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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리 발사장 폐기 구체적 언급 … 북한의 트럼프 맞춤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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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19 평양선언] 비핵화 명문화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19일 평양시 백화원 영빈관에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남북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뒤쪽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19일 평양시 백화원 영빈관에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남북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뒤쪽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평양 공동선언 발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남과 북이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을 합의했다.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동선언 5항을 뜻하는 발언으로, 전문가가 참관한 가운데 북한의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 폐기→미국의 상응하는 조치→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등 추가조치가 골자다.

동창리 폐기→미국 조치→영변 폐기 #김정은, 비핵화 의지 재확인했지만 #전문가 “워싱턴 움직이기엔 역부족”

이는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한 것보다 구체적이다. 남북 정상이 서명한 문서에 비핵화 조치를 명문화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공개적으로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공동선언 5항에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 것은 북한이 이전과 달리 한국을 북핵 협상의 당사자로 인정했다는 의미도 있다(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특히 북한이 우선적으로 취할 조치로 동창리 폐기와 검증을 내세운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위한 맞춤형 전략의 성격이 짙다. 외교 소식통은 “동창리 폐기는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약속을 받아낸 외교적 성과로, 김정은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조치하겠다는 뜻”이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의미도 있다”고 해석했다. 이를 통해 평양 남북 정상회담→유엔총회 계기 한·미 정상회담(24일)→2차 북·미 정상회담→서울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청와대가 그리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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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양 공동선언에 근본적 비핵화 조치는 빠져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미국이 그간 일관되게 요구해 온 핵시설과 핵물질, 핵 프로그램의 신고 등이다. 동결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메시지는 계속 주면서도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북한의 본질적 핵능력 폐기와 관련한 부분은 마지막 순간의 카드로 남겨두는 것 같다”며 “문서화하지 않은 합의가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선언문을 보면 본질적 부분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창리 폐기도 의미 있는 조치지만 비핵화 초기 조치로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은 이미 ICBM 완성을 선언했으며, 북한이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유도 기술은 시험발사 없이도 개발이 가능하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다. 미 외교전문지인 더 디플로맷의 앤킷 판다 선임 에디터는 “이동식 발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전한 폐기는 아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완강한 태도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을 움직이는 데 충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라는 새로운 카드에도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렸다.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북·미 관계 개선 및 종전선언을 포함한 평화체제 구축 조치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이는 북한이 주장해 온 동시행동 원칙을 합의문에 구체화한 것으로,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받아들인 것과 같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군사 긴장 완화 등에서 남북관계는 빠른 속도로 나가는데 비핵화는 별다른 진전이 없어 ‘양자병행’ 입장에 어긋난다”고도 지적했다.

또 한·미 정보당국은 ‘강선’으로 알려진 제2의 비밀 핵시설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영변 외의 핵시설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영변 핵시설이 노후화했고, 이미 국제사회에 노출된 점을 고려하면 이를 폐기한다고 해도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에 큰 지장은 없다”고 설명했다.

평양=공동취재단, 유지혜·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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