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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하시죠" 농반진반 트윗에 응한 독재자 에르도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최악 위협”이라던 에르도안, SNS로 젊은층과 소통 활발 #최고령 지도자 말레이 총리도 셀카 올리는 등 적극적

국제적 트렌드가 된 ‘마초이즘(남성성 과시)’ 지도자로 거론되는 대표적 인물들입니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보인다는 이유에서죠. 이들을 묶는 또 다른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소셜미디어(SNS) 입니다.

최근 하버투르크 등 터키 언론은 “트위터에 트럼프가 있다면 페이스북에는 모디, 페리스코프(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 앱)에는 에르도안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트럼프는 하루 평균 7차례 이상 폭풍 트윗을 날릴 정도로 ‘트윗광’인데요. 이에 못지않게 모디 총리와 에르도안 대통령 역시 SNS에서 맹활약하고 있다는 겁니다.

“많은 나라의 리더들이 조간신문이나 저녁 뉴스가 아닌 트위터·페이스북에 빠진 세대에게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도 같은 맥락일 텐데요. 이번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서는 스트롱맨의 SNS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SNS 슈퍼스타, 나야 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앙카라에 있는 일디림 베야지트 대학교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사후르 식사를 하는 모습. [데일리 사바 캡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앙카라에 있는 일디림 베야지트 대학교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사후르 식사를 하는 모습. [데일리 사바 캡처]

“친애하는 대통령님, 우리의 게스트가 되어 함께 사후르(라마단 금식 전 식사)를 할 수 있으신지요.”

터키 일디림 베야지트대학 치대생인 균골 아탁이 지난 5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보낸 트윗입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초청에 “(마실) 차가 준비되면 가지요.” 이런 트윗을 에르도안이 보냈는데요.

다음 트윗에는 그가 실제 학생들을 만나 사후르 식사를 하는 영상이 올라왔죠.

한 대학생의 농반진반 트윗에 대통령이 흔쾌히 응한 것인데요. 이례적인 모습은 큰 화제가 됐습니다. SNS가 사회에 “최악의 위협”이라 지적하던 에르도안인데 말이죠. ‘언론 탄압 독재자’라는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노력인 걸까요.

이 소식을 전하면서 터키 일간 데일리 사바는 “에르도안은 SNS에서 가장 활발하고 영향력 있는 세계 지도자 중 한 명”이라며 “젊은 유권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 SNS를 활용해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에르도안은 트위터의 생방송 앱인 페리스코프를 특히 애용한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청년들과 기술을 주제로 한 미팅 현장을 터키어, 영어, 아랍어, 러시아어 등 4개국 언어로 실시간 중계하기도 했습니다. 페리스코프에서 그의 팔로워는 7만명을 넘어서는데,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넘버 원’이라는 게 데일리 사바의 설명입니다. 시청자 수도 웬만하면 10만명을 거뜬히 넘는다고 합니다.

터키 정부과 관리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실시간 중계 홍보 영상 화면. [트위터 캡처]

터키 정부과 관리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실시간 중계 홍보 영상 화면. [트위터 캡처]

사실 진정한 SNS의 달인은 따로 있는데요. ‘트위터 황제’ 트럼프도 페이스북에선 따라가지 못하는 인물이 있으니 모디 인도 총리입니다. 트위터 팔로워 순위로는 전 세계 정치 지도자 가운데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트위플로머시 2018), 페이스북에서는 가장 많은 추종자(약 4300만명)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깨끗한 인도를 만들자는 ‘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위해 직접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청소한 뒤 전후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 몰이를 했죠. 2016년 취임 2주년을 기념해 처음 총리 공관에 90대의 어머니를 초대한 사진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지난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뉴델리에서 빗자루로 거리를 쓸며 ‘클린 인디아’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뉴델리에서 빗자루로 거리를 쓸며 ‘클린 인디아’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모디는 젊은 세대의 열망에 맞춰 ‘(IT) 기술에 능한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성공적으로 사용해왔다. 정치적 언급은 최소화하고 가벼운 인사나 애도 표현 등 일상적인 메시지를 주로 게시했다”는 게 조요지트 팔 미시간 인포메이션 스쿨 부교수의 설명입니다.

외교 무대에서도 SNS를 적극 이용했는데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직후에는 트위터에 한국어로 축하 인사를 올리기도 했죠. 2015년에는 앙숙인 파키스탄을 방문해 나와즈 샤리프 총리를 만난다는 계획을 언론이 아닌 트위터로 깜짝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장관 해고나 각국 정상회담 소식, 무역정책 등 메가톤급 이슈를 100자 내외 트위터로 알려왔듯 말입니다.

