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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버블을 왜 만들어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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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들은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16일 "지방에선 부동산 버블(bubble.거품)이 꺼지고 있다"고 강조하자 "간신히 버티는 시장 존립 기반마저 거품화하는 발언"이라며 발끈했다.

추 장관 발언을 계기로 둘러본 부산과 대구의 부동산 시장은 '집값 정체→매매 단절→입주 지연→분양 침체'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었다.

◆ "버블이라뇨?"=19일 밤 부산의 고급 주거지인 해운대구. 지난해 7월 입주한 우동 A주상복합아파트 600여 가구 중 절반가량은 밤 늦도록 불이 켜지지 않았다. 우동 S부동산 관계자는 "건설사가 잔금을 못 낸 10%가량의 계약자로부터 계약 포기 각서를 받았다"며 "적어도 40%는 빈집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의 주택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침체에 빠져 있다. 해운대 신시가지 내 32평형 아파트에 사는 김모(43)씨는 "3년 전 1억7000만원에 산 아파트를 1억5000만원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며 "상황이 이런데 거품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부산시 남구 용호동 D부동산 관계자는 "매매계약서를 써본 지 벌써 넉 달이나 됐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부산 동의대가 부산의 중개업소 1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31 대책 이후 중개업소당 월 평균 매매 거래 건수가 0.9건으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1.14건)보다 줄었다.

20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범어네거리와 황금네거리 사이에 늘어선 20여 곳의 견본주택 문은 열려 있으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문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구와 울산에서 이달 초 분양된 6개 주상복합 아파트 중 계약률 30%를 넘긴 경우가 한 건도 없다.

최근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수성구 시지동 일대 중개업소에는 '급매'를 알리는 광고문이 빼곡히 붙어 있다. 수성구 황금동 L중개업소 사장은 "인기 단지인 황금동 주공아파트조차 분양가 이하로도 거래가 안 되는데 거품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 공급 과잉 멍들고 규제에 상처 입어=부산과 대구의 부동산 관계자들은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부동산 규제책으로 지방만 골병이 든다고 볼멘소리다. 특히 부산의 경우 업체들이 최근 3년 동안 쏟아낸 10만여 가구나 되는 물량이 발목을 잡고 있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다주택자가 돼 양도세를 물어야 할 판이다. 대구 H건설 임원은 "양도세 중과조치 등 강남 부자들을 겨냥한 규제책이 안 그래도 침체된 지방 부동산 시장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거품 붕괴' 논란으로 부동산 시장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달 초 대구에서 견본주택을 연 A시행사 관계자는 "버블 얘기가 나오면서 방문객과 문의 전화가 뚝 끊겼다"고 말했다. 부산 동의대 재무부동산학과 강정규 교수는 "수요자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판에 거품이 꺼지고 있다는 발언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산업연구원 이상호 박사는 "강남 집값 잡기에 치중된 부동산 정책의 방향이 지방 주택시장 안정을 모색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할 때"라고 제시했다.

부산.대구=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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