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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섬마을 어린이들 “버스 속으로 영어 여행 떠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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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오지마을을 찾아 영어 교육을 하는 ‘펀 잉글리시 버스’에서 초등학생들이 원어민 강사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 영진전문대·대구경북영어마을]

오지마을을 찾아 영어 교육을 하는 ‘펀 잉글리시 버스’에서 초등학생들이 원어민 강사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 영진전문대·대구경북영어마을]

지난달 초 경북 울릉군 울릉한마음회관 앞. 노란색과 살구색이 섞인 버스 한 대가 나타나자, 저동초교 학생 24명이 버스 앞으로 우르르 달려들었다. “뭍에서 영어 버스가 왔니더”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원어민 교사 2~3명 탄 ‘펀 버스’ #울릉·청송 등 오지 마을 찾아가 #버스 안엔 영어체험 공간 갖춰 #3년간 초등생 1만 명에 영어 교육

버스가 멈춰서고, 마거릿 케이시(26)와 다이마 윌리엄스(32), 질리란 시퓨엔테스(28) 등 3명의 미국인 강사가 내려 “Nice to meet you. Let’s have fun(만나서 반갑다. 재밌게 지내자)”이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아이돌 가수를 만난 것처럼 “진짜 반갑니더”라고 외치며 손뼉을 쳤다. 울릉도엔 원어민이 가르치는 영어 회화 학원이 따로 없다.

학생들은 영어 버스에 올라타서 도심 학원에서나 할 수 있는 세계 국가 알아맞히기 게임, 물건 사고팔기, 직업 체험 같은 다양한 영어 회화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이렇게 영어 버스는 뭍에서 11시간 배를 타고 입도해 지난달 3일부터 6박 7일간 울릉도 이곳저곳을 다니며 학생들에게 영어 체험을 선물했다. 전지윤(11)양은 “영어로 하는 세계 국가 알아맞히기 게임이 흥미로웠다”고 했고, 이예린(11)양은 “섬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원어민과의 수업이라 재밌었다”고 말했다.

오지마을을 찾아 영어 교육을 하는 ‘펀 잉글리시 버스’에서 초등학생들이 원어민 강사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 영진전문대·대구경북영어마을]

오지마을을 찾아 영어 교육을 하는 ‘펀 잉글리시 버스’에서 초등학생들이 원어민 강사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 영진전문대·대구경북영어마을]

오지 마을만을 찾아다니는 영어 버스 ‘펀 잉글리시 버스(Fun English Bus·사진)’가 운영 3년을 맞았다. 국내 유일한 영어 버스는 원어민을 보기 힘든 경북의 농·산·어촌을 찾아 시골 학생들에게 영어 회화 프로그램 체험 기회를 준다. 2016년 7월부터 최근까지 3년간 영어 버스가 찾은 오지는 울릉군·봉화군·울진군 등 경북 23개 시·군. 영어 버스가 영어 체험을 선물한 학생만 112개 초등학교, 1만815명이다.

시골학생들에게 ‘펀 버스’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영어 버스는 6000여 만원을 들여 45인승 관광버스를 개조한 작은 영어 교실이다. 좌석을 모두 뜯어내고 그 자리엔 세계 역사 문화 체험공간, 직업소개 공간, 물건 사고팔기 공간 등 4개의 영어 체험프로그램 환경을 구축했다. TV·스피커·헤드폰·화이트보드 등도 갖췄다. 자체 발전기가 버스에 달려 있어 엔진 시동을 끈 상태에서도 소음 없이 수업이 가능하다. 원어민 교사 2명 이상이 항상 버스에 머물러 있다.

영어 버스 [사진 영진전문대, 대구경북영어마을]

영어 버스 [사진 영진전문대, 대구경북영어마을]

영어 버스는 경상북도가 시골 학생들에게도 원어민 영어 체험 기회를 제공해야겠다는 구상에서 시작됐다. 운영비로 연간 3억6000여 만원(연간 150회 이상 버스 운행)을 마련했다. 버스 운영은 50명의 원어민 강사를 보유하고 2007년부터 ‘대구경북영어마을(2만5844㎡규모 숙박형 영어 체험 시설)’을 운영 중인 영진전문대학에 맡겼다.

8월 한 달을 쉰 영어 버스는 다음달 3일 경북 청송군 산골로 들어간다. 이후 10월 군위군, 11월 영양군, 12월 고령군 등을 찾는다. 카밀라 화이트(49·여) 대구경북영어마을 주임 교수는 “8월 등 방학 일부 기간을 빼고 영어 버스는 시골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같이 시골 길을 달린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영어 버스는 경북을 넘어 경남 등 다른 지역 오지 마을로도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자체를 찾아가 시골 학생들이 영어 버스를 얼마나 흥미로워하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한다.

이진영(51) 영어 버스 팀장은 “실제 경남 창원시와 양산시가 직접 영어 버스를 찾아와 운영 방법 등을 보고 갔다”며 “전라도, 충청도 등 영어 버스가 전국 팔도 오지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시골 학생들에게 무료 영어 체험 기회를 줄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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