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올브라이트 美 前국무 회고록] 下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코소보와 이라크에 대한 폭격을 주저하지 않았고, 밤낮없이 세계를 누볐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도 개인적인 삶은 질곡 같았다.

나치와 공산당을 피해 체코.스위스.파리.런던을 옮겨다닌 유년시절, 셋째 자식의 죽음, 갑작스러운 남편의 이혼 통보, 뒤늦게 유대인으로 밝혀지면서 불거진 논란, 쓸쓸한 노년생활….

그녀는 이번 회고록('마담 세크러테리')에서 "힘들었던 과거가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되는 자양분이 됐다고 하지만 이혼의 고통만큼은 결코 보상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더 젊고 예쁜 여자를 만났어=그녀가 45세 때 이혼했던 남편은 미국 굴지의 미디어그룹인 '콕스'가문의 상속자 중 한명인 조셉 올브라이트. 웰슬리대 재학 시절 인근지역의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을 국무장관으로 추천한 이유 중에는 같은 웰슬리대 출신이라는 인연도 있었다고 시사했다)

조셉은 똑똑했지만 외모는 볼품없는 이민자의 딸에게 졸업 후 바로 청혼했다. 올브라이트는 "청혼받던 날 그가 백마 탄 기사로 보였다"고 적었다. 이후 남편은 신문기자로, 자신은 집에서 아이를 낳으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뒷바라지 생활을 보냈다.

남편이 집안 신문인 '뉴욕 뉴스데이'기자로 옮기자 그녀는 컬럼비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차례로 따낸다. 아이들이 다 컸으니 이제 평소의 꿈이었던 정치에 입문할 때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러시아 출장에서 막 다녀온 남편은 "우리 결혼은 끝났다. 당신보다 더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통보한 뒤 그날 바로 짐을 쌌다.

그녀는 남편이 "할 말이 있다"고 하는 순간까지 짐작조차 못했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이후 조지타운대 교수에다 민주당 국제외교 전문위원. 의원 보좌관 등의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에 파묻혀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대인이 아닌 미국인=미국 이민 후 아버지와 같이 줄곧 성당에 다녔기에(결혼 후에는 남편의 종교인 성공회로 개종)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무장관에 취임하면서 체코의 한 유대인이 편지로 그녀의 가족사를 알려주면서 고개를 갸웃할 무렵 워싱턴 포스트가 현장 취재를 통해 그녀의 조부모.외조부가 아우슈비츠에서 숨졌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어 후폭풍이 닥쳤다. 세 딸은 울음을 터뜨렸고, '알고도 숨긴 비겁한 유대인'이라는 조롱에서부터 '아버지가 출세욕에 눈이 멀어 자식까지 개종시켰다'는 구설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지금도 이럴 정도이니 아버지가 나에게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돌아가신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녀는 또 "내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유대인이기에 앞서 미국인, 그 전에는 체코인이며 혈통보다 국가와 가치관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