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도로 연결 연내 착공 못 박아 … 제재 해제가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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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선언] 남북 경협

최태원 SK 회장(왼쪽)이 19일 오찬장인 평양 옥류관에서 대동강을 배경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 회장(오른쪽부터)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이날 오후 경제인 사절단은 방북 첫 현장방문 일정으로 평양~개성고속도로 인근 조선인민군 122호 양묘장을 방문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최태원 SK 회장(왼쪽)이 19일 오찬장인 평양 옥류관에서 대동강을 배경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 회장(오른쪽부터)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이날 오후 경제인 사절단은 방북 첫 현장방문 일정으로 평양~개성고속도로 인근 조선인민군 122호 양묘장을 방문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서명한 ‘9월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 선언(4월 27일)을 더욱 진전시킨 내용이다. 평양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금년 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하였다”며 연내로 시한을 못박았다. 또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른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우선 정상화 및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협의”를 담았다. 철도·도로 연결 시한을 확정한 것은 정부가 ‘대륙 진출’을 위한 철도·도로 연결에 공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도 담아 #당장 아니지만 재개 의지 표현 #철도·도로 현대화 땐 비용 부담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그리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한반도 서해안 축과 동해안 축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로 진출하고, 휴전선 부근에서 두 축을 연결해 경제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정책이다. 철도·도로 연결은 정부가 3·1절 100주년을 맞는 내년에 기차를 이용해 중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서두르는 측면도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016년),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2008년)으로 중단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문제를 이번 정상 선언에 담은 점도 주요한 결과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그동안 언급 자체가 금기시됐다. 하지만 이번 평양선언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경협의 우선 과제로 꼽아 향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논의를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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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위 당국자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을 당장 재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도 “이번 합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북한의 비핵화를 진전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남북은 2032년 여름 올림픽의 공동 유치를 위해 노력하기로 명시했다.

남북이 이날 진전된 경협 합의를 내놓았지만 넘어야 할 과제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대북제재의 벽을 넘어야 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 2087호와 2094호는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벌크 캐시(bulk cash·대량 현금)의 대북 유입을 금지하고 있다. 안보리 결의 2397호는 철도·궤도용 기관차, 신호 설비, 차량 등 품목의 대북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없이 현재의 상황이 유지될 경우 철도·도로 연결 공사에 나서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게 된다.

정부는 지난달 하순 남측의 철도 기관차와 차량을 이용해 북한 지역의 철도와 도로 환경을 조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엔군사령부가 휴전선 통과를 불허해 연기됐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그때(착공식)까지 (대북제재를)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기보다는 현재 시점에서 일을 끌어가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현한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진전시켜 대북제재를 일부 해제하거나, 예외조항으로 인정받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내 착공식을 못박은 만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그때까지 풀리지 않으면 정부는 제재를 위반하지 말라는 미국과, 정상 간의 약속을 지키라는 북한 사이에 끼이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또 북한이 북한 지역 내 철도·도로 현대화를 요구할 경우 대북제재 위반 논란을 떠나 조사와 설계 등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기술적으로 앞으로 3달여 남은 기간 동안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물론 북한의 철도·도로 현대화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대규모 남북 경협사업이라 국내 여론의 설득도 만만치 않다.

평양=공동취재단,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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