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말정국에 「중간평가 한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올림픽을 전후한 여야 협력정국이 국정감사·청문회를 거치면서 뒤틀어지더니 내년 중간평가를 앞두고 다시 대결국면으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정부·여당이 당정개편을 통해 「노태우 친정체제」로 전열을 재정비하고 『공권력 확립』을 내세우는 등 강성을 띠는 듯 하자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현정권의 최대 난제라 할 수 있는 중간평가문제를 넌지시 건드리면서 공세적 자세를 취하고 나섬으로써 정국에 긴장감이 조성되기 시작하고 있다.
○…정부·여당쪽은 김 평민 총재의 발언에 대해 한결같이 『마침내 본심을 드러냈다』고 분석하면서도 △단기 승부쪽으로 결심을 굳힌 것인지 △단순히 정국의 주도권 장악을 노린 파워 게임의 일환인지 진의파악에 골몰해 있다.
여권내 강경론자들은 김 총재가 중간평가를 신임투표와 연계시킬 뜻을 분명히 하면서 노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겸하고있는 점과 그 시기를 만성적인 정치불안기로 꼽히는 2∼3월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등을 들어 『현정권 타도의 칼을 뽑은 게 틀림없다』고 보고있다.
이들은 그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광주·5공 청문회를 통해 「노 대통령=5공」이란 등식을 부각시키려 애써온 흔적 △전씨 사과성명 후에 있은 노 대통령의 6개항 후속조치 담화를 격하시킨 점등을 들고있다.
한 당직자는 『재야운동권이 이미 「노 정권 타도」로 공격목표를 세운 만큼 그로부터 압력을 받거나 영향이 없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재야 운동권과의 연관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김 총재의 발언은 청문회에서의 상대적인 실점을 만회하고 여권의 강성포석에 쐐기를 박는 한편 재야를 의식한 다목적 카드』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들은 김 총재가 지역적·계층적으로 편중된 지지기반이라는 취약점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 승산을 놓고 보더라도 단기전은 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어쨌거나 정부·여당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중간평가 때 야당과 재야·학생이 6·29이전과 같은 형태의 연합전선을 형성, 「반 노」를 외쳐대는 상황이다.
이럴 경우 중간평가는 이미 사생결단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긴다 하더라도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운동권의 구호가 이미 「노 퇴진」으로 발전돼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여당의 당면 최대과제는 반 노 연합전선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하는 차단·분리작업이라고 보고있다.
그러기 위해선 공격의 구실이 되고 있는 5공 문제를 조기 매듭짓고 흔들리고 있는 보수 중도세력을 재 결속 시켜야 한다는 게 여권의 인식이다.
노 대통령이 최근 5공 문제와 관련한 각종 조치를 조속 실시토록 지시하고 공무원 기강확립과 공권력 확립을 강조한 것이나 민정당을 대야관계라는 차원에서 개편, 여야 고위회담을 적극 추진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진다.
5공 문제해결과 관련, 몇몇 상징적인 인물을 속죄양으로 삼는 문제도 검토되고 있다는 소문인데 일련의 후속조치가 끝나면 「5공 청산 완료」를 선언, 중간평가에 부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측의 5공 청산과 관련한 △광주사태·삼청교육대·해직공직자에 대한 치유책 △검찰의 5공 비리수사 △구속자 석방 등 일련의 후속조치에 대한 여론의 평가와 반응을 봐가며 중간평가의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함께 3야당간의 경쟁관계를 이용해 일부 야당과의 암묵적 제휴관계도 본격적으로 모색, 멀리 장기적인 정계개편까지 내다보면서 중간평가를 여권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할 속셈이다.
○…핵심 당직자 사이에서 중간평가 불필요론까지 제기되는 등 이 문제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해왔던 평민당이 급기야 중간평가를 신임투표로 결부시켜 대처할 뜻을 시사하고 나선 것은 △노태우 정부의 5공 단절의지와 구속자 석방 등 가시적 민주화조치 지연에 대한 불만 △「유신으로까지」(평민당 표현을 빌면) 후퇴한 정부·여당의 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벌문제를 놓고 틈을 보인 재야 측의 압력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 열세를 보인 청문회 정국의 돌파 등이 주요 고려사항으로 적용한 듯하다.
특히 지난 전면개각과 민정당의 당직개편에 대해 불쾌감을 여러 차례 표시하고 있는 김대중 총재는 여러 공·사석에서 민정당의 이 같은 강성 포석을 『내년 중간평가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한 것』이라며 야권의 대비책을 촉구해왔다.
정부·여당의 개편이 궁극적으로는 평민당만을 「소수 야당」으로 고립시켜 여소 야대 현상을 극복하려는 강성포석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민정당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있는 중간평가를 신임투표로 연계시킴으로써 정부·여당의 평민당 고립작전에 으름장을 놓는 사전 경고의 성격도 띠고 있다.
김 총재의 노 대통령에 대한 강공책이 느닷없이 노출된 것은 물론 아니다. 광주청문회 과정에서 이해찬 의원 등이 △12·12사태 당시 9사단 이동 △80년 봄 상황에서의 군부 실세(수도경비사령관) 등을 예시하며 노 대통령=5공의 핵심이라는 등식을 부각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청문회에서 민정당 의원들이 자신의 케케묵은 호적까지 들춰가며 인신공격을 가해온데다 「극우 발언」의 김용갑 총무처 장관, 「외곽전법 발언」의 노재봉 교수 등의 기용을 지켜보면서 김 총재로서는 『노 대통령과 협력은커녕 이대로 놓아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김 총재는 이처럼 노 대통령과의 밀월관계를 끝내겠다는 의사표시의 하나로 중간평가문제를 거론했으나 최종 결정은 『국민여론을 보아가며 내년 2, 3월께에 내리겠다』고 해 일면 민정당의 태도변화를 은근히 촉구하는 양면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간평가는 대 국민 약속사항인 만큼 실시하되 5년 임기는 보장해야한다』면서도 「정권획득의 기회로 삼지 않겠다」는 뜻을 견지해 왔던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노 대통령의 「11·26담화」 이후부터 『전두환씨 문제와 중간평가를 결부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중간평가를 노 정권의 신임투표 성격으로 몰고 갈 의사를 분명히 하는 등 강성으로 변화하는 조짐을 보였다.
김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중간평가를 6공화국의 붕괴로까지 이어갈 생각은 없더라도 ▲대통령과 6공의 실정을 몰아붙이는 「장기 고사작전」의 일환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음 선거에까지 이런 공격을 이어가자는 원거리 포석이라는 것이다.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중간평가니, 재신임이니 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잘못된 얘기였고 불필요했다』고 처음부터 반대해온 것도 공화당이 아직은 때를 기다리는 입장이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허남진·고도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