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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거역한 중앙은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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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커리어TF팀장

주정완 커리어TF팀장

“불운하게도 그들이 방금 금리를 조금 올렸다. 나는 이것이 기쁘지 않다.”

“우리는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고,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앞의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뒤의 것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말이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Fed가 금리 인상을 결정한 직후 각자 기자회견에서 발언했다. 트럼프의 말엔 뾰족한 가시가 돋쳐 있다. 맞받아치는 파월의 말엔 차분하지만 당당함이 묻어 있다.

사실 파월은 트럼프가 고르고 고른 인물이다. 정권이 교체돼도 Fed 의장은 교체되지 않는다는 오랜 전통을 깼다. 파월은 경제학 전공자도 아니다. 학부(프린스턴대)에선 정치학, 대학원(조지타운대)에선 법학을 전공했다. 그런데도 파월은 트럼프의 지명과 의회의 인준을 거쳐 지난 2월 Fed 의장에 취임했다.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막중한 자리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선택한 재닛 옐런 전 의장은 연임에 실패하고 짐을 쌌다. 여기까진 트럼프의 계산대로였다.

취임 이후 파월의 행보는 트럼프의 기대에 어긋났다. 지난 3월부터 석 달마다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렸다. 올해 들어 세 차례다. 시장에선 오는 12월 추가 인상 가능성도 유력하게 본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와 기업의 대출이자 부담이 커진다. 그만큼 소비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다.

트럼프는 성격상 가만히 참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 활성화를 치적으로 내세우는 트럼프로선 금리 인상이 달가울 리 없다. 노골적으로 파월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자신이 지명한 공직자가 자기 뜻에 어긋난 정책을 펴는 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파월은 트럼프의 압박에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104년 역사’ Fed의 정치적 중립성은 정권이 교체돼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시스템의 힘이고, 시스템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14년 취임 이후 금리를 올린 것은 지난해 11월 단 한 번뿐이다. 그사이 미국의 금리는 한국보다 0.75%포인트 높아졌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커질수록 해외로 돈이 빠져나갈 우려도 커진다.

시장에선 한은의 금리 인상 실기론(失期論)이 나온다. 올 상반기에 적어도 한 번 금리를 올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시기가 미묘했다. 이 총재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을 받아 지난 4월 연임에 성공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 때마다 금리를 동결했다. 부디 정치적 고려와 무관한 한은의 독자적 판단이었기를 바란다.

주정완 커리어TF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