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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웅의 검사각설

혐오는 늘 실패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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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검사)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검사)

2010년 어느 가을, 나는 ‘관용’을 모토로 삼는 미국 어느 주의 시골 주차장에 앉아 있었다. 가족을 기다리며 졸고 있던 나는 거대 인파가 몰려드는 듯한 소음에 놀라 잠을 깼다. 살펴보니 정당 행사 때 간혹 출몰하는 ‘난닝구’를 갖춰 입은 외국인 남자와 처, 아이 2명이 소음의 원인이었다. 난닝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만 아니라 바닥에 침을 뱉고 있었다. 갯과 짐승들이 영역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가족들도 걸어가며 쉼 없이 쓰레기를 버리는데, 난닝구도 이에 질세라 담배꽁초를 힘껏 바닥에 내던진다. 아마 헨델과 그레텔처럼 집으로 돌아갈 길을 표시하는가 보다.

가만히 보니 어떤 노인이 그 가족 뒤를 따르고 있었다. 조용히 뒤를 따르던 노인은 그 담배꽁초를 줍는다. 그러더니 대수롭지 않게 휴지통에 넣었다. 하필 그 순간 그 가족은 무슨 연유인지 뒤로 돌았고, 난닝구도 그 모습을 목격했다. 노인은 난닝구에게 웃으며 “하이”라고 말하고 지나간다. 집으로 돌아갈 표식을 잃어버려서인지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인지 난닝구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얼굴에 깊게 새겨진 그 열패감을 지켜보며 나는, 그가 짐승의 삶을 버리고 관용을 베푸는 주민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

검사각설 10/01

검사각설 10/01

혐오의 시대다. 어찌나 혐오할 거리가 많은지 직업, 빈부, 성별, 나이에 따라 매일 새로운 혐오 대상이 생겨난다. 이런 시대에 혐오를 부추기면 권력과 명성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은 혐오 대상자에게 온 마음 다해 악플을 달고 증오하며 또 널리 혐오를 공유한다. 물론 세상을 정화하려는 정의감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혐오로 세상을 정화하려는 시도는 수천 년간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십자군 전쟁, 마녀재판, 유대인학살, 문화대혁명 모두 처참한 상처만 남겼고, 결국 사람들이 배운 것은 공존을 위한 관용의 필요성이었다. 만약 그 노인이 난닝구의 모습을 촬영하여 소셜네트워크에 올렸거나 면전에서 나무랐다면 그 난닝구는 영원히 그곳 주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혐오 속에서는 누구도 공동체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혐오는 기본적으로 무책임하다. 그래도 약이 올라 꼭 혐오를 해야겠다면 이렇게 자문해보자.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혐오의 그물 속에서 그 증오를 벗어날 자유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일까?’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