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소모적 '평택 갈등' 이제 끝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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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범대위는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대대로 평화롭게 살던 주민들을 강제로 몰아낸다는 편견을 유포했다. 평택 미군기지 조성이 대북 선제공격용이자, 미국의 공세적 세계전략(특히 중국에 대한)을 위한 것이어서 한반도를 테러와 전쟁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도 강변했다. 과연 그런가.

이번 사업은 수도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산재한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모으는 것이 한.미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양국 정부의 합의와 우리 국회의 의결을 거쳤다. 무턱대고 추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주민들에 대한 보상문제도 마찬가지다. 보상 조건이 합리적이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금전 이상의 중요한 가치, 즉 '터전에 대한 애착'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이주 이후 낯선 지역에서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역시 물질적 보상만으로는 털어 버리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평택 지역 내 전체 이전 대상 부지 중 80%에 가까운 면적이 합의 매수됐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들도 불만이나 불안이 있었으나 국가의 장래를 위해 이번 사업에 동의해 준 것이다. 따라서 범대위의 그런 주장은 선동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의 공세적 세계전략' 운운하는 것은 더욱 터무니없다. 이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지리적 위치가 군사전략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특히 한.미 동맹의 운영 과정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하다. 미국이 미래의 세계 및 동북아 전략을 위해 평택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이익과 상치되지 않는다. 한반도 내에 전략적 가치가 큰 기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래 한.미 동맹 관계에 있어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 줄 것이며, 이는 '포괄적.역동적.호혜적 동맹'을 구현해 나가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한 편견과 정보 왜곡에 몰입돼 희망과 발전을 거부하는 자기 비하를 계속할지 답답하다.

범대위 등 외부세력은 평택의 이슈를 그 지역 주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들이 내걸고 있는 투쟁의 10가지 이유 중 평택 지역사회를 위한 것은 아무리 후하게 적용해도 세 가지 정도밖에 안 된다.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평택문제에 편승시킴으로써 도대체 무엇을 도모하려 하는가. 그들이 그토록 강조해 온 평택 주민들의 '생존권'이 진심으로 걱정된다면 이주 대책이나 지역 발전과 관련된 조언들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그렇게 참아내기 어려운 과제라면 차라리 평택을 떠나 중앙무대에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것이 훨씬 떳떳한 자세일 것이다.

이제 분명한 것은 평택문제에 대해 정부나 현지 주민 그 누구도 패배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제는 양측 간에 투쟁보다는 대화가 필요한 시기이며, 편견과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소모적 갈등은 이쯤에서 접어야 한다. 지난 2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