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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청와대는 정책 실패를 통계 분식으로 덮으려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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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 현실을 보는 눈이 안이한 것인가, 아니면 정책 실패를 가리려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것인가. 처참한 경제 통계를 놓고 청와대는 “걱정하는 소리가 많지만 개선되고 있으니 기다려 보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청와대의 판단은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보낸 축사에 집약돼 있다. 문 대통령은 “취업자 수와 고용률, 상용 근로자의 증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의 증가 등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 성장률도 지난 정부보다 나아졌고 전반적인 가계소득도 높아졌다”고 했다.

경제정책 입맛 맞춰 통계청장 교체 #앞으로 국민은 통계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통계를 왜곡 해석했고, 일부는 팩트조차 틀렸다. 지난달 취업자 증가는 5000명에 그쳤다. 지난해 한 달 평균 30만 명을 넘었던 것에 비하면 ‘참사’급 수치다. 상용 근로자 증가 폭도 지난해보다 12만8000명이나 줄었다. 고용률은 전년 대비 0.2%포인트 감소했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증가’도 소상공인협회의 진단은 명료하다. “일자리 안정자금을 받으려고 4대 보험에 가입하면서 ‘종업원이 없다’고 통계에 잡혔던 자영업자들이 ‘있다’로 이동했다. 실제는 늘지 않았다.”

대통령의 가계소득이 높아졌다는 자랑도 낯뜨거운 자화자찬이다. 저소득층을 지원한다는 소득주도 성장의 목표와 달리 고소득층의 가계소득만 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줄어 양극화가 심해졌다.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린 부작용이다. 그런데도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는 건 아전인수의 극치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다르지 않다. 장 실장은 그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00년에서 2017년 사이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 비중은 67.9%에서 61.3%로 줄었고, 기업 비중은 17.6%에서 24.5%로 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 GNI에 감가상각이 들어간다는 점은 쏙 뺐다.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많이 해 감가상각이 커진 결과를 “돈 많이 가져간다”로 해석하는 것이다. 장 실장은 또 “지난해 국내총생산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들 중 1위”라고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성장률 3%를 달성한 것이지, 이 수치가 소득주도 성장을 옹호하기 위해 매도될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문재인 정부는 기업들에 제발 국내에 투자를 더 해달라고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국가 통계는 정책의 성과를 가늠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근거다.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를 가리키는 통계를 놓고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우기는 게 걱정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와중에 정부는 통계청장을 전격 교체했다. 경질된 황수경 전 청장은 올해 1분기 소득분배가 최악이라는 통계를 발표했다가 장하성 실장에게 혼쭐이 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후임인 강신욱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시 “표본이 바뀐 만큼 통계를 재해석할 소지가 있다”며 소득주도 성장을 옹호한 인물로 전해진다. 과연 이런 인사를 한 뒤에 나오는 통계와 해석을 국민은 믿을까. 황 전 청장의 “저는 (해임) 사유를 모른다. 어쨌든 제가 그렇게 (청와대 등 윗선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는 마지막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