WSJ의 ‘어떻게 인도 나렌드라 모디가 소셜미디어의 슈퍼스타가 되었나’란 기사에 따르면 모디 총리에겐 청년 20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이 따로 있어 그의 SNS 계정 관리에 도움을 준다고 하네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

가짜 팔로워 논란이 일 정도로 페이스북 인기에 집착(?)하는 스트롱맨도 있습니다. 33년째 캄보디아를 통치해왔고 최근 또 집권 연장에 성공하면서 세계 최장수 지도자 자리를 넘보는 훈센 총리이죠. 그는 민생 행보뿐 아니라 휴가 기간 러닝셔츠 차림으로 해변에 있는 모습 등 사생활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거침없이 포스팅합니다. 그를 팔로잉하는 사람은 지난 4월에만 해도 캄보디아 20세 이상 인구와 맞먹는 975만명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1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그의 팔로워와 글에 달린 ‘좋아요’ 수치가 인도네시아 등의 ‘클릭 농장(click farm)’에서 구입한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를 페이스북 본사가 밝혀 달라며 지난 2월 미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휴가 기간 해변가를 찾은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페이스북 캡처]

휴가 기간 해변가를 찾은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페이스북 캡처]

세계에서 가장 고령의 지도자인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어떨까요. 15년 만의 재집권을 위해 이번 총선에서 10명 중 4명 가량을 차지하는 20~30대의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지지를 얻는 게 필수적이었는데요. SNS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합니다. 총리의 트위터 계정 매니저인 사이예드 사디크 사이예드 압둘 라만은 “그저 입력만 도울 뿐, 총리가 모든 걸 다 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지난해 12월에는 영화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를 본 뒤 “다크포스와 싸울 영감을 얻으려면”이란 말과 함께 아내와 찍은 셀카를 올렸습니다. 특유의 재치로 젊은 감성을 드러내 보려는 흔적이 엿보이지 않나요. 게시물은 크게 바이럴 됐고, 8500건의 리트윗과 1만5000건의 ‘좋아요’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영화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를 본 뒤 아내와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린 사진. [트위터 캡처]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영화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를 본 뒤 아내와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린 사진. [트위터 캡처]

이를 두고 아디브 잘카플리 브라이언스 앤드 파트너스 애널리스트는 “그(마하티르)는 다시 태어났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독재자 마하티르’는 찾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외에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도 “소셜미디어의 힘으로 권력을 장악한 대통령”(CNN)이란 말이 따라붙는 인물입니다.

 ‘트위플로머시 2018’ 보고서에 따른 세계 지도자들의 트위터 팔로워 순위. [버슨마스텔러]

‘트위플로머시 2018’ 보고서에 따른 세계 지도자들의 트위터 팔로워 순위. [버슨마스텔러]

SNS가 외교 장외 전쟁터 되기도

SNS는 때로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는 장외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브로맨스’를 연출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선언을 했는데요. 당시 프랑스 외교부는 백악관이 게시한 트위터 영상에 “파리 협정을 떠나는 것은 미국과 세계에 좋지 않다”라는 입장을 밝혀 공개적으로 동맹국을 책망했고, 이는 1만9000건 이상 리트윗됐다고 합니다.

아이티, 엘살바도르 등 중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겨냥해 트럼프가 ‘거지소굴(shithole)’이라고 한 데 대해 해당국들은 "우리는 그런 모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트위터를 통해 표명하기도 했었죠.

디지털 외교가 중요해진 만큼 외교 당국도 SNS에 소홀히 할 수 없는 현실인데요. 실제 ’트위플로머시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 193개 회원국 가운데 131개국의 외교 당국과 107명의 외무장관이 트위터 계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게시물. [트위터 캡처]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게시물. [트위터 캡처]

앞서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이중 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 관련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식으로 양국의 갈등이 치달았을 때 러시아가 반격 창구로 활용한 것도 SNS였습니다.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공식 트위터 계정에 얼음에 꽂힌 온도계 사진을 올리면서 “영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영하 23도로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적었는데요. CNN은 당시 “러시아가 서방의 공격에 맞서 프로파간다용 조롱과 풍자를 (온라인상에) 쏟아내고 있다”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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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 구닛스카이 토론토대 정치학과 부교수는 “통치자는 체제의 안정성과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점점 많이 이용한다”며 “소셜미디어는 상대적으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민심을 읽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지자에게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담론의 윤곽을 형성하는 편리한 수단이라고도 덧붙였죠.

최근에는 SNS가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른 가짜뉴스의 확산 통로로 지목돼 각국이 골머리를 앓는 상황입니다. SNS에 세금을 물린다거나(우간다) 가짜뉴스를 방치하는 소셜미디어 기업에 최고 650억원의 벌금을 물리기로 하는(독일) 등 말입니다. 영국에선 출처 식별을 위해 디지털 날인을 의무화한다고 발표했죠.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는 말이 SNS 정치에도 예외가 아니란 의미일 겁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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