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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트럼프와 푸틴은 그 결혼식에 갔을까 못 갔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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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한 어느 결혼식 사진이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남동부의 슬로베니아 접경 마을에서 열린 결혼식의 신부는 카린 크나이슬. 53세의 현직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죠. 그가 사업가인 볼프강 메일링어와 웨딩 마치를 울리는 자리에 푸틴 대통령이 참석해 신부와 축하 댄스까지 춘 것은 매우 이례적인 나들이로 여겨졌습니다.

웨딩 하객의 정치외교학

지난 8월18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카린 크나이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의 결혼식에 참석해 신부 크나이슬 장관과 축하댄스를 추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8월18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카린 크나이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의 결혼식에 참석해 신부 크나이슬 장관과 축하댄스를 추고 있다.[AP=연합뉴스]

‘조문 외교’라는 말에 비해 ‘하객 외교’란 말은 흔치 않습니다. 일단 현직에서 결혼하는 정치·외교인이 흔치도 않고 아무리 유명인이라도 장례식에 비해 결혼식은 훨씬 가족적이고 친밀한 행사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최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현직)의 자녀 결혼식에 여야 정치인이 집결한 것처럼 이따금 공개되는 정치인 가족의 결혼식은 화제와 메시지를 낳기도 합니다. [알쓸신세-고 보면 모 있는 기한 계뉴스]가 웨딩 게스트의 정치&외교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오바마도 트럼프도 로얄 웨딩 초청 못 받아

지난 4월 영국 왕실 사무를 담당하는 켄싱턴궁 대변인은 “다음달 열리는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 정치인은 일절 초대되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굳이 이렇게 못 박아 밝힌 이유는 결혼식을 둘러싼 한가지 루머 때문이었습니다. 해리 왕자가 ‘절친’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초청하고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은 제외할 거라는 루머였죠.

해리 왕자는 2014년 열린 첫 번째 상이군인 올림픽 ‘인터빅스 게임’에서 이를 후원한 오바마와 친해진 뒤 우정을 이어왔습니다. 반면 트럼프와는 개인 친분이 없어 굳이 결혼식까지 부를 이유가 없었죠. 게다가 신부인 마클이 해리와 만나기 전 평범한(?) 배우였을 때 TV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를 가리켜 “여성을 혐오한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눈이 쏠리는 ‘로얄 웨딩’에 오바마만 부르는 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왕실은 테리사 메이 총리 등 자국 정치인도 일절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5월19일(현지시간) 열린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세기의 결혼식엔 왕실 방침에 따라 정치인은 일절 초대되지 않았다. [AP=연합뉴스]

지난 5월19일(현지시간) 열린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세기의 결혼식엔 왕실 방침에 따라 정치인은 일절 초대되지 않았다. [AP=연합뉴스]

사실 영국 왕실은 그 전에 결혼식 하객 초청 여부를 놓고 곤욕을 치른 바 있습니다. 2011년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때 보수당 출신 총리였던 존 메이저와 마거릿 대처는 초청장을 받은 반면 노동당 출신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은 초청받지 않아 차별 논란이 벌어졌거든요. 당시 왕실 측은 메이저 전 총리가 초청된 것은 총리 자격이 아니라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후 윌리엄 및 해리 왕자의 후견인으로 지명됐던 인연이었다고 설명했지만 노동당의 불만을 잠재우진 못했습니다.

앞서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결혼식 당시에는 해럴드 맥밀런, 앨릭 더글러스-홈,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제임스 캘러헌 등 전 총리들이 모두 초청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왕실 측은 “왕세자 결혼식과 왕세손 결혼식의 의전이 같을 순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에선 “블레어의 부인 셰리 여사가 왕실 인사들에게 무릎을 굽혀 절하는 것을 거부한 것 등 때문에 왕실이 블레어나 브라운 전 총리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다이애나비 스토킹하듯 구애"

트럼프 본인이 해리 왕자 결혼식에 초대되길 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와 영국 왕실 사이에 숨겨진 ‘악연’이 영국 선데이타임스를 통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고 다이애나비와 친분이 있던 영국의 유명 방송진행자 셀리나 스콧에 따르면 다이애나비가 찰스 왕세자와 결별한 뒤 트럼프로부터 스토킹에 가까운 구애 공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트럼프가 하나에 수백 파운드씩 하는 꽃다발을 융단폭격하듯 켄싱턴궁(다이애나비의 거처)에 보냈다”는 거죠. 꽃과 난초가 쌓이자 다이애나비가 “소름이 끼친다”면서 대책을 묻기도 했는데 스콧은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중앙포토]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중앙포토]

이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트럼프가 다이애나비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트럼프는 1997년 발간한 자서전 『거래의 기술』에서 "여성과 관련해 단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다이애나 스펜서와 연애를 해보지 못한 것이다. 다이애나비는 매력이 넘쳐흘러 그 존재만으로도 방을 환하게 밝히는 진정한 공주였다"고 썼습니다.

아베 총리까지 동반해 결혼식 깜짝 등장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생면부지의 사람들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기도 했다는 것, 아시나요.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해 6월10일(현지시간)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 결혼식의 피로연에 불쑥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하객들이 트럼프를 에워싸고 "U.S.A."를 연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과 기념 사진도 찍었습니다. 일부 지지자 하객들에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적힌 트럼프 빨간 모자를 선물하기도 했답니다.

그가 이 결혼식에 나타난 건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이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이었죠. 트럼프는 종종 베드민스터에서 주말을 보내는데 대통령 취임 전에도 ‘클럽 오너’로서 일반인의 결혼식에 쇼하듯 등장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 결혼식장 홍보 브로셔에는 한 때 “트럼프가 기회가 되면 당신의 경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안내문구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이 문구가 삭제됐다고 하네요.

