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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1백인 성명'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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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원로 극작가인 차범석 예술원 회장 등 연극인 1백명이 19일 '정부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맹(민예총) 편파인사에 항의하는 연극인 1백인 성명'을 발표한 것은 문화계 보혁(保革)대결을 넘어 참여정부의 문화정책 전반에 대한 문화계의 강도높은 문제 제기여서 주목된다.

이번 집단성명에 참여한 인사들이 진보나 보수의 단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문화계의 대표성과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점부터 우선 그렇다.

국악과 교수 포럼의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사퇴 요구에 이어 이번 연극인 1백인 성명 역시 문화행정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 즉 1백인 성명은 문화관광부 내 문화행정혁신위원회 구성 요구와 함께 문화계 전반의 주요 단체장, 요직 인사의 파행성 지적과 함께 새 문화예술위원회 구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차범석 예술원회장에 이어 연출가 권오일 전 시립대교수, 평론가 이태주 단국대교수, 서연호 고려대교수 등 원로급이 참여한 점도 이번 성명이 보혁대결 내지 문화계 할거주의의 반영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또 현재 연극계 중견들인 윤호진 단국대 교수,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가 동참했다는 점, 연출가 강영걸, 극작가 이만희 동덕여대교수, 배우 허현호 배우협회회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두루 동참했다. 이같은 기존 문화예술계의 집단반발은 새정부 출범 이전부터 한차례 예상됐다.

지난 1월 민예총과 문화연대가 주최한 새 정부의 문화정책과 관련한 세미나에서 문화연대집행위원장인 강내희 중앙대 교수가 "그동안 기득권을 누린 단체들은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 일차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후 문화관광부는 문예진흥원장을 비롯해 최근 영상원장, 국립국악원장,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이르기까지 민예총 관련 문화예술인들을 대거 임명, '심한 편가르기 인사'라는 눈총을 받아왔고 문화계의 반발에 원인 제공을 해왔다. 물론 아직 문화계의 의견이 통일된 것은 아니다. 정남준 민예총 사무총장이나 정희섭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 등의 견해가 그렇다.

그들은"인사에 민예총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은 개인의 역량의 결과일 뿐이며, 인사의 결과도 지켜보기 전에 특정단체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반문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도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연극인들의 참여정부 불신은 일회성이 아니다. 연극인들은 범연극인 비상대책위를 구성, 문예진흥원의 위원회 체제 전환을 막는 투쟁을 벌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연극계에 이어 나머지 장르의 문화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점도 참여정부 대(對) 문화계의 긴장관계에 중요한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지영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연극배우 권성덕씨(마이크 쥔 사람) 등 연극인 1백인으로 구성된 '연극인 비상대책위원회'(가칭) 회원들이 19일 예술단체에 대한 문화부의 편향된 인사와 문화예술진흥법 개정 입법예고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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