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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폐조선소 ‘말뫼의 꿈’ … 일자리 넘치는 관광 허브 변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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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호 25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경남 통영 폐조선소 재생사업의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당선작으로 포스코에이앤씨 컨소시엄의 ‘통영 캠프 마레(CAMP MARE)’가 선정됐다. 사진은 조감도. [사진 LH]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경남 통영 폐조선소 재생사업의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당선작으로 포스코에이앤씨 컨소시엄의 ‘통영 캠프 마레(CAMP MARE)’가 선정됐다. 사진은 조감도. [사진 LH]

‘말뫼의 눈물’. 조선업 몰락을 상징하는 은유다. 1980년대까지 스웨덴은 세계 조선업을 주도했다. 70년 말뫼에 설치된 138m 높이의 1600t급 골리앗 크레인은 스웨덴 조선업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한국 조선업의 공세에 스웨덴 조선업은 백기투항했다. 자존심과 같았던 이 골리앗 크레인은 2003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다. 크레인을 해체해 실은 배가 항구를 떠날 때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를 중계하던 현지 방송에선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15년 전 울산으로 실려왔던 이 크레인이 지난달 25일 가동을 멈췄다. 일감이 없어 35년 만에 공장문을 닫기로 결정하면서다. 조선업황이 회복하지 않는 이상 이 크레인은 다음 번엔 중국으로 실려갈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조선업 망하고 우뚝선 말뫼처럼 #LH, 신아조선소 1조원 재생사업 #국제 공모 통해 ‘캠프 마레’ 선정 #슬라이딩 도크, 공연·광장 재구성 #역사·문화·자연환경 공존 모델 #관광산업 키워 ‘통영의 빛’ 될 것

경상남도 통영의 신아sb 폐조선소 자리에도 아직 이런 크레인이 남아있다. 이 회사가 파산한 게 2015년 11월이다. 조선소 문을 다시 열 게 아니라면 크레인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고철 가치만 따지면 3억5000만원 정도. 채권단이 크레인을 팔아치우려는데, 폐조선소 부지 매입을 검토하던 LH공사가 관심을 보였다. 지난 4월 부지 매입을 완료하면서 크레인 역시 LH의 소유가 됐다.

182m 도크에 무대, 골리앗 크레인 공연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경남 통영 폐조선소 재생사업의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당선작으로 포스코에이앤씨 컨소시엄의 ‘통영 캠프 마레(CAMP MARE)’의 현재 모습이다. [사진 LH]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경남 통영 폐조선소 재생사업의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당선작으로 포스코에이앤씨 컨소시엄의 ‘통영 캠프 마레(CAMP MARE)’의 현재 모습이다. [사진 LH]

LH는 크레인을 고철이 아닌 신아조선소의 역사가 응집된, 조선소를 끼고 반 백년을 살아온 통영 시민들의 인생이 녹아든 상징물로 봤다. 눈물로 골리앗 크레인을 떠나보낸 말뫼는 폐조선소를 그대로 활용하는 친환경적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말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친환경 교육·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났다. 말뫼를 상징하는 크레인이 없어진 탓에 그 자리에는 ‘터닝 토르소’라는 랜드마크 건물을 새로 만들었다.

2016년 말 경상남도로부터 신아조선소 부지의 사업화를 요청받은 LH는 한국판 말뫼를 떠올렸다. 마침 2015년 경남 진주로 이전한 LH는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도시 개발은 LH의 전공 분야다. 다만, 이번에는 접근 방식을 달리했다. ‘개발’이 아닌 ‘재생’에 집중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공약사항인 도시재생 뉴딜사업도 본격화된 상태였다. 매년 10조원씩 5년간 총 50조원을 투자해 전국의 낙후 지역을 정비하는 사업이다. LH는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보전하면서 미래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재생 방법을 제시했고, 1조1000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통영 폐조선소 재생사업은 유일한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뉴딜사업 후보지로 선정됐다.

