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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씨 "50개 갖다달라" 두번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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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완씨는 지난달 29일 변호인을 통해 현대 비자금 2백억원과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적은 자술서를 대검 중수부에 제출했다.

1990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당시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평민당)과 교분을 맺은 경위에서부터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에게서 2백억원을 받아 權씨에게 전달한 과정, 남은 50억원의 행방 등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담당 변호사가 미국으로 가져간 검찰의 질문서에 맞춰 작성한 것으로 A4용지 12쪽 분량이다.

金씨는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그는 자술서 말미에 자신의 진술로 인해 權씨가 어려운 처지에 빠질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가 자술서에서 밝힌 내용 중 대북사업 관련 청탁 및 2백억원의 전달 경위다.

◇정몽헌과 권노갑을 소개시켜 주게 된 경위 및 대북사업 관련 부탁 여부

-98년 4~5월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정몽헌이 대북 사업과정에서 김대중 정권 실세인 권노갑을 알아두고 싶다면서 소개를 부탁했다. 그래서 평창동 현대하이츠빌라로 정몽헌과 이익치를 안내했다. 정몽헌이 권노갑에게 대북사업을 설명하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權은 "햇볕정책에 도움이 된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99년 2~3월 평창동 신원빌라로 이사갔을 때 정몽헌과 이익치를 데리고 또 방문했다.

-99년 여름 정몽헌.권노갑이 내 집에 찾아왔다. 이익치가 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당시 권노갑은 골프 이야기를 주로 했고, 정몽헌은 북한에 다녀온 이야기를 주로 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정부 허가가 안 나 하루에 3억원씩 적자다. 정부에서 도와달라는 취지로 부탁했고, 권노갑은 "힘 닿는 대로 돕겠다"고 했다.

-나도 권노갑에게 98년 11월 금강산 카지노 면세점 허가가 안 나 어려우니 현대를 도와 주라고 했다.

-나는 금강산에 카지노가 설립되면 내가 카지노 사업을 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현대 비자금 2백억원 전달 경위

-2000년 2~3월 정몽헌이 나를 오라고 해서 갔다. 그는 "2백억원이 준비되면 이익치 회장이 연락할 테니 받아서 좀 전해 줘라"고 말하기에 정몽헌이 총선자금용으로 준비한 돈을 나를 통해 권노갑에게 전달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직접 연락해 봐"하면서 權의원과 직접 연락되는 휴대전화 번호를 정몽헌에게 적어 줬다. 그때 나도 연락을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이익치가 "돈 준비됐으니 큰 차 가지고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뒷길로 오라"고 해 "내 차(에쿠스)도 큰데"하고 농담조로 반문하자 이익치가 "봉고차 가지고 오라"고 한 기억이 난다.

집에 전화해 처에게 "봉고차(밴) 운전기사를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앞으로 보내라"고 말한 후 나도 나가 기다렸다.

이익치 회장의 심부름을 온 운전기사가 부근에 도착해 내 휴대전화로 연락해 내 기사와 만나게 했고, 내 기사에게 돈 상자를 옮겨 실으라고 전화로 지시했다.

나는 현장에서 약 20m 떨어진 위치에서 보고 있다가 돈 상자를 전부 옮겨 실은 걸 확인한 다음 내 기사에게 "상자를 집으로 옮겨 놓으라"고 휴대전화로 지시했다. 나도 집에 가서 확인했다. 한 상자를 뜯어 확인해 보니 현금 1천만원 뭉치로 20개인 2억원이 들어 있었다. 다른 상자들도 크기가 같았다. 권노갑을 찾아가서 "정몽헌이 2백억원을 준비해 일부 도착했다"고 했더니 권노갑이 "알았다"고만 해 보관하고 있으라는 것으로 알았다.

그후 며칠 뒤 이익치 회장에게서 같은 방법으로 연락을 받고 돈 상자를 서너차례 더 옮겼다. 권노갑에게 상자의 돈을 풀어 전달하는 과정에서 2백억원인 줄 알았다.

-하루는 권노갑이 연락해 "50개만 갖다 달라. 집으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기에 집 찾기가 어려울 듯 해 "저의 집 부근 큰 길가에 있는 ○○부동산 앞으로 오후 10시까지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고 돈 상자 25개(50억원)를 혼자 들어서 차고 문 안쪽에 옮겨 놓고 전달할 준비를 한 다음, 약속시간에 승용차를 운전하고 갔다. 부동산 인근에 도착한 봉고차 기사에게 "10시에 약속한 분?"하고 묻자 "맞다"고 해 차를 따라오라고 해서 그 사람과 단 둘이 날랐다.

며칠 후 또 50억원을 같은 방법으로 전달했다. 첫번째 50억원 전달 시점과 두번째 50억원 전달 시점 중간과 두번째 50억원 전달 후 내가 권노갑의 연락을 받고 6억, 8억, 10억원씩 권노갑에게 전달한 사실이 있다.

-돈 상자에 들어 있는 돈뭉치를 꺼내 가방 한개에 1억원씩 2개를 만들어 양손에 들고 차에 옮겨 싣고 운전해 권노갑에게 전달했다. 4.13 총선 이전의 마지막 전달 시점은 4월 11일로 기억한다. 그날 10억원을 갖다 줬다. 그렇게 해서 모두 1백50억원을 전달했다.

◇남은 돈의 행방

-남은 돈 50억원은 임○○를 시켜 박스 채 10억원씩 다섯차례에 걸쳐 그대로 전해줘 무기명 채권을 사 두도록 지시했다. 매입 관리토록 한 것이다. 50억원 상당은 국내 지인에게 맡겨 보관 중이다. 추후 절차에 따라 검찰에 제출하겠다.

-권노갑은 2004년 총선에서 동대문 지역구에 출마할 예정이었다. 남은 50억원은 다음 총선 자금으로 사용하려고 관리를 맡긴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권노갑에게 10억원을 빌려준 사실이 없다.

-權의원과 최근까지 오랫동안 아주 친하게 지내왔는데 저의 진술로 어렵게 될 것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내가 정몽헌에게서 2백억원을 받아 권노갑에게 1백50억원을 전달하고 50억원을 관리한 건 사실이다.

2003년 8월 김영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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