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제적 사고에 일대전환을-세계 속의 한국경제를 바로 읽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89년은 분명히 80년대를 마감하고 90년대를 준비하는 한해다. 우리는 80년대를 열심히 살았고, 그 결과 세계적으로 유독 돋보일 만큼 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선진국·개도국·후진국 가릴 것 없이 우리를 부러워한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국제 비교에서 경제적으로 유감 없는 기록을 남겼고, 또 자신감을 축적했다.
최근 몇 해의 경제 성적표를 놓고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러울만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국제경제 여건이 한국에 대해서만 유별나게 좋게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켜 경제만은 반석 위에 올려놓으려 기를 쓴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우리 경제가 선진권 진입의 문턱에 이르렀고 체질도 강화되었으며 이제 어느 정도 웬만한 시련쯤은 극복하고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탄력이 붙었다.
한국이 성숙채무국에서 올해는 채권국으로 자리바꿈을 하게 되고 또 다른 경지의 선진국 대열에의 진입채비를 하게된다.
그런 의미에서 89년 한해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이룩한 경제의 양적·질적 성장에 자만하고, 과실을 서로 나누어 먹기에 열중하고, 낭비하고,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계속 시간을 어물쩍 보내는 것과 90년대를 예비하여 자기도취에서 깨어나고, 잉여를 더 축적하고, 근검절약하고, 화합하고, 조정하면서 노력을 쏟는 결과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날 것이다.
어느 쪽이 될지 예단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정치적 분위기와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경제 민족화의 열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면 우리 경제의 앞날에 불안요인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경제질서가 잡혀가는 과도기다. 정치 민주화와 함께 경제 민주화·자율화·개방화가 동시에 진행되어 혼돈이 이만 저만이 아니며 새 질서가 정착하기까지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경제논리가 정치적 이해타산 앞에서 후퇴하고, 합리적 사고보다는 이기적 사고가 앞서고, 침묵하는 다중보다는 목소리 큰 소수를 더 두려워하고, 이해조정에 실패함으로써 치르는 경제적 손실은 엄청난데도 아직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90년대를 더욱 알차게 보내고 2000년대를 예비하기 외해서는 경제적 사고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지 않고는 안된다.
내다보이는 안팎의 시련과 도전을 생각할 때 우리경제가 순항할 것으로 낙관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대외 경제여건이 날로 각박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가마다 자기 이익보호에는 눈을 부릅뜨고 남의 시장은 철저히 파고들어 무역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는 경제 선진권을 내다보고있으나 우리 경제의 위상은 정확히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끼여 협공 당하고 있는 위치, 바로 그것이다.
이 위치에서 무리없이 상처 안 받고 벗어나야 된다. 바로 이같은 과제가 우리가 당면한 과제중 첫 손가락에 꼽힌다고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 지경에 있는가. 경제가 계속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 주도 경제가 민간주도로 넘어가는 시기에 자율을 앞세우고 책임을 소홀히 하며, 질서있는 경제의 영위보다는 무질서가 횡행하고, 잠재능력의 결집보다는 「제몫」찾기에 과열되고, 국민경제 전체보다는 이해집단의 이익을 더욱 중시하는 풍조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정부의 조정능력마저 실종된 것 같은 느낌이다.
선진권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특유의 「한국병」증후군이 나타난다. 복지욕구는 우리 경제의 발전단계와는 상당한 거리를 나타내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과 마찰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고 있다. 경제가 국제화시대를 맞고 있으나 남의 일처럼 미루어 놓고 기득권과 각자의 영역은 고수하려 든다. 세계경제권은 블록화로 분할이 시도되고 있으나 우리의 우둔한 신경이 깨어날 줄 모른다.
경제는 끊임없이 살아서 숨쉬고 생동하고 있는데도 우리의 의식과 경제관은 구태의연하며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산 자동차가 외국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한국의 첨단 반도체가선진국에 수출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세기초의 경제적 종속 이론이 절규되며 노사간에 주고받는 시선에서 서로가 불안을 느낀다. 산업평화가 정착할 날은 기약이 없다.
우리는 피와 땀으로 이룩해놓은 저력을 바탕으로 또 한번 용솟음 쳐야 할 때에 이르렀으나 자칫하면 눈앞에 고지를 두고 좌절할지도 모른다. 꿰어놓은 구슬알이 흩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안고있다.
경제주체들이 각자 자기 위치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분별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제는 경제도 관료적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저력이 축적된 민간경제의 영역을 넓히고 시장경제의 창달을 위해 과단성있게 나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결단해야하는 중요한 고비를 맞고있다. 과감히 취할 것 과 떨쳐버릴 것을 확연히 구분해 결정해야 한다.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해야할 일은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하는 것이 우리경제를 새로운 경지로 진입시키는 선결요건이다. 정부·기업·근로자가 결행해야할 일은 수없이 많다.
파이를 놓고 하는 다툼은 빨리 끝내야 되고 산업재편과 구조조정 및 고도화는 시급하다.
기업이나 근로자들은 세계경제 속의 한국경제를 보는 안목을 더 넓히고 국민경제의 내재가치를 더욱 키워 더 큰 과실을 노려야한다. 정부는 우리경제의 음지와 양지를 함께 다스리면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경제를 영위해야 되고 기업인은 더 높은 기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면서 국제적 생존전략을 구상해 펴나가야 한다.
근로자들은 희생이 아닌 타협으로 경제에너지의 낭비가 없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취약한 기술수준, 냉혹한 경쟁, 그리고 우리 면전에 클로스업 되고있는 북방으로부터의 바람 등 경제의 실상과 여건을 감안할 때 지금우리에게는 엄청난 과제가 주어져있으며 그 과제를 잘 풀고 못 푸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다함께89년의 경제적 의미를 생각해보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