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정책뒷전의 농민아픔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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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29일 방영된 MBC-TV 주간극 『전원일기』(극본 김정수·연출 이은규)는 배추밭떼기를 둘러싸고 농민과 중간 상인간에 벌어지는 「불평등 거래」를 통해 사회적 모순이 단란한 가족공동체에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배추 값이 크게 오른 올해, 중간상인에게 평당 1천5백원씩 받고 4백평의 배추밭을 넘겨준 주인공 일가는 뒤늦게 다른 농가가 2배 이상을 받고 있음을 알게된다. 시어머니가 상인을 찾아가 얼마간 더 줄 것을 요청하나 거절당하자 며느리가 입술에 루즈까지 바르고 상인에게 교태를 부려 평당3백원씩을 더 받게 되는 과정에서 온 가족의 불화가 생긴다는 것이 줄거리다.
이 드라마가 농촌의 현실에 한발자국 접근한 것은 일단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도시 중산층의 농촌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추상적이고 낭만적이며 목가적이기까지 한 그릇된 농촌상을 보여왔던 TV드라마가 있는 그대로의 농촌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오늘의 한국 농촌은 어떠한가. 정책 우선 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리는 농업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근로자·도시 빈민과 더불어 각종 정책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계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관한 문제제기는 금기시되어 왔기에 이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순응한다는 인상이 각인되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드라마가 문제구조를 중간상인·농민간의 관계로 국한시킨 것은 대단히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동시에 홈 드라마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농약·비료대·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빨리 건지기 위해 성급하게 배추를 팔아 넘기는 층은 주로 영세농이며 다소 여유가 있는 농가에서는 좀더 오를 때까지 기다려 제 값을 받는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중간상인의 존재 자체가 농민의 피해로 연결된다는 도식은 잘못된 것이다. 농정의 실패로 각종 부채에 시달리는 농가가 생산원가에도 밑도는 가격으로라도 수확물을 빨리 처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중간상인의 횡포를 감수 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이 드라마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농업정책의 실패 내지는 부재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시키고 말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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