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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열병식, '美 눈치'에 ICBM 숨기고 '韓공격' 신무기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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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천마 계열 전차가 주석단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천마 계열 전차가 주석단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북한 정권 창건 기념일인 9일 오전 평양 일대에 공습 경보가 울렸다.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린 뒤 전차ㆍ장갑차 수 십여대가 평양 시내 중심으로 질주했다. 대동강변에 줄지어 늘어선 군 장비들이 열병식이 열리는 김일성 광장에 몰려가던 순간이다. 이날 평양을 방문한 외신 기자들이 외부로 알려온 현장 분위기다. 앞서 이날 오전 정부 소식통은 “열병식은 10시쯤 시작해 90분 가량 진행 됐다”고 전했다.

미국 사정권 ICBM 3종 세트 자취 감춰 #재래식 무기 첨단 기술 개발은 열심히 #대구경 자주포 길이 늘려 사거리 키워 #신형 대전차로켓 장갑차 최초 공개해

북한에서 열병식이 열렸던 9일 대동강 변에 줄지어 늘어선 군 장비. [사진 Kyodo News=AP=연합뉴스]

북한에서 열병식이 열렸던 9일 대동강 변에 줄지어 늘어선 군 장비. [사진 Kyodo News=AP=연합뉴스]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노동ㆍ스커드 미사일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이 스커드 등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이후 열병식에서 공개하지 않는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이는 지난번 열병식과도 큰 차이점이다. 북한은 지난 2월 8일 건군절 70돌을 맞아 개최한 열병식에서는 ICBM급인 화성-14와 화성-15를 공개했다.

지난 2월 건군절 열병식에 등장했던 ICBM급 화성-15형.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열병식 하루 지난 9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사진 노동신문=연합뉴스]

지난 2월 건군절 열병식에 등장했던 ICBM급 화성-15형.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열병식 하루 지난 9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사진 노동신문=연합뉴스]

화성-15는 북한이 지난해 11월 처음 시험 발사한 탄도미사일이다. 사거리가 1만3000㎞ 수준이라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다. 화성-14는 지난해 7월 처음 시험 발사한 미사일로 사거리가 1만㎞ 정도로 미 동부 지역을 타격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번 열병식에서 화성-12도 선보였는데 사거리가 8000㎞ 안팎이어서 미 알라스카를 공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지난번 열병식까지만 해도 미국을 겨누는 모든 미사일을 총동원해 ‘핵 무력 완성’을 과시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무력 시위를 했다고 평가됐다.

북한이 9일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대전차로켓으로 무장한 장갑차 [사진 = Ankit Panda 트위터 캡처]

북한이 9일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대전차로켓으로 무장한 장갑차 [사진 = Ankit Panda 트위터 캡처]

ICBM은 없었지만 신형 무기가 등장했다. 신형 대전차로켓은 장갑차 위에 로켓 발사대로 보이는 장비를 얹었다. 차체 크기를 줄이고 궤도를 바퀴로 바꿔 기동성과 생존성을 높였다. 러시아 장갑차 BTR-80을 기본으로 개량해 바퀴를 8개에서 6개로 줄여 단축했다. 예전에도 종종 북한 열병식에서 발견됐던 차륜형 장갑차인데 그동안은 단순하게 기관총을 장착했었다. 이번에 선보인 신형 무기는 전차 등 기계화 부대와 함께 움직이는 지원장비로 추정된다. 보통 기계화 부대는 공중위협 막아내는 장비와 함께 다닌다. 이날도 대공 미사일 장비가 공개됐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대공미사일 부대가 주석단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대공미사일 부대가 주석단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정보당국은 신형 대전차로켓이 러시아 대전차로켓을 개조한 불새-3 개량형으로 보고 있다. 북한에서 ‘불새’라고 부르는 휴대용 대전차미사일(열압력탄)이다. 기화폭탄의 일종으로 열과 압력의 효과를 복합적으로 극대화해 기존 고폭탄 파괴력보다 크다. 북한이 개발한 미사일의 구경은 93㎜, 직경 120㎝, 무게 26㎏, 사거리 3㎞ 수준으로 알려졌다.불새 대전차로켓은 북한이 중동 무장단체 하마스에 수출했다가 발각됐던 무기다. 북한은 앞서 대전차로켓을 탑재한 천마ㆍ선군 계열 전차를 공개했다. 이날도 개량형 불새를 장착한 전차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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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공개한 신형 자주포는 기존 130mm 포신을 152mm 키워 사거리를 늘렸다. [사진 AP=연합뉴스]

북한이 9일 공개한 신형 자주포는 기존 130mm 포신을 152mm 키워 사거리를 늘렸다. [사진 AP=연합뉴스]

