번호를 붙이는 등 외부 청탁이나 압력으로 김도훈 전 검사의 수사를 중단시켰다는 의혹이다.

9월2일 청주지검 지검장실에서 고영구 지검장과 추유엽 차장검사는 이 의혹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이트를 경영하는 이원호를 다른 경쟁업자와 결탁한 조폭이 괴롭혔다. 이씨는 청주의 조폭 K에게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의뢰했다. 부탁받은 조폭 K는 부하인 김아무개와 조아무개에게 대전 아이들(이원호의 경쟁업자와 결탁된 조폭) 손 좀 봐 주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부하들이 실수로 엉뚱한 사람인 배아무개를 죽였다. 이 살인자들은 현재 잠적중이다. K가 부하들에게 이원호가 지정한 인물을 죽이라고 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신병 좀 보호해 달라고 부탁한 이원호를 살인 교사로 보기는 힘들다.”

이 답변을 들어 보면 이원호의 살인교사 혐의에 대한 청주지검의 수사 의지가 그리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9월3일 김도훈 전 검사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된 뒤, 9월5일 청주지검은 이씨의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강력 담당 검사가 이미 살인 피의자 1명을 소환조사했고 다른 관련자에 대해 출석을 종용하는 한편 소재를 추적하고 있다”며 수사 의지를 밝혔다.

두 가지 방향의 몰카 사건 수사

현재 청주지검은 ‘양길승 몰카 사건’을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수사하고 있다. 하나는 몰카를 찍은 김도훈 전 검사의 개인 비리를 밝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김도훈의 수사 대상이었던 이원호 씨의 범죄 행위와 로비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전자는 이미 지난 7월31일 몰카 사건이 터진 뒤부터 화제가 되어 상당부분 밝혀진 영역이고, 후자는 거의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다. 청주지검과 청와대에 대한 이원호 씨의 로비가 밝혀진다면 그 불똥이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 현재 김도훈 전 검사측과 한나라당은 이원호의 로비가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원호 씨가 로비를 했다면 그 방향은 청주지검과 청와대라는 두 권력기관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두 갈래 가운데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이원호 씨가 집중했던 줄은 청와대일 수 있다. 이를 입증할 흔적들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이원호 씨는 노대통령 취임식과 청와대 기업인 초청 만찬에 참가하고, 노대통령의 아들과 딸 결혼식에 모두 참석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명의의 감사장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더구나 청와대 제 1부속실장 양길승 씨를 청주까지 오게 만들어 향응을 베풀었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양길승 씨가 이원호 씨를 보러 청주까지 갈 이유는 없다.

이원호 씨와 청와대를 연결하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없이는 이 모든 행보가 석연치 않다. 이 부분에서 양길승 씨 향응 술자리에 참석했던 노대통령의 고교 동창인 정화삼(56) 씨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정화삼 씨가 이원호 씨를 청와대와 연결한 고리였을 것으로 추측하는데는 두사람의 ‘관계’ 때문이다.

정화삼 씨와 이원호 씨는 1990년대초, 충북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함께 다니면서 처음 안면을 튼 뒤 95년께부터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원호 씨의 사촌형 M씨가 기자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M씨는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이원호 씨의 사업체 회계 출납을 담당했기 때문에 이 기간 이원호 씨 주변인물은 소상히 알 수 있는 처지였다.

“정화삼 씨와 이원호는 1995년께부터 친해졌다. 그 계기는 골프였던 것 같다. 이원호의 골프 실력은 프로 입문 직전 수준이다. 1995년 무렵 이원호가 정화삼 씨가 운영하는 낫소 청주공장에서 골프공을 얻어오기도 했던 것을 기억한다. 두 사람은 당시부터 같이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골프도 쳤다.

물론 그 때는 그렇게 이해관계가 없는 지역 유지들끼리의 단순한 친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민주당 경선 이후 뜨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노대통령이 취임한 뒤부터는 정화삼 씨와 이원호는 거의 매일 붙어 다녔다.”

양길승 사건이 불거지면서 당초 참석자들은 정화삼 씨의 동석 사실을 한사코 숨겼다. 표면적인 이유는 단지 대통령의 친구라는 이유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당 충북도지부의 오원배 씨가 자신의 위상 관리를 위해 정씨를 불렀다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정화삼 씨와 이원호 씨의 관계를 알고 나면 정씨가 이 자리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취임 뒤 정화삼·이원호 붙어 다녔다”

정화삼 씨는 누구인가. 정화삼 씨는 골프공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낫소 청주공장의 공장장 겸 전무였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1966년 부산상고를 같이 졸업한 동기동창이다. 노대통령과는 40년지기인 셈이다. 정씨와 노대통령의 친분은 정씨의 노모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정씨의 모친(77)은 노대통령의 열렬한 팬으로 선거 때마다 노대통령을 도왔던 인물이다.

