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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이전프로젝트]"세종시는 블랙홀, 충청권 분열만 커져"

중앙일보

입력

“균형 발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긍정적 결과는 부족하다. 이제는 기대도 서운함도 없다.” (대전 택시 기사 A 씨)
“주변 도시는 세종시에 인구를 뺏기는 블랙홀 현상을 우려한다. 공공기관 말고 기업 이전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대전 회사원 B 씨)

세종시와 국토 균형 발전에 대한 생각을 묻는 말에 택시기사 A 씨는 “세종시가 서울 인구가 아닌 주변 도시를 흡수하면서 크고 있다”며 “우리(대전)는 이제 기대하는 것도 없다”고 답했다.

지난 6일 ‘2018 대한민국 균형발전박람회’가 개최되는 대전을 찾았다. 세종시가 자리하고 있는 충청도는 2003년부터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돼온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충청은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이라 칭하며, “충청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0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국가 균형발전정책과 세종시의 탄생’을 지켜본 시민들의 소회를 들어봤다.

지역‘균형’발전이 아닌 지역‘소멸’발전

“길이나 내줬지, 받은 혜택은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인구가 빠져나가서 걱정이죠”라며 날 선 비평을 택시기사 A 씨가 내놓았다. “대전도 대전이지만, 천안·공주도 타격을 많이 받았다. 빠져나간 인구가 상당하다”며 “거기다 KTX 세종역을 두고 충청권 내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균형발전정책이 추진된 이래, 신도시가 주변 중소 도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과 ‘충청도 내 분열’만 커졌다고 했다. 지난 4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발언에 관해 묻자, “공공기관이 세종으로만 가서 여기는 별로 얻는 게 없을 것”이라며 "대전까지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려면 기업이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세종시는 출범 6년 만에 인구가 30만 명을 돌파했다. 매년 3만~5만 명씩 인구가 유입돼, 출범 당시 10만 명 수준이던 인구가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런 세종시의 성장세에 주변 도시들은 우려를 보내고 있다. 택시기사 A 씨의 말처럼 실제 유입된 인구 중 대부분이 대전을 비롯한 인근 도시에서 주소를 옮긴 사람이었다.

대전은 2014년 153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해 지난 2월에 인구가 150만 명을 밑돌았다. 청주가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 5000명이 세종시로 빠져나갔고, 올해 상반기엔 2800여명의 주민이 세종시로 거처를 옮겼다. 낙수효과를 기대하던 충청 도시들은 오히려 세종에 인구를 뺏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충청북도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익명을 요청한 공무원 C 씨는 “인구 유출이 심각하다”며 “이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으로써는 세종에 힘을 실어주는 게 맞는다고 본다”며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취지에 공감을 표명했다. 세종을 바라보는 인근 지역민의 민심에 대해 “이익이 제대로 공유되지 못해서 그렇다”며 “나쁘든 좋든 행정 기능이 세종시로 몰릴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외연을 키워갈 것인지와 발생하는 이익을 주변 도시들과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협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파트값'으로만 기억되는 세종시

“세종시요? 세종시 하면 아파트죠”라며 전업주부 D씨가 답했다.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그는 “지역균형발전, 세종시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치솟는 아파트값에 눈길이 먼저 간다”며 “주변에서 몇억이 올랐네, 어쨌네 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세종시에 아파트를 샀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있다”고 터놓았다. 미혼이라 밝힌 E 씨 역시 “세종시 하면 아파트값 올랐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며 “하지만 (대전은) 세종시로 인한 반사 이익이 전혀 없다. 오히려 대전 땅값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생각을 전했다.

실제 지난 5월 KB국민은행에서 발간한 부동산시장 리뷰에 따르면 세종시 토지 가격 상승률이 0.55%로 전국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세종시의 주택 거래량은 5개월째 (지난 3월 기준) 많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감정원이 지난 1월 발표한 ‘2017년 주택시장 결산’에서도 세종시의 주택은 4.29% 올라 전국에서 주택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F 씨는 “아파트값을 보면 ‘세종으로 이사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학원과 교육시설이 부족해 세종시로 이사하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그는 “임신한 젊은 엄마들은 혜택이 많은 세종시로 쏠리고 있지만, 자녀가 초등학생만 돼도 생각이 달라진다”고 했다. “대전도 이런 데 서울에서 중·고등학생 자녀를 가진 학부모들이 내려오겠냐”며 “서울에서 세종으로 내려오는 사람은 적은 거로 안다”고 평했다.

세종 국회의사당 분원 설치와 공공기관 이전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이해찬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는 다들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대전 주민들은 “(공공기관 이전이) 피해도 없지만, 딱히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목적과 취지는 공감하지만, 항상 ‘과연?’이란 생각이 있다”며 “정말로 서울 사람들이 내려오려면 공공기관 이전 외에 의료·교육 인프라도 등도 생겨나야 하지 않겠냐”고 의견을 밝혔다.

대전 소재 고등학생인 G 군은 "국가균형발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도 “문화생활과 볼거리들이 여전히 다 서울에만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회사원 B 씨는 “대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전에서 직장 구하기는 힘들었다”며 “단순히 공공기관과 행정부처를 옮기는 것 외에 이제는 산업·문화·교육과 같은 생활 전반의 시설들이 함께 들어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종시가 생겨나면 충청권이 다 같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아직은 이렇다 할 구체적인 성과가 안 보인다”며 “뭔가 할 거면 적극적으로 하고, 분명한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없다면 충청도는 갈등만 안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우아정·김지수 국회이전프로젝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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