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했던 순간이 많았어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등 대한민국 헌정사의 격변기를 거친 심경을 이야기하면서도 표정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소임을 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온 자의 여유일까. 지난 25일 후임 이해찬 대표에게 바통을 넘긴 추미애(60)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난 29일 만났다.
추 전 대표는 당 안팎에선 탄핵 국면과 19대 대선, 6·13 지방선거 등 여러 난국을 비교적 잘 헤쳐나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K(대구·경북) 출신 첫 민주당 대표, 임기 2년을 채운 첫 대표 등의 수식어도 따라 다닌다.
원래의 5선 국회의원의 자리에 돌아온 추 전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계파 꽃가마 없이 바닥부터 여기까지 왔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정치 인생을 회고했다.
- 지난 2년은 격변의 시기였다.
- “우리가 단일대오로 여기까지 온 것 같지만 아슬아슬했던 순간이 많았어요. (새누리당과 박근혜 청와대가) 거국중립 내각을 제안했을 땐 내부에서 각자 야심을 드러내면서 상황 관리가 어려웠던 적도 있었고요.”
- ‘촛불 광장’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했는데.
- “당시 계엄령 얘기까지 있었는데요. 총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스피커가 제1 야당 대표잖아요.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려고 했죠.”
-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여성 리더들에게 타격이 있는 것 아닌가.
-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의 후광 정치를 했죠. 저와는 180도 질적으로 달라요. 저는 계파에 업혀서 꽃가마 탄 적도 없고요. 제 실력으로 바닥부터 왔죠. 제대로 (자리에서) 내려온 남성 대통령도 별로 없지 않나요.”
당 대표를 성공적으로 마친 정치인에겐 분명 새로운 도전 과제가 주어졌을 것 같았다. 당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를 다 채웠다면 주변의 기대도 작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돌직구로 물었다.
- 차기 대권에 도전하나.
- “제 입으로 말할 순 없죠.(웃음) 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문재인 정부 성공이 먼저입니다. 그런 평가가 누적됐을 때 (기회가) 오는 것이죠.”
대권 도전 의지를 드러내지도, 감추지도 않은 두루뭉술한 답변이었다. 그만큼 고민이 많고,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혔다. 반면 민주당 일각에선 추 전 대표의 소통 능력과 존재감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부정적인 질문에 추 전 대표의 답변은 단호해졌다.
- 야당에선 포용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 “사실 홍준표(자유한국당) 당시 대표도 저에게는 호감이 있었어요. 제가 청와대에 연락해서 ‘홍 대표가 대통령을 따로 한번 만나도록 기회를 드리자’라고도 했고요.”
- 청와대에 끌려다닌다, 여당이 안 보인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 “전혀 끌려다닌 바 없어요. 여당이 안 보였으면 어떻게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했겠어요.”
- 청와대에 서운한 건 없나.
- “어린애도 아니고.(웃음)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막을 내린 것들이 이런 것이었죠. 이제 당·청 갈등은 절대 없습니다.”
- 당 대표 시절 문 대통령과 독대를 안 한 이유가 있나.
- “당과 국정에 대한 일을 꼭 독대해서 나눠야 할까요. 저도 (대통령에게) 드린 말씀이 기록에 남기를 바랐고요. 설령 옆에 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깊은 신뢰 관계 속에서의 만남은 독대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정치는 구름 같아…뭉쳐놔도 바람 불면 흩어지기도”
- 야당 대표로 시작해 정권을 교체했다. 여당 대표는 많이 다른가.
- “야당 대표는 큰 스피커 역할이 우선시 되고, 여당 대표는 관리에 대한 책임감이 더 마음속에서 앞서는 거 같더라고요.”
- 지금 야당에 하고 싶은 말은.
- “남북 관계에서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왔잖아요. 평화의 운전대를 잡은 문 대통령을 한 정파의 대통령,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북 현안만큼은 도와줬으면 합니다.”
-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 문제에서 당내 이견이 표출됐다. 우클릭하면 진보 성향의 지지 세력이 이탈한다는 우려도 있다.
- “누군가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정책이 있지요. 그런 정책을 좌클릭이다 우클릭이다 하면서 허송세월할 시대는 지났죠.”
-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의 하락세는 어떻게 보나.
- “여론이 기대를 접는 단계는 아니고요. 어느 정도 불만의 반영, 조급함의 반영일 수는 있어요. 노력해야죠.”
- 개헌에 대한 생각은.
- “개헌은 약속이었잖아요. 권력구조 형태에 집착하면 개헌을 할 수 없어요. 국민주권, 지방분권 강화 등은 사회적 대합의가 있었으니 그 약속은 저버리면 안 되겠죠.”
협치와 갈등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여당 대표를 마친 그가 다른 정치인에게 무엇을 바랄지가 궁금했다. 비슷한 길을 걷는 후배 정치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 초·재선급 의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 “광풍처럼 지나가는 것에 휩쓸리지 말고요.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싶은 과제를 붙잡고 씨름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으로 떠난 정치인들과 다시 뭉칠 수도 있을까.
- “정치라는 게 정말 구름 같아서요. 어떤 경우는 뭉쳐서 먹구름이 되기도 하고, 뭉쳐놨다고 한들 바람 불면 흩어지기도 하더라고요. ‘개혁 연대’라고 운을 뗐으니 우선순위 입법과제부터 함께 해보는 게 어떨까 싶네요.”
현일훈·하준호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