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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5년의 실험, 대한민국은 얼마나 바뀌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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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첫 회인 2013년 5월 21일 지면. 허병두 숭문고 교사, 안광복 중동고 교사, 송승훈 광동고 교사 , 김보일 배문고 교사, 권희정 상명여대부속여고 교사등이 참여했다.

첫 회인 2013년 5월 21일 지면. 허병두 숭문고 교사, 안광복 중동고 교사, 송승훈 광동고 교사 , 김보일 배문고 교사, 권희정 상명여대부속여고 교사등이 참여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가 정파에 치우치지 않은 건강한 토론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지난 2013년 5월 첫선을 보인 ‘사설 속으로’가 5년 여만에 막을 내립니다. 한국 언론 역사상 처음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한 지면에서 비교·분석한 이 기획은 독자들에게 폭넓은 시각을 던져주는 참신한 시도로 호평받아왔습니다. 과거 콘텐트는 중앙일보 사이트에서 계속 검색할 수 있습니다.

5년간의 실험이 남긴 성과와 과제 #중앙-한겨레 공동기획 ‘사설 속으로’를 마치며

한국 사회의 이른바 진보-보수 양 진영간 갈등 문제는 오늘날 거론되는 어떤 사회적 갈등 논제도 압도한다. 어떤 논제라도 종국에는 진영 논리에 의해 논의 자체가 진영간 갈등과 대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진영 논리가 반복되고 상시화되면서 정치인은 물론 전 국민이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다시 진보-보수라는 진영으로 나뉘는 극단적인 분열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일종의 진영 논리에 의해 표출되는 대결과 갈등의 내재화라는 사회적 질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진영간 대결과 갈등 양상은 언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신문의 경우 매체 속성상 공적 성격이 강한 방송 매체에 비해 진영 논리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분류되기가 용이하다. 물론 특정 신문이 나름의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건강한 의미에서의 신문 정파성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시각의 논지 일색이란 비난의 대상이던 과거 신문의 획일성에 비해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신문이 지켜야 할 균형성과 불편부당성, 진실성, 객관성 등을 유지하면서 특정 논지를 펼치는 건강한 정파성인지의 여부에 있다.

‘사설 속으로’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려는 많은 학교들이 교재로 채택했다. 2014년 안성 가온고 학생들이 ‘사설 속으로’로 수업하는 모습. [사진 한겨레]

‘사설 속으로’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려는 많은 학교들이 교재로 채택했다. 2014년 안성 가온고 학생들이 ‘사설 속으로’로 수업하는 모습. [사진 한겨레]

2013년 5월 21일자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사고(社告)가 나란히 실렸다.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중앙일보)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 분석하였습니다.”(한겨레신문) 위 글은 2013년 5월 21일부터 2018년 8월까지 5년 3개월여 동안 매주 화요일자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에 동시 게재되었던 공동 기획 프로젝트 ‘사설 속으로’의 발문이다.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깊이 살피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정보 홍수의 시대에 세상을 보는 바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기획은 2013년 초부터 양 신문사 합의 후 5개월 여의 준비과정을 통해 결실을 맺은 소중한 열매였다. 사설을 비교하는 글을 싣되 서로 다른 일자를 양사의 형편에 맞게 정해서 게재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지면의 구성이나 내용은 어느 정도 양사에 맡기는게 좋겠다는 주장을 비롯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 받았다. 그러는 가운데 이런 시도가 정말 실현될 수 있을까를 회의하게 만드는 일도 있었고 너무 오랫동안 지지부진한 진도 때문에 중단할 위기도 있었다. 총 7명의 필자 가운데 6명이 고등학교 교사였고 한 사람은 대학 교수였다. 이들의 전공은 교사의 경우 4명이 국어교사, 2명이 철학교사이고 대학교수의 경우는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비평을 주 연구 분야로 삼고 있는 신문방송학 전공 교수였다. 이 기획이 청소년 대상의 교육적 목적으로 이루어진 기획인 동시에 일반인들의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증진시키기 위한 교양적 성격을 아우르고 있음을 짐작 할 수 있게해주는 필진 구성이었다.

‘사설 속으로’의 기획 의도는 먼저,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신문의 사설을 비교’하는 것으로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어떤 논리적인 근거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지,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차는 무엇인지, 그러한 시각차가 나타나는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설에서 다루고 있는 사안의 키워드를 통해 두 사설은 어떻게 다른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신문 사설 비교를 통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우자’는 의도도 있었다. 진영논리에 의한 끝모를 갈등과 대립을 상대와의 차이를 차분하게 비교해봄으로써 보다 폭넓은 사고와 인식의 확장으로 나가게 하기 위한 시도였다. 한겨레신문의 경우는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 분석’하겠다는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교육적 활용을 권장했다. 이 점에서는 두 신문이 약간의 입장차가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중앙은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칼럼 형식의 사설 비평을 선호한 반면, 한겨레는 학생들의 사설 읽기를 통한 이른바 논술교육의 의미를 지향했다. 또한 중앙과 한겨레가 같은 글을 동시에 그것도 정기적으로 계속 게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서로 결이 다른 신문 간 소통 프로젝트로서의 기획 의도도 적지 않았다.

