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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까지 똑같은 전교 1등 쌍둥이…교사들 “터질 게 터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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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교무부장은 학교의 고사 관리 총괄업무를 맡고 있고, 결재라인에도 포함돼 있습니다. 본인이 원하면 며칠 동안 시험지를 캐비넷에 보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시험문제를 유출할 수 있다는 얘기죠.” (안재훈 전 강남 언남고 교장)

“저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확대돼 교사들의 입김이 세질 때부터 학교 현장의 비위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이번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강원도 한 일반고 진학 부장)

지난 16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 관계자가 시험지 유출 의혹이 제기된 서울 강남구 한 고등학교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 관계자가 시험지 유출 의혹이 제기된 서울 강남구 한 고등학교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서울 강남 A여고에서 현직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이 나란히 문‧이과 전교 1등을 한 것을 두고 시험지 유출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교사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대입에서 수시가 확대되면서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의 중요성이 커졌고, 교사 재량이 확대된 만큼 시험지 유출 같은 부정행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남 A여고 시험지 유출 의혹 후폭풍 거세 #대입 수시 확대되면서 내신 중요성 커져 #교사들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유출 가능"

시험지 유출사건은 최근 5년 동안 한해 2건 이상 벌어지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고교 시험지 유출 등 부정 현황 자료’(2014~2018년)에 따르면 고교 시험지 유출 사건은 모두 13건으로 한 해 평균 2.6건이 일어났다. 공립고 6건, 사립고 7건으로 공사립에 상관없이 발생했다. 또 2014년 1건, 2015년 2건, 2016년 3건, 2017년 4건, 올해 1학기 3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고등학교 3학년 시험지 사본 [연합뉴스]

고등학교 3학년 시험지 사본 [연합뉴스]

강남 A여고를 제외하고도 시험지 유출 사건은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학생이 시험지를 유출한 게 2건, 행정직원이 빼돌린 게 1건이다. 지난달 초에는 서울의 한 자율형사립고 학생 2명이 교무실 창문으로 침입해 시험문제를 빼내는 일이 있었다. 또 광주 한 사립고에서 고교 행정직원이 인쇄과정에서 시험지 원안을 빼내 학부모에게 전달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6월에는 부산 한 특목고에서 고3 학생 2명이 교사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 기말고사 시험지를 유출했다 적발됐다.

매년 반복되는 시험지 유출에 대해 교육부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남 A여고 사태로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相避制)’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찬반논란이 거세다. “교사의 양심에만 맡기지 말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보완책이 있어야”는 찬성 측과 “교사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자녀에게 시험지를 유출하거나 학교생활기록부를 정정하는 것은 극히 일부의 일탈 행위”라는 반대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수시전형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현 대입제도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신동원 전 휘문고 교장은 “보통 1년에 4번 치르는 중간‧기말고사 중에 한 번이라도 망치면 수시로 대학 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며 “내신 시험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런 부정행위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3 시험지 유출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수사관이 사건이 발생한 광주 한 고등학교에서 챙겨온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고3 시험지 유출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수사관이 사건이 발생한 광주 한 고등학교에서 챙겨온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A여고의 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해 경찰에 수사 의뢰를 검토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4일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두 딸이 시험에서 같은 오답을 적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했다. 하지만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두 딸에게 시험 문제를 사전에 유출했는지에 대한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또 교무부장이 학교의 고사 관리 총괄업무 담당이고 결재선이라는 의혹도 사실로 확인했다. 쌍둥이 자매의 1학년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었는데 2학년 때 최상위권에 올랐다는 주장도 맞았다. 쌍둥이 딸 중 문과생은 1학년 1학기 때 121등, 이과생은 같은 시기에 59등을 했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16~22일 진행한 특별검사 결과는 오는 30일 발표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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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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