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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프랑스는 저출산 어떻게 극복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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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05년 기준으로 프랑스 여성 한 명이 임신할 수 있는 기간에 낳는 평균 자녀 수(합계출산율)는 1.94명이다. 유럽연합(EU) 국가 중 아일랜드(1.99)에 이어 둘째로 높다. 그래도 프랑스 정부는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며 출산장려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는 최저 출산율 2.07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걱정 많던 시절이 있었다. 1901년부터 5년간 출산율은 유럽에서 꼴찌였다.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는 돈부터 뿌렸다. 1910년대에 가족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가족수당은 '최소한 아이를 기르는 데 드는 돈만큼은 정부가 대준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부자라도 아이만 낳으면 가족수당을 받을 수 있다.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에르베 게마르(45)와 그의 부인 클라라(45.현 투자진흥청장)는 8명의 자녀를 둔 덕분에 지금도 매달 500유로의 가족수당을 받는다.

가족수당은 시작에 불과했다. 임신.탁아.개학.영유아수당 등 각종 수당이 줄줄이 만들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또 아기 엄마를 각별히 배려했다. 엄마를 위한 정책의 핵심은 '일과 육아의 병행'이다. 조사 결과 부부가 모두 일할 때 출산율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준 맞벌이가 훗날을 걱정하지 않고 아이를 더 낳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해석됐다.

이 때문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경영자들이 못마땅해 할 정도로 많은 휴가와 휴직기간이 산모에게 보장돼 있다. 최근 출산정책 취재를 위해 만난 실비 피슈바흐(38.간호사)는 세 아이를 낳아 막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8년 동안 회사에 나간 기간이 4년도 채 안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출산율을 얘기하면서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결혼 외 결합커플의 높은 출산율이다. 결혼이라는 형식을 기피하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2005년 프랑스인의 정식 결혼 건수는 1970년에 비해 30%가량 줄었다. 하지만 해당 기간 중 전체 출산율은 결혼 외 결합커플의 왕성한 출산에 힘입어 꾸준히 높아졌다. 2002년에 태어난 아이 두 명 중 거의 한 명이 결혼 외 결합커플의 자식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동거나 '연대민권계약'이라는 뜻의 팍(Pacs)으로 결합된 이들 커플에게도 정식 결혼커플에 준하는 법적.제도적 혜택을 주고 있다. 결혼 안 하는 시대 흐름에 정책의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차기 대통령감 영순위로 꼽히는 세골렌 루아얄(52) 의원은 결혼 외 결합 형태로 자녀를 네 명이나 두었다. 영화배우 소피 마르소도 같은 형태로 두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있다.

프랑스의 출산장려 정책을 보면 정책결정자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국가부채가 늘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아이 낳으라고 주는 수당만은 늘리고 있다. 출산장려 정책에 지출하는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3%나 된다.

프랑스의 출산율은 1905년부터 따져 정확하게 100년 만에 유럽 내 꼴찌에서 2위로 상승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인구가 줄지 않는 '출산율 2.07'이 최소 목표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백년대계라 했는데, 출산정책은 그 이상이어야 함을 프랑스는 보여주고 있다.

박경덕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