새로운 무기는 또 있다. 신형 152㎜ 자주포는 중국 PLZ-05와 유사한 형태다. 이날 공개된 신형 자주포는 기존 152㎜ 자주포를 개량했다고 보여진다. 포신 길이를 늘렸고 포탑 크기가 커졌다. 기존 152㎜ 자주포는 포 구경은 크면서도 짧고 뭉툭한 외형이 특징인데 사거리는 17㎞ 정도에 그쳤다. 이번에 개량된 자주포 사거리는 50여㎞ 수준으로 늘어 났다고 추정된다. 한국군이 자랑하는 명품 무기 K-9 자주포는 155㎜ 화포로 무장하고 있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선군호 전차 부대가 주석단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선군호 전차 부대가 주석단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2009년 개발한 신형 전차 ‘선군-915’도 다시 한번 공개했다. 개발 초기에 ‘폭풍호’로 잘못 알려졌지만 북한에서 선군사상을 강조해 개발한 ‘선군호’가 정확한 명칭이다. 신형 전차는 44t으로 기존 천마호 보다 4t 이상 무거워졌다. 다만, 길이는 7m, 넓이 3.5m, 높이 2.2m로 크기는 비슷하다. 최고속도는 시속 60㎞, 항속거리는 500㎞ 수준으로 성능이 다소 좋아졌다. 북한군 주력인 천마 계열 전차도 선군호와 함께 줄지어 이동했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한국 수도권을 노리는 북한 자주포 부대가 주석단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한국 수도권을 노리는 북한 자주포 부대가 주석단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우리 수도권을 사정권에 두는 장사정포도 등장했다. 170㎜ 자주포는 군사분계선 10㎞ 이내에 배치되어 있다. 사거리 40㎞~60㎞을 감안하면 휴전선 남쪽 30㎞~50㎞까지 공격이 가능하다. 휴전선과 서울 시청은 40~50㎞, 잠실 종합운동장은 50~60㎞ 정도 거리다.

북한 300㎜ 방사포 [중앙포토]

북한 300㎜ 방사포 [중앙포토]

이날 선보인 300㎜ 방사포는 지난 2013년 5월 처음 포착됐다. 당시 이지스함은 북한 원산에서 발사된 단거리 발사체 2발이 북동쪽으로 140∼150㎞ 날아가는 궤적을 포착했다. 처음에는 지대지 미사일 추정했으나 위성사진 분석 결과 300㎜ 로켓을 판단됐고, 코드명 ‘KN-09’를 붙였다. 사거리가 늘어나 위협의 범위가 서울을 넘어 평택 미군부대까지 확대됐다. 북한은 중국제 WS 계열과 러시아 BM-30을 수입해 모방 개발했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공군 전투기가 축하비행을 보이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공군 전투기가 축하비행을 보이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비교적 최근에 개발한 대공 미사일과 대함 미사일도 등장했다. 북한에서 '번개'로 불리는 대공 미사일은 러시아에서 개발한 S-300을 참고해 개발됐다고 추정된다. 콜드런칭 방식으로 발사하는 구조로 미사일을 일단 공중에 띄운뒤 엔진 점화가 시작돼 전투기 방향으로 날아간다. 이보다 성능이 뛰어난 S-400은 미군이 운용하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DD·사드)와 성능이 비슷하다. 북한에서도 S-400 수준 성능을 보이는 무기를 개발했다는 동향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대함 미사일 장비가 줄지어 주석단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대함 미사일 장비가 줄지어 주석단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대함 미사일도 콜드런칭 방식으로 발사하는 신형 무기다. 비교적 사거리는 짧지만 남북한 해군이 근접하는 서해와 동해에서 한국군을 노리는 치명적인 무기다. 북한은 미국 눈치를 보면서 장거리 무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남북대화 당사자인 한국은 무시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군대가 과거 항일유격대 당시 복장을 갖추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9일 열병식이 열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군대가 과거 항일유격대 당시 복장을 갖추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북한은 이번 열병식을 정권 창건 기념에 목적을 두고 진행했다. 하늘에선 폭죽과 함께 축하비행을 열었다. 북한 정권은 항일 무장 혁명에 뿌리를 둔다고 강조한다. 김일성 전 주석이 항일 무장 혁명을 주도했다는 주장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도 항일 유격대인 '조선인민혁명군' 복장을 재현한 장병들이 등장했다.

열병식에 앞서 요란한 공습 경보는 왜 나왔을까. 북한군 고위급 출신 탈북 인사는 “지난 2008년에도 사이렌이 울렸지만 드문 일이다”면서 “행사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병식에 김정은이 나오면 경호 때문에 휴대폰 뿐 아니라 군 부대 통신도 모두 끊어진다”고 말했다. 이날 열병식에 참여한 병력은 1만 2000명에 동원된 군중은 5만 여명으로 추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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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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