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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더 준다는데도 "파업"…현대건설기계 이상한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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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전면파업 돌입한 현대중공업 노조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19일 오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본관 앞에서 이날 전면파업에 들어간 노조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7.19   yongt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전면파업 돌입한 현대중공업 노조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19일 오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본관 앞에서 이날 전면파업에 들어간 노조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7.19 yongt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현대건설기계 노조는 지난 7월 18일 “기본급을 7만3373원 인상하고, 성과급 지급기준을 확정하라”고 요구했다. 올해 성과급으로는 250%를 제시했다. 임금협상을 하면서다. 이 회사는 굴착기와 지게차 같은 산업용 차량을 만든다.

현대건설기계 노조, 사측 제안 거부 #현대중공업 계열 ‘4사1노조’ 묶여 #일괄 타결 돼야 최종 타결로 인정 #“회사 성과 좋은데 걸림돌 될 것” #“타사 노조 외면 안 돼” 의견 갈려

그런데 8일 뒤 회사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26일 사측은 “기본급을 8만2000원 인상하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노조가 요구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인상안이다. 성과급도 “영업이익 1%당 70%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임금협상이 타결되면 그 즉시 성과급 중 120%를 먼저 지급하겠다고도 했다. 올해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6~8%로 예상된다. 직원들은 아무리 못 받아도 450%의 성과급을 쥘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건설기계 노사 협상 제시안 비교

현대건설기계 노사 협상 제시안 비교

당시 회사는 이런 제안을 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회사가 상반기 목표를 달성했다”며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사측은 “미·중 무역전쟁, 미국의 금리인상 등으로 건설장비 업계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어 하반기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원칙을 지키고, 임금교섭을 조기에 마무리해 회사의 경쟁력 제고에 역량을 집중하자”고 당부했다.

회사의 파격 제안에 7월 13일 전면 파업을 시작으로 계속된 노조의 쟁의행위가 중단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노조의 행보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전면파업과 부분파업을 반복하고 있다.

파업은 요구조건을 관철하기 위한 노조의 쟁의수단이다. 그런데 요구조건보다 더 나은 제안을 회사가 했는데도 파업으로 맞섰다.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근로조건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노조의 태도치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이유는 회사 밖에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월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했다. 현대중공업 지주,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등 4개 회사로 분할했다. 이에 대항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지부는 ‘4개 회사를 단일 노조로 유지한다(4사 1노조)’는 규약을 만들었다. 협상력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사실상 그룹형 소산별노조인 셈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 현대중공업 그룹에만 있는 특이한 노조 형태다.

이 때문에 회사별로 임금과 단체협상을 하더라도 4개 회사가 모두 타결해야 노조는 최종 타결로 간주한다. 그 전에는 임금·단체협상 합의서에 어느 한 회사도 서명할 수 없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지부의 지시에 따라 파업도 해야 한다. 현대건설기계 노조는 6일에도 오후 4시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현대중공업의 무급휴업 철회를 요구하며 울산고용노동청을 항의 방문하는 등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건설기계는 4개 회사 가운데 경영실적이 가장 좋다. 중국공정기계협회가 발표한 올 상반기 굴착기 판매량에 따르면 현대건설기계는 지난해보다 56.8%나 늘어나는 등 중국과 인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올 상반기 매출액 1조8532억원에 137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액은 40%, 영업이익은 75% 증가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상반기 매출액이 33% 줄었고, 19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일부 조합원은 “회사마다 사정이 다른데 모두 같은 쟁의행위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반응도 보인다. 협상 타결이 지연되고 파업이 장기화하면 자칫 최대 성과를 내고도 성과금 없이 명절(추석)을 치를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번지고 있다.

김형균 노조 정책실장은 “한쪽에서 희망퇴직을 하며 고통받는데 우리만 임금을 챙기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 이외에 별도 요구사안에 대한 4사의 공동타결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측은 이날 경영소식지를 통해 “현대건설기계의 노사 교섭이 누구를 위한 교섭인가”라며 “파업이 장기화하면 모처럼 찾아온 성장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며 노조의 태도변화와 성실교섭을 촉구했다. 채덕병 현대건설기계 상무는 “노조가 얘기하는 공동교섭안은 올해 진행 중인 임금협상과는 관계가 없는 단체협상 사안”이라며 “회사의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내년으로 예정된 단협에서 다뤄도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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