모친은 선거 때마다 열 일 제쳐놓고 거리를 누비는 바람에 지금도 노대통령 주변에서는 최고 인기 인물로 통한다. 노모는 2000년에 TV 스타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 당시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노대통령이 당선권에 진입하자 캠프의 추천으로 한 방송국이 하루종일 이 노모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러나 노후보가 떨어지는 바람에 문제의 테이프는 지금도 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다.

지난 대선 시기 정가에서는 노대통령과 정씨가 관련된 등장한 여러 일화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중 노대통령이 정씨가 있는 청주를 찾아 함께 소줏잔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시기는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던 2002년 10월 말이었다. 노후보는 청주방송 토론회 출연차 내려왔고, 두 사람은 허름한 술집에서 마주했다. 갑자기 노후보가 정화삼 씨에게 담배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두 사람은 모두 담배를 끊은 지 오래 된 상태였다. 목에 안 좋다며 정씨가 극구 말렸으나 노후보는 비서를 시켜 담배를 입에 물더니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나는 소신껏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는지 모르겠다. 너무 힘들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정화삼 씨는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40년을 알고 지냈지만 ‘친구 노무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거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씨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충청일보’에 대통령과 친구 관계임을 밝히며 ‘성공한 대통령’을 바라는 글을 기고해 관심을 끌었다.

다음은 정화삼 씨가 친구 노무현을 평가한 내용이다. 이 평가를 보면 두 사람 사이가 어느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친구(노무현)는 자신이 옳다고 하면 행동으로 옮긴다. 앞뒤를 재며 기회를 엿보는 자기합리화를 아주 싫어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일단 고(go)하는 행동파이다 보니 정계 입문 후 많은 돌출행동을 보였다. 이 때문에 과격하다는 음해를 종종 받지만 사실 그를 만나 10분만 얘기하면 이것이 얼마나 큰 편견인가를 알 수 있다. 불의와 무원칙에 항의하는 모습들이 대부분 와전된 것이다. 나는 그가 과격하기보다 겁 없는 촌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 그의 욱하는 기질이 오늘의 노무현을 키웠다.’

16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 노대통령과 정화삼 씨 사이에 얽힌 일화도 있다. 당시 노대통령은 지역감정의 벽을 스스로 허물겠다며 안방인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 출마를 감행했으나 한나라당 바람에 꺾이고 만다. 선거에 임박해 정화삼 씨가 지인들의 모임에 참석해 노무현 지지를 간청했다고 한다.

돌아온 반응은 “민주당 그 자슥 들어오지도 마라!”였다고 한다. 당시 부산에서는 민주당의 ‘민’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머쓱해진 정씨가 주춤하자 밖에 있던 노무현이 다자고짜 방으로 들어왔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좌석은 서로 덕담 나누기에 바빴고 참석자 대부분이 노무현의 열성 지지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술자리에 참석한 노대통령의 또 다른 친구 이모 씨

이원호 씨의 사촌형 M씨는 정화삼 씨 외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또 다른 고교 동창 L씨를 이원호 씨의 청와대 줄로 꼽았다. M씨는 “이원호의 진짜 청와대 줄은 노대통령의 또 다른 고교 동창 L씨다. 그는 이원호가 운영하는 키스나이트에 과일을 대는 사람이다. 지역 정서상 청주 사람이 납품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원호는 청와대 줄을 잇기 위해 그에게 맡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원호 씨는 서울 근교 판교 지역에 사무실까지 얻고 아파트 사업을 하려고 구상중이었다. 또 골프장 사업에도 진출하려는 계획이었다. 이같은 일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L씨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L씨의 존재는 ‘조선일보’ 8월7일자에 보도된 바 있다. 이 날짜 조선일보 보도다.

‘양길승 씨에 대한 몰래카메라 사건을 수사중인 청주지검과 향응 사건을 조사한 청와대는 술자리에 또 다른 노대통령 고교 동기인 L씨도 참석한 사실을 술자리에 참석한 키스나이트클럽 사장 이원호 씨를 통해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대통령의 또 다른 고교 동창 L씨의 존재는 8월5일 청와대민정수석실이 발표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진상조사 결과 전문’에서도 확인된다. 이원호 씨의 사촌형 M씨의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원호 씨가 또 다른 친구 L씨에게 어떻게 로비를 하고 청와대와 선을 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은 그가 키스나이트클럽에 과일을 대고, ‘몰카 술자리’에 참석했다는 것 정도다.

이원호 씨의 로비와 관련해서는 확실하게 확인된 것이 별로 없다. 설은 무성하다. 그러나 언론이 재판에서 증거 능력을 가질 정도로 그의 혐의를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원호 씨는 주도면밀한 인물이어서 아직까지는 꼬리를 밟히지 않고 있다.

청주에서 만난 이 사건 관계자들은 “오죽하면 검사가 몰래카메라를 동원했겠느냐”는 것이었다. 현재로서는 청주지검이 이씨를 제대로 수사할 것 같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청주지검 자체가 이씨의 로비 대상이었다는 의혹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검찰이 아닌 특검이라야만 제대로 파헤칠 수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월간중앙=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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