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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가 천동설 반박한 자필 편지 발견 … 교황청 분노살까봐 줄 긋고 수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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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성경에 기록된 천문학적 현상들은 증거가 부족하다. 성서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중략) 종교 당국은 자연현상을 판단할 권능이 없다.”

영국학술원 도서관서 총 7장 분량

종교재판 직후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알려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쓴, 천동설을 반박하는 내용의 자필 편지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영국 런던의 영국학술원 도서관에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이탈리아 베르가모 대학에서 과학사를 전공한 살바토레 리치아르도 박사가 지난달 2일 영국학술원 도서관을 방문해 온라인 카탈로그를 검색하던 중, 우연히 이 편지를 발견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2일(현지시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직접 작성·수정한 ‘카스텔리에게 보내는 서신’이 영국학술원 도서관에서 발견됐다.(편지 일부분) [네이처]

지난달 2일(현지시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직접 작성·수정한 ‘카스텔리에게 보내는 서신’이 영국학술원 도서관에서 발견됐다.(편지 일부분) [네이처]

이번에 발견된 갈릴레오의 편지는 총 7장 분량으로, 1613년 12월 21일 자신의 친구였던 이탈리아 피사대학의 수학자 베네데토 카스텔리에게 보낸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의 하단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뜻하는 ‘G.G’라는 서명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공개된 편지를 보면, 군데군데 줄을 긋고 수정한 모습이 눈에 띈다. 갈릴레오가 교황청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기존 자신의 주장을 완곡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필적 감정 결과, 편지의 글은 갈릴레오의 필체로 확인됐다.

네이처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갈릴레오가 자신의 지동설이 교황청의 분노를 살 경우를 대비해, 내용을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갈릴레오는 1615년 2월 7일, 니콜로 로리니 도미니크회 신부에 의해 종교재판소에 처음 고발됐는데, 당시 로리니 신부는 갈릴레오가 카스텔리에게 보낸 서신을 조작했다고 전해진다.

갈릴레오는 완곡하게 수정된 편지를 카스텔리에게 돌려받은 후, 로마에서 성직자로 근무하는 자신의 친구 피에로 디니에게 보내 바티칸 교황청에 제출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로리니의 편지가 조작됐음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갈릴레오가 최대한 교황청의 권위에 맞서지 않으려고 치밀하게 노력한 대목이 엿보인다.

그간 과학계는 ‘카스텔리에게 보낸 서신(Letter to Castelli)’으로 알려진 이 편지에 두 가지 버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로리니가 종교재판에 제출한 편지는 현재 바티칸 비밀 서고에 보관돼 있고, 갈리레오가 완곡하게 수정한 편지는 그간 발견되지 않아 어느 것이 갈릴레오의 진의인지 여부가 논란이 돼 왔다.

이번 발견된 서신에는 “성경에 기록된 천문학적 현상들은 증거가 부족하고, 당시 필경사들이 일반인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했기 때문에 성서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기록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종교 당국은 자연현상을 판단할 권능이 없다고도 썼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지지하며 당시 지배적 세계관이던 지구중심설(천동설)에 위배되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리치아르도 박사는 이 서한의 내용과 의미를 자세히 기술한 논문을 영국학술원 저널 ‘노트와 기록(Notes and Records)’ 최신호에 실을 예정이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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