LH는 도시재생의 큰 틀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4월 마스터플랜 국제공모를 진행했다. 기존의 국제공모와는 달랐다. 건축·도시·조경 분야 외에 부동산컨설팅과 문화·관광 콘텐트 분야 전문업체의 참여를 필수요건으로 제시했다. 하드웨어적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실제 운영상의 실현 가능성과 사업성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달 초 당선작으로 최종 결정된 포스코에이앤씨 컨소시엄(이하 컨소시엄)의 ‘통영 캠프 마레(CAMP MARE)’는 LH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했다. 신아sb 조선소는 도크 안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선박 조립을 마친 후 갑문을 열면 완성된 배가 바다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컨소시엄은 크레인과 크레인이 위치한 슬라이딩 도크 전체를 광장 개념으로 재구성했다.

조희 포스코에이앤씨 디자인사업실 과장은 “182m에 달하는 슬라이딩 도크에 무대를 설치하고 크레인에 대형 스피커를 달면 광장은 훌륭한 대형 야외 콘서트홀이 되고, 드넓은 도크에 컨테이너 박스를 가져다 놓으면 시장으로 변신할 수 있다”며 “그간 닫혀 있던 폐조선소가 열린 광장으로 변신해 시민들과 소통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조 과장은 “만약 골리앗 크레인이 있었다면 말뫼가 굳이 터닝 토르소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며 “LH가 크레인을 남겨둔 덕에 조선소의 역사를 자연스레 보존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배 제작, 음악·공방·해안여행학교 등 유치

폐조선소 재생사업의 교본 격인 스웨덴의 말뫼 전경. [사진 LH]

폐조선소 재생사업의 교본 격인 스웨덴의 말뫼 전경. [사진 LH]

LH가 폐조선소 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중점을 둔 또 다른 부분은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살아있는 도시가 되려면 사람이 모여야 하고, 사람을 모이게 하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신아sb 조선소는 1946년에 설립돼 통영 지역경제를 견인했다. 한때는 세계 10대 조선소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업 침체에 따라 2010년 이후 쇠퇴하기 시작했고, 2015년 11월 파산했다. 이곳에서 일하던 통영 시민들은 5000명에 달했다. 연관 산업까지 감안하면 조선소의 몰락으로 1만2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통영을 떠났고, 도시 재생은 떠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작업까지 포괄해야 한다.

마스터플랜 공모 심사를 관장한 심재호 심사위원장(전 UIA 세계건축가연맹 이사)은 “당선작이 폐조선소 부지를 활용해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해법을 제시했다”며 “당선작에서 제안된 12개 학교 프로그램은 통영 주민 역량을 제고하면서도 외부인을 끌어 모으는 전략으로서 의미있는 시도”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컨소시엄에서 문화·관광 콘텐트 전문업체로 참여한 메타의 최도인 본부장은 “마스터플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바로 일자리”라고 말했다. 최 본부장은 “제조업, 특히 조선업과 관련된 통영의 경제적 기반은 이미 그 기초가 거의 무너진 상태”라며 “우리는 기존의 조선업과 동등한 위치의 제조업이 아니라 통영이 가진 자산과 잠재력을 이용해 새로운 형태의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을 육성해 사람들이 통영을 찾고, 통영에 머물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12개 학교 프로그램이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12개 분야로 나눠 일종의 평생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관련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젝트다. 배 제작이나 음악학교, 공방학교나 해안여행학교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도시·건축디자인 업체인 싸이트플래닝의 이재용 본부장은 “도시의 공간과 자원은 한정돼 있고 도시는 인간과 공존하며 만들어진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며 “도시재생은 이러한 도시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도시를 성장, 발전시키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재생은 시작은 있지만 도시가 살아있는 한 끝이 없는 프로젝트”라며 “폐조선소를 ‘말뫼의 눈물’이 아니라 ‘통영의 빛’으로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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