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 "고아인 삐삐가 왜 행복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어린이 책을 읽는다
판타지 책을 읽는다
가와이 하야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각 320쪽?360쪽, 각 1만3000원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고들 한다. 어른이 보기에 아이는 불가해 그 자체일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어린이는 어른이 지나쳐버린 진실을 보는데 어른들은 어린이를 유치하다고만 여기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청 장관이자 아동 심리치료의 대가로 꼽히는 가와이 하야오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현실은 다층적이어서 진실은 여러 가지일 수 있는데, 어른들은 늘 진실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이의 '어긋난' 대답은 유치하거나 혼란스러울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린이 책을 읽는다'에서 아이를 이해하는 효과적 방법으로 아이의 영혼이 녹아 있는 어린이 문학을 읽으라고 권유한다. 왜 어른의 말이라면 무조건 "아니, 아니"라며 도리질을 치는지, 강아지를 사주지 않는다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섧게 울어대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어른이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의 열쇠가 그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내 이름은 삐삐롱 스타킹'의 주인공 소녀 삐삐는 부모 없는 고아이므로 어른들 기준에서는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기에 그 누구의 구속 없이 혼자 큰 집에서 자유롭게 사는 삐삐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다. 삐삐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다른 아이의 얘기에 "우리 엄마는 천사이고 아빠는 식인종 왕이라 나는 평생 바다만 돌아다녔는데 어떻게 매일 참말만 할 수 있느냐"고 대꾸한다. 어른이 보기에 이는 '궤변'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린이 독자들에게 삐삐의 대답은 신선하고 이치에 닿는다. 기존의 상식 틀에서 생각해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독한 어른의 시각이다. 이 책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에리히 케스트너 등의 명작 12편을 분석했다. 함께 출간된 '판타지 책을 읽는다'도 세계 3대 팬터지 소설로 꼽히는 '어스시의 마법사' 등 팬터지 명작 13편을 통해 어린이 심리의 저 밑바닥까지 깊숙히 발을 뻗는 시도를 보여준다.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