김기태 호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기태 호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공동 기획 프로젝트를 끝내면서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두었을지가 궁금했다. 필자가 분석한 논문에 의하면 저널리즘 전공 연구자들은 대체로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서로 성향이 다른 언론사간 소통 즉, 협업 사례로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했다는데 의의가 있었다는 응답과 함께 청소년들의 글쓰기 교육에도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반응이었다. 반면, 보다 다양한 시각의 논점을 이해하기 위해 비교 대상 신문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논점 차이만을 확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차이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현 단계에서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설이 어느 신문사의 사설인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편, 지면 포맷 등을 보다 다양하고 창의성있게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독자들간 토론으로 확대해야 한다거나 모든 사안을 보수 대 진보로 보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실험이라고 하기엔 비교적 긴 기간이었던 5년 3개월 동안의 연재는 일단 멈추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지닌 사람들과 집단간의 대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사설 속으로’를 읽어 준 독자들에게 필진을 대신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김기태 호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사설 비교가 비판적·논리적 사고력 키워줘”

교사가 본 ‘사설 속으로’

권영부 동북고 수석교사

권영부 동북고 수석교사

두 신문의 사설을 비교하며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사설 속으로’는 같은 주제, 다른 시각을 담은 두 편의 사설을 한 지면에 실어 이런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다.

‘사설 속으로’가 지닌 교육적 의미는 여러 가지다. 첫째, 사설 자체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켰다. 사설은 하루하루 일어나는 여러 사안 가운데 눈여겨 볼만한 사안들에 대해 신문의 입장과 시각을 밝힌 주장이다. 신문마다 시각은 다르지만 사설의 원칙은 분명하다. 앞뒤 좌우 눈치를 보지 않고 올곧게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하지만 자사의 입장을 지나치게 세우다 보면 간혹 논리적 근거가 부족해 독자를 설득하는 데 한계가 드러난다.

둘째, 논리적 사고력에 도움을 줬다. 동북고는 사설을 중심으로 수행평가를 한다. 논조가 다른 두 편의 사설을 읽고 공통주제 찾기들을 통해 논리 이해와 문제 상황에 대한 해법의 정당성을 파악하는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셋째, 비판적 사고력을 키웠다. 사설을 읽다 보면 사설 내용 뿐 아니라 신문의 입장까지도 비판적으로 살피게 된다. 꼭 다뤄야 할 소재, 제기돼야 할 의제가 알맞게 다뤄지지 않을 때도 있다. 또는 공정과 형평을 빙자해 양비론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사설 읽기 자체가 비판적 사고력 키우기로 이어진다.

넷째, 글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이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생기면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언론이 어떻게 말하는지부터 살핀다. 교육이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신문을 사설 중심의 해설 매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여론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기업, 경제단체, 정부 기관의 정책결정자들이 사설을 즐겨 읽는다. 사설 속으로를 통해 한편의 글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촉매제가 된다고 알려주는 데도 도움이 됐다.

권영부 동북고 수석교사

“학교 공부가 신문 안에 있더라”

학생이 본 ‘사설 속으로’

김혜수 무학여고 3년

김혜수 무학여고 3년

학교 정규교과시간에 NIE(신문교육) 수업을 합니다. 공부하기도 빠듯한 시간에 신문을 보라니, 처음에는 교과와 관련 없는 활동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학기가 마무리될 즈음 ‘사설 속으로’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사실 이 기획을 처음 본 건 중학생 때였습니다. 그때는 서로 다른 신문사가 공동 작업을 한다는 게 그저 신기했습니다. 성향이 다른 신문의 사설이 실린 게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사설 속으로’가 다룬 여러 주제 가운데 ‘알파고’가 기업에 남습니다. ‘인공지능과 미래사회’에 대해 중앙일보와 한겨레는 서로 다른 접근을 했습니다. 중앙은 “산업과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고, 한겨레는 “인공지능 분야의 경쟁력을 기술만이 아닌 인문학, 공학, 의학 분야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설과 아울러 양사 사설을 설명하는 글을 읽다보니 인공지능 토론회에 참석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겨레 사설을 읽을 때는 그 입장이 이해가 가다가도 중앙 사설을 읽다보면 또 반대 입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소 아쉬운 부분은 필자가 제시한 ‘추천도서’를 통해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재미를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수행과제가 있어 파워포인트로 재구성해 봤습니다. 만들 때 힘은 들었지만 생각이 확장되는 걸 경험했습니다. 논제를 뽑고 반론을 준비하는 연습도 됐습니다. 또 서로 다른 관점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눈도 생겼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공부 하느라 바빠서 한동안 여러 핑계를 대며 신문 읽기를 게을리 했습니다. 하지만 ‘사설 속으로’로 수업을 하면서 학교에서 하는 모든 공부가 신문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세상을 넓게 보는 경험을 한 셈입니다.

김혜수 무학여고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