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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하나 된 광주 국군병원 옛터...역사를 위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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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18광주비엔날레에서 올해 시도한 광주의 역사적 장소와 작품을 연계한 ‘GB커미션’. 영국 작가 마이크 넬슨은 옛 국군광주병원의 거울을 소재로 옛 교회 안에 작품 ‘거울의 울림’을 선보였다. [사진 광주비엔날레]

2018광주비엔날레에서 올해 시도한 광주의 역사적 장소와 작품을 연계한 ‘GB커미션’. 영국 작가 마이크 넬슨은 옛 국군광주병원의 거울을 소재로 옛 교회 안에 작품 ‘거울의 울림’을 선보였다. [사진 광주비엔날레]

영국 설치작가 마이크 넬슨의 '거울의 울림'. 거울은 국군병원에 있던 것들이다. [사진 이은주 기자]

영국 설치작가 마이크 넬슨의 '거울의 울림'. 거울은 국군병원에 있던 것들이다. [사진 이은주 기자]

마이크 넬슨의 작품의 설치된 교회의 전경. [사진 광주비엔날레]

마이크 넬슨의 작품의 설치된 교회의 전경. [사진 광주비엔날레]

반전의 드라마가 따로 없다. 처음엔 나무 냄새를 맡으며 느긋하게 걷는 숲속 산책길로 시작하지만, 그 길 끝에서 만나는 것은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뜻밖의 작품이다. 그곳으로 들어선 관람객들은 마치 먼지처럼 쌓인 시간의 흔적을 마주하고, 이곳에 머물다 떠났을 사람들을 떠올려야 한다.

2018광주비엔날레 7일 개막 #43개국 165명 작가 300여 작품 #난민 위기, 공동체의 가치 탐구 #옛 국군병원에 ‘GB커미션’ 눈길

광주시 화정동에 자리한 옛 국군광주병원(‘국광병원’)이 오랫동안 잠겨 있던 빗장을 열고 2018 광주비엔날레 관람객에게 내부를 공개했다.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처음 시도한 ‘GB 커미션’ 전시를 통해서다. 광주의 역사를 품고 있는 특정 장소와 작품을 하나로 엮은 프로젝트다.

이 부지 안에 자리한 아담한 붉은 벽돌 교회로 들어서자 으스스한 풍경이 펼쳐진다. 오랫동안 방치돼 유리창이 깨져 있고 먼지가 그득한 내부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낡은 사각 거울이 천장에서 아래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거울 안에 또 다른 거울들이 비치고, 그 안에 폐허 같은 내부 풍경이 다시 겹친다. 영국 아티스트 마이크 넬슨의 설치작품 ‘거울의 울림’이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를 찾는 관람객들은 ‘GB 커미션’ 전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광주 아닌 곳에서 볼 수 없고, 광주의 역사와 공명하는 특별한 작품이라서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현대 미술축제인 광주비엔날레가 7일 개막했다. 11월 11일까지 66일에 걸쳐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43개국 165인의 작가가 참여했다. 작품 수는 총 300여 점, 참여 큐레이터가 11명에 이른다. 이전 비엔날레는 한 명의 총감독이 전시 전체를 이끌었지만, 올해는 11명의 큐레이터가 각기 팀을 나눠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라는 주제 아래 7개 전시를 준비했다. ‘난민의 위기’와 ‘공동체’ ‘포스트 인터넷’ 등의 키워드로 시대를 진단하는 자리에 다름 아니다.

◆역사 공간이 작품으로=GB 커미션은 광주의 역사성을 반영하는 프로젝트로 단연 주목할 만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문과 폭행으로 다친 시민들이 치료를 받았던 국광병원을 아드리안 비샤르 로하스, 마이크 넬슨, 카데르 아티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등 4명의 작가가 작품으로 풀어냈다. ‘거울의 울림’을 선보인 넬슨 작가는 “비어 있는 옛 병원 건물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역사는 물론 이 건물에 배어 있는 존재감을 느꼈다”며 “압축된 시간의 증거로 이곳에 있었던 사물들을 재구성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사회 문제를 탐구하는 작가 니나 샤넬 예브니의 작품 ‘항상 준비된, 항상 그곳에’(2018).