2017년 6월 자신이 소유한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열린 일반인의 결혼식 피로연에 깜짝 나타나 흥겨운 시간을 보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인스타그램]

2017년 6월 자신이 소유한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열린 일반인의 결혼식 피로연에 깜짝 나타나 흥겨운 시간을 보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인스타그램]

트럼프는 앞서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자신의 소유인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결혼식에도 깜짝 참석했습니다. 신부의 부모가 오랜 동안 마라라고 클럽 회원인데다 트럼프에게 거액의 정치후원금도 보낸 지지자라는군요. 그런데 혼자 간 게 아니라 당시 마라라고를 방문 중이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였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통해 "오늘 (마라라고 리조트) 잔디밭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그들을 봤고, 그래서 내가 아베 총리에게 '신조, 같이 가서 인사합시다'라고 제안했다"며 피로연 참석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날은 공교롭게도 북한이 트럼프 취임 후 첫 미사일 발사 도발을 한 날이었습니다. 미·일 정상의 만찬 도중 들려온 발사 소식에 양국 안보 관계자들이 자국 정상에게 다가가 사태를 긴급 보고 하는 등 긴장감이 일었죠. 트럼프와 아베는 이 만찬장에서 북한 미사일 규탄 회견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소 한가하게 결혼식 피로연을 나란히 찾아간 사실을 두고 미국 언론이 비판적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2월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한 후원자 자녀의 결혼식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인스타그램]

2017년 2월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한 후원자 자녀의 결혼식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인스타그램]

2017년 2월 자신이 소유한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일반인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해 다른 하객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인스타그램]

2017년 2월 자신이 소유한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일반인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해 다른 하객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인스타그램]

왕실 혹은 정치인의 결혼식은 공개적으로 치러질 경우 그 자체가 국민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합니다. 지난해 1월 네팔의 비디아 데비 반다리 대통령의 차녀 결혼식이 그러합니다.

네팔 전 국왕의 8년 만의 '외출'

당시 결혼식엔 2008년 왕위에서 축출되고 평민으로 격하된 갸넨드라 전 국왕이 참석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수도 카트만두의 나라얀히티 왕궁을 떠나 칩거하며 살아온 갸넨드라 전 국왕이 정부 요직 인사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비춘 건 무려 8년 만이었습니다. 전직 군주로서 품위를 잃지 않은 채 갸넨드라는 새로 결혼한 커플과 반다리 대통령을 축하했다고 합니다.

갸넨드라는 2001년 왕세자의 총격으로 비렌드라 국왕 부처를 비롯한 왕실 일가족이 몰살당한 ‘피의 만찬’ 이후 왕위를 승계해 네팔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폭정에 항거한 마오이스트 반군과 이들을 지지하는 민주화 시위에 무릎을 꿇고 권력을 선출직 공화국 정부에 이양했습니다. 그런 이후 껄끄러울 수밖에 없던 집권당 관계자들과 전 국왕이 대통령 혈육의 결혼식을 통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인 겁니다. 네팔 현지에선 국민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 집권 여당(CPN-UML)이 국민들의 왕정에 대한 향수를 끌어들이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런 정치적 분석은 이번 푸틴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결혼식 참석에서 더욱 극명해집니다. 푸틴과 크나이슬 장관 사이에 어떤 개인적 친분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푸틴이 지난 6월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을 때 크나이슬 장관이 그를 결혼식에 초대했다고 합니다. 푸틴은 이 초청을 받아들인 이유로 신랑인 메일링어가 “유도 선수 출신”이라며 “이것이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고 말했답니다. 스포츠광인 푸틴은 국제유도연맹(IJF)이 인정한 유도 8단이기도 합니다.

지난 8월18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카린 크나이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의 결혼식에 참석해 신랑 신부의 답례 인사말을 듣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월18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카린 크나이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의 결혼식에 참석해 신랑 신부의 답례 인사말을 듣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푸틴, 슈뢰더-김소연 결혼식에도 참석?!

그럼에도 이례적으로 다른 나라 장관 결혼식까지 참석한 것을 두고 정치적 해석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크나이슬 장관이 오스트리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극우 자유당 소속으로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관계 강화에 공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단순히 개인적 초청으로 볼 수 없다는 거죠. 오스트리아 야권에서는 중립국으로서 위상을 저해시킨 행위라며 크나이슬 장관을 성토하고 나섰습니다. 러시아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나오자 푸틴은 “(결혼식은) 흥겨운 행사이긴 했지만 크나이슬 장관,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와 '사업 얘기'를 할 기회이기도 했다”면서 놀러간 게 아니라는 취지로 강조했다는군요.

그런데 ‘결혼식 하객’ 푸틴을 어쩌면 올 가을에 다시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10월 5일 한국인 김소연씨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푸틴과 워낙 친밀한 관계란 건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러시아 언론이 최근 “푸틴이 슈뢰더 전 총리의 결혼식 축하연에 참석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실 트럼프 정부 들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위금 분담 문제 등으로 미국와 유럽 관계가 껄끄럽고, 이 와중에 독일과 러시아가 에너지 문제 등으로 부쩍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라 푸틴의 나들이는 또 다른 정치적 해석을 부를 듯 합니다. 이에 대해 크렘린(대통령궁) 측은 "현재로선 아무 정보가 없다. 아무 결정도 내려진 게 없다"고 밝혔습니다. 혹시 푸틴 대통령이 결혼식에 참석하면 신부 김소연씨와도 축하 댄스를 추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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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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