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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여행지 따라가고 떡볶이 배달하고 … 은행 ‘영업비밀’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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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핀테크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은행원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푸념이 새삼스럽지 않은 시절이다. 하지만 기술과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최전선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치열하게 경쟁 중인 은행 영업맨들의 노력이 그것이다. ‘은행 대전’의 선봉장 격인 4대 시중 은행 ‘영업 1위’ 센터장 및 지점장들로부터 정상에 선 비결을 들어봤다. 1위에게는 역시 1위만의 비법과 노하우, 철학이 있었다.

4대 은행 1위 영업맨들의 노하우 #하루 5번 고객 방문 10번 통화 원칙 #모텔 세탁소 돌며 매출 파악해 대출 #“영업맨, 화초 아닌 잡초 성향 필요” #“고객이 어떤 사업할지 공부해야”

박찬용 국민은행 서교동종합금융센터 본부장

박찬용 국민은행 서교동종합금융센터 본부장

◆‘온몸 던지기’ 박찬용 국민은행 서교동종합금융센터 본부장=박 본부장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는 ‘불위야 비불능야(不爲也 非不能也)’란 문구가 적혀 있다. 동양 고전인 『맹자』에 나오는 이 문구는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게 아니다’라는 의미. 달리 말해 ‘작정하고 덤비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 본부장은 “몸으로 부딪히는 것만큼 정확하고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 영업방식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몇 년 전 모텔을 운영하는 고객이 대출을 받으러 오자 해당 모텔 주변의 세탁업체들을 일일이 방문한 적이 있다. 모텔에서 수건, 시트 등 세탁물을 얼마나 많이 맡기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확인하고 또 확인한 뒤 승인한 대출에선 사고가 날 수 없다는 게 박 본부장 설명이다.

정성 또한 뒷받침돼야 한다. 그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고객이 강릉으로 3박 4일 여행을 간다고 하자 먼저 강릉으로 이동해 깜짝 식사 선물을 해준 적도 있다. 박 본부장은 “실패를 실패로만 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도 꾸준히 고객에게 공을 들인다면 언젠가 다른 기회로 그 고객이 나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불위야 비불능야”라는 게 그의 맺음말이었다.

구춘서 신한은행 반포남금융센터 센터장

구춘서 신한은행 반포남금융센터 센터장

◆‘오방십통(五訪十通)’ 구춘서 신한은행 반포남금융센터 센터장=‘오방십통’은 ‘하루에 다섯 곳 이상 방문, 열 곳 이상 통화’라는 뜻이다. 구 센터장이 신봉하는 ‘영업의 기초’다. 그는 “통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매일 고객 소재지를 다섯 곳 이상 방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게 중요한 만큼, 어떻게든 매일 다섯 곳 이상을 방문하려 한다”고 말했다.

조금 귀찮다고 고객 방문을 소홀히 했다가 쓴맛을 본 경험이 이런 철학을 만들었다. 그는 과거 한 운수업체와 큰 규모의 대출 계약을 맺으면서 직원 월급 이체와 퇴직연금 가입 등도 성사시키려 했다. “직원 설득에 힘써보겠다”는 업체 대표 말만 믿고 개별 상품 설명회를 열지 않았더니 직원의 90%가 월급 이체 신청을 하지 않았다.

구 센터장은 후배들에게 ‘닥방(닥치고 방문)’ 정신을 강조한다. 그는 “수백 번 실패해도 일단 고객과 만나기만 한다면 거래 성사 확률은 몇십 배로 커진다”며 “직원들이 화초가 아닌 잡초 성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업 정글’ 속에서 자신을 고객에게 ‘각인’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구 센터장은 고객에게 “제가 해결 못 하면, 아무도 해결 못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주요 고객이라면 얼마나 많은 은행 영업원들과 만나겠는가. 고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 역시 중요한 영업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김병구 우리은행 역삼역금융센터 센터장

김병구 우리은행 역삼역금융센터 센터장

◆‘고객 탐구 생활’ 김병구 우리은행 역삼역금융센터 센터장=김 센터장은 비행기 편으로 고객에게 떡볶이를 배달한 적이 있다. 2014~2017년 브라질 상파울루 한인타운인 봉헤지로(Bon Retiro)의 법인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포스코건설이 브라질 북동부 포르탈레자에서 제철소를 건설하고 있었는데, 협력업체로 함께 온 중소업체 20여 곳은 신용도가 없어 현지 은행과 거래를 못 하던 상황이었다. 김 센터장은 이들을 위해 한 달에 두 번씩 비행기로 왕복 8시간 거리를 오갔다.

당시 그의 서비스 목록에는 고춧가루와 떡볶이, 라면 등의 ‘음식배달’도 포함됐다.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한국 식재료들이었다. 김 센터장은 “미리 고객이 원하는 품목을 조사해 봉헤지로에서 구매한 뒤 들고 갔다”며 “작은 양이었지만 고객들이 감동했고, 결국 지속적인 신뢰와 거래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가 브라질에서도 두 번이나 1등 영업점 타이틀을 따낸 비결이다.

김 센터장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영업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업장(역삼) 부근에 있는 젊은 IT 벤처 사업가들에게는 어떤 금융 상품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기존 거래처의 경우엔 과거와 달리 현재는 어떤 금융 서비스가 필요할지 찾아본다”며 “그것을 토대로 작성한 제안서를 들고 고객들을 찾아가면 당장 거래가 성사되진 않는다 해도, 몇 개월 후 고객이 다시 연락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상호 KEB하나은행 영업2부 지점장

한상호 KEB하나은행 영업2부 지점장

◆‘소욕지족(少欲知足)’ 한상호 KEB하나은행 영업2부 지점장=한 지점장은 “금융은 돈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내가 조금 덜 갖더라도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금융을 할 때 신뢰가 쌓이고 네트워크가 끈끈해진다”고 말했다. 그가 ‘맨땅에 헤딩’ 격으로 부딪히며 체득한 영업 철학이다. 입사 10년 만이었던 36세에 처음 영업점에 배치된 한 지점장은 당시 지점 근처 오피스 빌딩을 이 잡듯 뒤져가며 고객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전적은 100전 99패. 그는 어쩌다 호의를 보인 단 한 명의 고객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맞춰주고자 노력했다.

이를 통해 체득한 영업 비결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한 지점장은 “내가 더 양보하고 덜 가진다고 생각하면 그게 결국은 나한테 돌아오더라”며 “불교에서 말하는 ‘소욕지족’(작은 것에 만족하라)을 마음에 품은 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안일하게 일하라는 뜻은 아니다. 한 지점장이 후배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고객에 대한 공부’다. 한 지점장은 “내가 대하는 고객(기업)이 최근 어떤 사업을 새로 시도하려 하는지, 고객의 업권이 최근 어떤 흐름을 타는지 등을 공부해서 아는 게 중요하다”며 “고객은 은행이 자신을 꾸준히 지켜보면서 응원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비로소 그 은행을 신뢰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후연·정용환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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