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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조선조 양반들의 풍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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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옛 선비들에게 있어 시는 반드시 짓고 감식(鑑識) 능력을 갖춰야 하는 기본적 소양 중 하나였다. 옛 사람들은 시를 교화(敎化)의 수단으로 봤다. '시경(詩經)'에 따르면 시는 뜻(志)의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즉 마음(心)속에 있으면 뜻(志)이 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연애시는 음탕한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 간에 사랑을 속삭이는 이른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는 당연히 배척받았다. 더욱이 가문 중심의 사회에서 남녀가 중매자 없이 연애를 하는 것(無媒而從人)은 집안을 깨뜨릴 위험성이 매우 큰 치명적인 도덕 파괴였다. 그러나 기생을 데리고 놀면서 가무를 즐기는 것이 풍류라는 이름으로 허용됐다. 유학적 가르침에 비춰 봤을 때 주색과 가무를 즐긴다는 게 용인될 수 없을 것 같지만 풍류는 조선조 양반들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여유 공간이었다. 유학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풍류를 배척하지 않고 용인해 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고경명(高敬命)은 그의 높은 절의(節義)만큼이나 풍채도 좋았다. 일찍이 황해도에 갔다가 한 기생을 사랑했는데, 그 기생이 관찰사의 눈에 들어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보내면서 고경명은 시 한 수를 치마폭 안쪽에 써 줬다. "강가에 말을 세워 놓고 머뭇머뭇 헤어지지 못하며/ 버드나무 제일 높은 가지를 꺾어 주네/ 어여쁜 여인은 인연이 옅어 자태를 새로 꾸몄는데/ 바람둥이 사내는 정이 깊어 뒷날을 기약하네."

그 기생이 관찰사 앞에서 술을 따르는데 갑자기 치마폭이 바람에 날려 글씨 흔적이 비쳤다. 관찰사가 그것을 보고 연유를 물으니 기생이 숨기지 못하고 사실대로 아뢰었다. 그는 시를 보고 "참으로 뛰어난 인물이로다" 하고 탄식했다. 그 관찰사가 뒤에 고경명의 아버지를 만나서는 "그대에게 훌륭한 아들이 있더이다. 그런데 재주와 용모는 비록 아름다우나 행실은 어그러졌더이다" 하고 말했다. 그 아버지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 아들이 용모는 어미를 닮았고, 행실은 이 아비를 닮았소이다" 하니 관찰사가 빙그레 웃더란다. 허균이 쓴 '성수시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선 양반들은 여인의 치마폭에 시를 써 주는 풍류가 있었다. 다산 정약용은 부인의 치마폭에 시를 써서 자녀들에게 주기도 했다. 고경명이 사랑하는 기생과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치마폭에 시를 써 준 것을 풍류라고 하면 그들의 사랑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류가 넘치는 것은 분명하다. 고경명의 뛰어남을 인정하면서도 행실이 그릇됐음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넌지시 지적하는 엄정함, 그리고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책으로 승화시키는 아버지의 답은 또 얼마나 멋있는가. 고경명이 이 사실을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낱 기생하고나 사랑에 빠지는 어그러진 행실을 한 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가 금산 싸움에서 장렬하게 죽어 그가 한갓 풍류만을 즐긴 탕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풍류는 이래서 멋있고 가치 있다.

김상조 제주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