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 '다빈치코드' 기대 이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화 '다빈치 코드'의 오전 첫회를 보고 왔습니다.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더라"는 옛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소설을 읽은 관객은 지루할 것 같고,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은 스토리를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극장 앞은 오전 이른 시간부터 이미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길을 하나를 사이에 두고 CGV와 롯데시네마가 나란히 자리잡은 명동으로 나갔습니다. 오전 10시 영화를 보기 위해 9시50분쯤 명동 CGV에 갔더니 이미 표가 없었습니다. 조조 상영분이 매진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길 건너 롯데시네마에 갔더니 다행히 오전 10시30분 티켓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나마도 상영 10분 전에 매진이 되더군요.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저녁 시간은 일찌감치 매진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실 생각이 있으신 분은 예매를 서두르는게 좋을 듯 합니다.

영화는 솔직히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상영시간이 2시간30분이나 되다 보니 군데군데 조는 사람도 눈에 띄더군요. 어차피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다지 긴장을 느끼긴 어려웠습니다. 소설을 읽어서 이미 결과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소설에서는 수수께끼를 하나 푸는 데 한참을 고민해야 하지만 영화에서는 시간 관계상 뚝딱 풀어버리는 게 싱겁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론 영화에서 '스승'의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엄청난 비밀을 폭로하는 양 뜸을 들였지만 이미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마당에 조금 답답한 느낌도 들더군요. 소설의 중요한 재미는 고대 신화학.종교학.역사학 등에 대한 깊고 풍부한 해석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자세한 설명없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아빙가로사 주교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작게 취급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많이 있었습니다. 랭던 교수와 소피가 파리 교외에 있는 티빙 경의 집으로 피신한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곳에서 티빙은 예수가 신이라는 기독교의 교리는 조작된 것이고,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그 후손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니케아 공의회에 대한 매우 독특한 주장을 펼칩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공부하신 분은 알겠지만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가 신이 아니라 인간일 뿐이라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해 단죄하고 예수는 신인 동시에 인간이고 그러므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삼위일체를 이룬다는 교리를 확립한 회의였습니다. 따라서 니케아 공의회를 부정하는 것은 곧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티빙의 말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 별로 신빙성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참고로 저는 개인적으로 가톨릭 신자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믿음이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역시 소설을 영화로 옮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란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아무리 상영시간을 길게 하더라도 영화는 소설을 대폭 축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상력의 부족, 지나친 비약 등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반감케 합니다. 영상적으로는 프랑스와 영국의 명소를 간접 체험하는 재미가 있긴 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화려한 조형물, 프랑스와 영국의 오래된 건축물을 보는 것은 괜찮았다는 말입니다. 다빈치의 명화를 간접적으로 감상할 기회는 많지 않은 점은 아쉬웠습니다. 혹시 영화를 보러 가실 분은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 유럽의 명소를 화면으로 둘러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시면 어떨까 합니다.

주정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