미국의 사회 문제를 탐구하는 작가 니나 샤넬 예브니의 작품 ‘항상 준비된, 항상 그곳에’(2018).

◆11인의 큐레이터, 7개의 전시=각 주제전에선 큐레이터와 작가들의 하모니를 엿볼 수 있다.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인 클라라 킴은 1950~70년대 세계 ‘개발 건축’ 에 초점을 맞춰 26인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하나의 작은 건축전이다. “모더니즘과 건축, 국가 건설 간의 교차점을 살펴보고 싶었다”는 클라라 킴은 “각 건축을 현재 거주자의 관점에서, 사후 평가적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LA카운티미술관의 두 큐레이터 크리스틴 Y 김과 리타 곤잘레스는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정치’라는 주제로 전시로 풀었다. 여기에선 중국 미아옹 잉 작가의 설치작품 ‘친터넷 플러스’가 눈길을 끈다. 온라인 상거래를 패러디한 키오스크를 통해 국가가 인터넷을 부분 차단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꼬집은 작품이다.

정연심(홍익대 교수)과 이완 쿤(홍콩대 교수)이 이끄는 섹션에선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샤넬 애브니 작가의 작품과 나라 요시토모의 최근작을 눈여겨 볼 만하다. 애브니는 미디어, 힙합 문화 등 일상적 스펙터클을 활용한 대형 벽화작업으로 타자와 소수자 등 다양한 정치적 이슈를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요시토모의 신작은 일본 북부의 토비우 마을에 머무르며 진행한 커뮤니티 프로젝트로, 작가는 이 마을 사람들이 만든 재료를 사용해 제작한 목탄 드로잉을 선보였다.

2018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섹션에서 공개한 북한 김인석 작가의 '소나기'. [사진 광주비엔날레]

2018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섹션에서 공개한 북한 김인석 작가의 '소나기'. [사진 광주비엔날레]

◆북한 미술, 토론은 이제 시작=북한미술 권위자 문범강(미 조지타운대 교수) 큐레이터는 ‘북한미술’ 섹션에서 북경 만수대창작사미술관 등의 소장품 중 선별해온 조선화 22점을 소개한다. 문 교수에 따르면 이 섹션은 “북한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례 없는 전시”다. 대형 집체화도 눈길을 끌지만 소풍 나온 학생들의 휴식 풍경을 그린 ‘쉼참에’(최유송 작가), 비 내리는 퇴근길 북한의 버스 정류장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한 ‘소나기’(김인석 작가) 등이 흥미롭다.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대상을 표현하는 몰골법의 대가 최창호 작가의 ‘금강산’, 호랑이 눈동자를 그리는 데에만 7시간이 걸렸다는 김철 작가의 ‘범’도 눈여겨볼 작품이다. 문 교수는 “수묵채색화인 북한의 조선화는 동양화의 틀을 깨고 과감한 색채 등 독자적인 미학을 성취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북한 미술에 대한 토론의 장이 열리기 바란다”고 했다.

올해 7개의 주제전 중 4개의 섹션은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리고, 한국의 세 큐레이터  김만석·김성우·백종옥이 기획한 전시와 북한미술 등 3개 섹션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열린다.

2018광주비엔날레. 아시아문화의 전당에선 3개의 섹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 이은주 기자]

2018광주비엔날레. 아시아문화의 전당에선 3개의 섹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 이은주 기자]

참여한 큐레이터가 많아 콘텐트가 다채롭지만, 그만큼 주제의 집중성이 떨어지는 것은 이번 비엔날레의 아쉬운 점이다.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기 전 관심 있는 주제를 살펴보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또 팔레 드 도쿄 등 해외 유수 미술기관들이 참여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 무각사·광주시민회관·이강하미술관·핫하우스 등 네 곳에서 열린다. 1995년 시작한 광주비엔날레는 올해로 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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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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