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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뒷돈 주고 딸 교사 시키려던 교사父, 취소됐어도 해임 정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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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교의 교실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한 고등학교의 교실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지병으로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딸의 취직을 위해 학교 측에 2억원을 준 것은 큰 잘못입니다. 하지만 딸의 교사 임용은 취소됐고 2억원도 돌려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저는 31년동안 교사로 근무하며 징계는 커녕 시교육감·교육부장관 표창을 받는 등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한 번의 잘못으로 정직도 아닌 해임까지 된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재판에서 A씨의 주장)

1989년부터 교편을 잡은 고등학교 교사 A씨가 해임처분을 받은 것은 지난해 7월의 일이었다. 전직 이사장 등을 통해 뇌물을 주고 딸을 사립학교 영어교사로 취업시켰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건은 A씨가 해임되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사립고교에서 신규교사 임용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A씨는 지인을 통해 그 학교 전직 이사장 B씨를 만났다. "딸을 영어교사로 임용해 달라"는 A씨의 부탁에 B씨는 2억원을 요구했다. B씨는 현직 이사장은 아니었지만 그의 딸이 해당 고교의 행정실장 겸 법인실장이었다.

뇌물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뇌물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두 사람은 서로 약속을 지켰다. B씨는 A씨의 딸이 임용되게 해줬고, A씨는 임용이 성사되기 전후로 나눠 B씨에게 2억원을 건넸다. 그 후 새 학기가 시작된 2016년 3월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윈윈'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리는 금방 드러났다. 딸의 교사생활은 해를 넘기지 못했고, A씨는 배임증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A씨에게 다행이게도 검찰은 '같은 종류의 전과가 없는 점, 자녀 취직을 바라는 마음에서 범행에 이른 점,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는 점, 수사에 적극 협조해 실체적 진실 발견에 기여한 점'을 이유로 A씨를 기소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렇게 법적 처벌은 면했지만, 교사생활을 계속 할 수는 없었다. A씨를 해임해야 한다는 시 교육감의 의지는 강했다. 학교법인 징계위원회 결과 정직 3개월이 의결됐지만 시 교육감은 이런 가벼운 처벌은 안된다며 다시 심의하라고 돌려보냈다. 결국 시 교육감의 해임 요구 4개월만에 A씨는 학교로 출근하지 못하게 됐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 [홈페이지 캡쳐]

교원소청심사위원회. [홈페이지 캡쳐]

A씨는 "해임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주장해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박형순)는 17일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고의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해임의 징계처분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서울시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 사진 문현경 기자

서울시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 사진 문현경 기자

재판부는 "학생의 인격형성과 도덕성 함양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반 직업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교사인 A씨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적극적으로 사립학교 임용비리에 개입했고 그 비위의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봤다.

특히 재판부는 "사립학교 임용비리는 정당하게 임용돼야 할 사람이 임용되지 못해 정의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교사로 임용돼 결과적으로 학생이 피해를 입게 되며, 사립학교 교사 전체에 대한 국민 불신이 심화된다"면서 "사립학교 임용비리는 우리사회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할 사회악"이라고 지적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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