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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편집국장레터]박용만의 1만5000보 소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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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호 면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앉아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발언을 듣고 있다. 2018.9.6/뉴스1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앉아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발언을 듣고 있다. 2018.9.6/뉴스1

'Confirmatory bias=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My side bias 즉, 내 편이 늘 옳다는 편견이라고도 규정한다.'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에 대한 사전적 정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또 떨어졌습니다. 한국갤럽이 4~6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조사해 7일 발표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9%였습니다. 1주일 전보다 4%P 하락했습니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건 취임 후 처음입니다. 여론조사 분석 기사에선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을 ‘소득주도성장’ 논란이라고 짚습니다. 현장의 기업인ㆍ자영업자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정없이 갈 길을 간다는 입장을 취한 뒤 지지율이 더 하락했다는 겁니다.

분명한 건 지지율 하락에도, 언론들의 쓴소리에도 소득주도성장을 축으로 한 경제정책은 당분간 그대로 갈 거라는 점입니다. 확증편향이 굳어져서입니다. 이미 우리는 전직 대통령들로부터 비슷한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친박을 끌어안아라”, “국회를 파트너로 인정하라”는 논설위원들의 무수한 칼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측근들을 내쳐라”, “야당 사람들을 만나라”는 칼럼들에도 불구하고 오불관언이었습니다. 세상의 그럴듯한 비판과 조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일단 확증편향을 갖게 되면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됩니다. 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사람들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3인방 얘기를 할라치면 그들은 손사래부터 쳤습니다. “그 얘긴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 대통령은 이미 그런 얘기를 담은 신문기사나 방송을 안 보기 시작한 지 오래 됐다.” 그래서 악순환은 이어집니다. 언론도 잔소리를 포기하게 됩니다. 대통령 주변에선 시중의 민심과 다른 얘기들이 전달됩니다. 정당한 비판은 ‘정치적 의도를 담은 순수하지 못한 흠집내기’가 되고, 대통령이 좋아하는 보고서와 통계들만 ‘선택돼’ 보고됩니다. 대통령과 현장 민심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 지지율은 반전되지 않습니다.

요즘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두 가지 서로 다른 주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쪽에선 현실을 무시한 정책 때문에 죽겠다는 아우성들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는 중소기업인들, 보수도 진보도 아닌 회사원들, 대기업 사람들이 주로 그렇습니다. 다른 쪽에선 소득주도성장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경제 체질 개선작업이라는 주장입니다. 당장 불편하고 부작용이 있지만 토대를 바꾸는 작업이 완료되면 한국경제는 더 견실해질 거라고도 강조합니다. 청와대와 민주당 사람들, 그리고 변함없는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입니다.
대통령에겐 후자의 목소리가 더 중요하게 전달됐을 겁니다. 그동안의 성장 우선주의 정책을 불균형과 불공정의 원인이라고 진단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은 이미 확증편향을 가졌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수정되지 않을 겁니다. 정책의 문제점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그대로 가겠다고 결정한 만큼 바깥 사람들로선 일단 지켜볼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제부턴 청와대 사람들의 주장이 현실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경제학 책에도 없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이 한국 경제를 왜곡과 불공정과 불균형에서 구해내는 성공사례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라 경제가 잘 되고 가난하고 무시당했던 사람들이 잘 살게 되는, 공정하면서 성장도 되는 정책이라면, 그거야말로 이상적인 경제정책일테니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8 포용국가전략회의에서 영상을 시청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9.6.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8 포용국가전략회의에서 영상을 시청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9.6.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다만, 현실에서 입증되지 못한 정책이니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에 제발 귀를 열었으면 합니다.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정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전제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만날 사람들이 사전에 조율되지 않고, 대통령 주변 사람들과 친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하고, 어쩌면 대기업들과 친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너무 늦지않게 수정도 할 수 있고, 가지 않아도 될 길을 가는 리스크도 줄어들 겁니다.

요즘 여의도에선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화제입니다. 4일과 6일 이틀동안 국회의장ㆍ부의장, 각 당 대표ㆍ원내대표 등 45명을 만났다고 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면 의원회관에서만 4일 7600보(5.6km), 6일 8100보(6.1km)를 걸었다고 합니다. 박 회장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등은 완전히 땀으로 젖었고 다리는 후둘거린다. 마치고 나오니 하늘이 노랗다. 나 따라서 같이 다닌 비서진도 다리들을 만진다. 그런데 이런 피로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입법부에서 기업이 역동적으로 뛸 수 있게 불필요한 법안 걷어내고 새 법안 만들어 도와주면 된다. 죽어라 설득하고 호소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피로를 잊는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권력이라는 바람이 불면 그 바람보다 늘 먼저 눕는 게 대한민국의 기업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은 신념과 일치되지 않을지라도 이런 현장의 얘기는 들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투입한 예산이 실제론 어떻게 현장에서 집행되고 있는지도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실패한 지도자들이 가장 쉽게 범했던 오류가 다름아닌 '확증편향'이기 때문입니다.

 중앙SUNDAY는 지난 주 각자도생하는 한국 사회자본의 열악한 상황을 스페셜리포트로 진단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32676?cloc=Joongang|sundayhome|topnews1
 22년 라이벌이었던 우즈와 미켈슨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을 불혹을 넘겨서야 우정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스토리도 맛깔나게 정리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932672?cloc=Joongang|sundayhome|topnews1
 이번 주에는 원희룡, 남경필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와 정책의 수단(tool)으로 주목받고 있는 블록체인에 빠진 정치를 스페셜리포트로 준비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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