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시대에 대든 시절, 반항은 끝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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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류밍, No.12,2014~2015, Oil on Canvas, 200*150cm.  [사진 학고재]

마류밍, No.12,2014~2015, Oil on Canvas, 200*150cm. [사진 학고재]

 마류밍, No.13,2015, Oil on Canvas, 200*150cm[.사진 학고재]

마류밍, No.13,2015, Oil on Canvas, 200*150cm[.사진 학고재]

그의 청춘은 격렬했다.
 스무 살 때인 1989년 생애 처음으로 행위예술을 펼쳤다. 자신의 몸을 랩으로 둘둘 감싸고 그 안에서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다.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일어난 해, 그는 중국 우한의 후베이미술학원 유화과 학생이었다. 서슬 퍼런 중국의 정국에도 아랑곳 없이 그는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를 거침 없이 '몸으로' 해댔다.

삼청동 학고재, 중국 작가 마류밍 개인전 #'행위의 축적', 행위예술에서 정통 회화로 #

94년 벌거벗은 채 냄비에 감자를 그린 그림을 삶는 ''펀·마류밍의 런치' 퍼포먼스를 벌였고(결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2개월 옥살이를 했다), 95년엔 벌거벗은 동료 작가 8명과 함께 산 정상에 올라가 엎드린 상태로 몸을 겹쳐 산의 해발고도를 높이는 '이름 없는 산 1m 높이기'를 했다.  98년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여자처럼 화장하고 긴 머리를 펄럭이며 위풍당당하게 만리장성을 걸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행위예술가 마류밍(馬六明·49) 얘기다.

중국 행위예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티스트 마류밍(49). [사진 학고재]

중국 행위예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티스트 마류밍(49). [사진 학고재]

 수면제를 복용해 몽롱한 상태에서 벌이는 여장 나체 퍼포먼스 '펀·마류밍'은 아예 국경을 넘어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도 펼쳐졌다. 여자처럼 화장하고 수면제에 취한 채 벌거벗은 몸으로 의자에 앉아 낯선 사람들로 하여금 사진을 찍도록 한 여정을 기록한 행위 예술이다.  그리고 그는 나체 퍼포먼스를 벌인 작품 속 등장인물을 가리켜 그녀, '펀·마류밍'이라고 불렀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마류밍의 개인전 '행위의 축적'전이 열리고 있다.  2014년 중국 상하이, 서울 학고재 전시 이후 4년 만의 전시다.  2004년 여장 나체 퍼포먼스를 중단하고 이후 본래 전공인 회화 작업으로 돌아간 마류밍은 이번에 2014∼2016년 그린 19점의 회화를 선보인다. 당시 온몸으로 시대에 대들던 마류밍의 흔적을 안은 그림들이다.

마류밍, No.1,2015~2016, Oil on Canvas, 200*250cm사진 학고재]

마류밍, No.1,2015~2016, Oil on Canvas, 200*250cm사진 학고재]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마류밍이 지난 기억을 끌어안고, 곱씹고, 토해내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법이다.  그는 과거 자신의 퍼포먼스를 화폭에 다시 불러냈다.  2004년 그는 "젊고 아름답고 당돌했던" 자신의 분신 '펀·마류밍'을 떠나 보냈지만,  '그녀'와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흔적을 화면 안에서 반추하고 있다. 이른바 '기억의 재구성'이다. 조각나고, 흩어지고, 있는 듯 없는 듯 아스라이 멀어진 기억들이 그의 화폭 안에서 유령처럼 서성인다.

최근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마류밍은 "당시 수면제에 취해 몽롱했던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 그 사람들을 바라보던 나 자신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남자 마류밍인 동시에 여자 펀·마류밍이고, 깨어 있지도 온전히 잠들지도 않은 마류밍이다. 사람들이 구경하는 (나체의) 마류밍이고, (옷 입은) 그들을 보고 있는 마류밍이기도 하다.

  '몸'은 그가 던지고 싶은 질문 그 자체이자, 맘껏 부릴 수 있는 저항의 도구였다.  여자와 남자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물었고, 우리 몸이 그 안에서 정말 자유로운지를 물었다. 또 우리 몸이 온전히 개인의 것이 될 수 있는가도 물었다.

 마류밍, No.11,2015, Oil on Canvas, 250*200cm. [사진 학고재]

마류밍, No.11,2015, Oil on Canvas, 250*200cm. [사진 학고재]

 마류밍이 소환한 기억에서 마류밍은 보이는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몸은 대개 일부만 보인다. 이런 조각난 기억을 그는 거친 질감을 살리는 기법으로 독특하게 표현했다. 나이프를 이용해 덧바르는 작업으로 화면에 흔적과 균열을 남겼는가 하면(균열화법),  성긴 캔버스 뒷면에서 앞으로 색을 밀어냈다(누화법). 마류밍의 화폭 안에 매끄럽고 온전한 형상은 없다.  20살 미대생 마류밍이 자기 몸을 비닐로 감싼 채 괴로워하던 모습도 그림에서는 무채색 덩어리로 보일 뿐이다.

 마류밍, No.1,2014~2015, mixed media,150*100cm. 누화법으로 완성한 작품 중 하나. [사진 학고재]

마류밍, No.1,2014~2015, mixed media,150*100cm. 누화법으로 완성한 작품 중 하나. [사진 학고재]

 지난 30년 가까이 그의 작업을 지켜봐 온 지 샤오펑 후베이미술관 관장은 최근 쓴 글에서 "행위예술이든, 회화든 그의 작품에는 삶의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반영돼 있다"며 "그는 다양한 시대적, 사회적 이슈에 따라 시각적 전략을 끊임없이 조율해온 작가"라고 평했다. 그는 이어 "마류밍이 (회화로) 복원한 기억의 파편들은 부유하는 듯하고, 섬세하고, 고독하고, 모호하다. 이 같은 시각적 묘사에선 환상과 허구, 은폐 등과 같은 사회 현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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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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