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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대졸 1000여 명 일본 IT 기업에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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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 IT기업에서 5개월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김병국씨(왼쪽)가 일본인 동료 하나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일본 도쿄(東京) 인근 사이타마(埼玉)현.

오전 6시. 김병국(32)씨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째 야근을 했다. 일본 정보기술(IT) 회사는 오후 6시면 어김없이 퇴근할 수 있다더니…. 일본 기업에서도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에 일이 몰리긴 한국과 마찬가지다.

김씨는 올해 1월 일본에 건너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업체인 SDC테크노에 입사했다. 이 회사 직원 50명 중 20명이 한국인 프로그래머다. 모두 학벌이 좋다. 다들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김씨는 한국에서 동국대 정보관리학과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하지만 중소기업 관리직 외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일도, 보수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에선 IT 인력을 괜찮게 대우해 준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2005년 3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위탁한 한 연수기관에 입학했다. 10개월간 컴퓨터 기술과 일본어를 배웠다. 정부가 400만원을 지원해줘 학비는 40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일본에서 김씨가 받는 초임 연봉은 원화로 3000만원 정도. 야근 수당도 잘 챙겨준다. 김씨는 "지난달엔 야근을 많이 했더니 수당만 100만원이나 나왔다"고 했다.

비싼 물가와 일본 특유의 직장문화는 그가 이겨내야 할 몫이다. 직장이 있는 도쿄까지 출근시간은 1시간20분. 지하철 요금만 원화로 왕복 8000원이 넘는다. 비교적 집값이 싼 위성도시에 6평 남짓한 방을 얻었지만 월세가 62만원이나 한다. 그래도 일본 회사는 교통비.통신비를 꼭 챙겨준다.

김씨는 "점심시간에 한마디 대화도 없이 각자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 먹는 직장문화는 아직도 어색하다"고 했다. 가끔은 "밥 먹으러 갑시다" 하고 동료와 함께 우르르 식당으로 향하는 '한국식'이 그립다.

# 서울 삼성동 한국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센터.

12일 올 1월에 입학한 무역아카데미 IT마스터 과정 11기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11기 연수생 102명은 모두 대학 졸업자다. 3 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이들의 꿈은 '디지털 노마드'(첨단 디지털 실력을 갖추고 여러 나라를 옮겨다니며 일하는 21세기형 유목민). 갈 길은 멀다. 무역아카데미 김길태 교수는 "연수생들은 올해 12월까지 1년간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집중적인 교육과 실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IT 기업이 한국 젊은이의 취업 비상구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표적인 해외 취업 지원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일본 IT 기업 취업 실적은 2004년 61명에서 2005년 315명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 4월 말까지 160명이 취업했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발급한 기술비자 건수도 ▶2003년 472건 ▶2004년 645건 ▶2005년 1018건으로 가파른 상승세다.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채수연 연구원은 "일본 IT 취업자가 최근 2~3년간 매년 1000~1500명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행 IT 취업자가 늘어난 것은 청년 구직난이 심각한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경기 회복세와 IT 분야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인 '이재팬(e-Japan)'이 맞물리면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 IT서비스 전문기업인 트랜스코스모스(TCI)의 니시무라 마사요 본부장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일본 취업 설명회에 참석, "현재 일본의 IT 인력은 42만 명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일본의 IT서비스 시장이 2009년에는 11조 엔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인 만큼 일자리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오영훈 라이프커리어전략연구소 소장은 "요즘 일본 열도는 경기 회복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며 "내년 봄 대학 졸업 예정자까지 미리 뽑을 정도로 기업들의 채용 붐이 과거 버블경제 시대에 버금간다"고 말했다.

서경호.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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