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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복지급여 가로챈 비정한 친인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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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모란 내셔널팀 기자

최모란 내셔널팀 기자

“내가 뭘 잘못 했다는 거죠?”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시아주버니(67·정신장애 1급)의 기초생활수급금을 가로채 경기도 감사관실의 조사를 받게 된 신모(61·여)씨는 내내 당당했다. 신씨가 시아주버니 명의의 통장에서 20차례에 걸쳐 빼낸 돈만 무려 4400여만 원. 그는 “직원 월급 등으로 급해서 잠시 썼다. 가족 돈인데 문제가 되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신씨만이 아니었다. 경기도가 5~6월 도내 의사무능력자(意思無能力者) 6870명의 복지급여 관리실태를 조사한 결과 적발된 16명 모두 비슷한 답변을 했다.

의사무능력자는 지적·발달 장애나 치매 등으로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금 등 복지급여를 받아도 관리·사용이 어렵기 때문에 대신 관리해 주는 급여관리자를 지정해야 한다. 주로 읍·면·동에서 지정하는데 부모나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 친인척이나 지인 등이 대신하기도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경기도에 적발된 16명은 급여관리자라는 직책을 이용해 의사무능력자의 통장에 든 돈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이들이 가로챈 돈은 모두 2억4500만원에 이른다.

이 중 8명은 수급자의 형제·자매였고 4명은 수급자가 몸을 의탁하고 있는 복지시설 운영자, 4명은 지인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경기도는 이들이 빼돌린 돈을 모두 환수하기로 했다. 적발된 16명 중 장기간에 걸쳐 복지금을 가로챈 7명은 횡령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할 예정이다.

경기도가 이들을 횡령 혐의로만 고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현행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는 부정 수급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있지만, 급여관리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횡령죄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피해 금액이 적거나 피해자와 합의하면 처벌 수위가 낮아진다. 더욱이 친족상도례(친족 간 절도·횡령 등의 재산 범죄가 발생했을 때 형을 면제)가 적용되면 처벌이 어렵다.

경기도는 보건복지부에 급여관리자가 복지급여를 다른 목적에 사용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해 달라고 건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의사무능력자들은 급여관리자의 도움이 절실하다. 믿고 맡긴 건데…. 이런 나쁜 급여관리자는 강력히 처벌하는 규정을 만드는 것밖엔 답이 없는 것 같다”는 담당 주무관의 말이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최모란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