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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드러낸 「5·17 시나리오」|광주청문회 이틀 중간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광주 민주화운동 발발과 동기규명에 집중된 18, 19일의 1차 광주청문회는 열쇠를 쥔 전두환·최규하 두 전대통령의 증언거부,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주영복 전국방장관 등 당시 핵심책임자들의 불성실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5·17 비상계엄확대조치 이전에 이미 국보위설치와 국회해산문제도 논의됐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5·17 조치의 정당성을 뒤엎고 따라서 「광주사태」의 재조명에로 접근하는 계기를 만들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광주문제는 도저히 합치될 수 없는 두 주장이 대립된 가운데 8년6개월 동안 한으로 응어리져 왔었다. 즉, 지난날 5공 정부는 5·17조치는 당시의 급박한 국내외 위기 상황에 대처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광주사태는 용공사상을 가진 김대중씨의 사주와 배후조종에 기인된 것이라 주장해왔다.
반면 피해자와 야당 측은 5·17조치는 소수 정치군인이 정권탈취를 위해 사전 계획한 사실상의 쿠데타로 김대중씨와 광주시민은 그 희생양일뿐이라고 거듭 항변해 왔었던 것이다.
이어 6공화국은 민화 위 등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이 군의 과잉진압도 한 원인이었으나 「피해자」의 책임도 없지 않았다는 양시론으로 후퇴, 사태해결을 모색해왔다.
이 같은 기조 위에서 열린 광주청문회는 결국 이·주 두 증인에 의해 원인규명의 분명한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다.
즉 ▲이씨는 80년5월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앞서 주씨로부터 국보위설치 얘기를 들었다고 실토했고 ▲주씨는 주요지휘관회의 직전 3군 참모총장 등 5명의 수뇌부모임에서 국보위설치를 제안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어 ▲그것이 당시 보안사의 정보처장인 권정달씨의 발상이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주씨는 17일의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이미 국회해산문제를 논의했던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5·17을 앞두고 모종의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음을 입증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정부가 유지해왔던 5·17 조치의 정당성에 근본 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번 청문회에서 야당의원은 국보위설치의 법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5월20일 군의 국회강점이 명백한 위법이라고 지적, 5·17전체를 군부 쿠데타로 몰아가고 있다.
야당 측의 이런 주장이 앞으로 있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재심에서 법적 뒷받침을 받을 수 있을지의 여부가 관심이다.
5·17의 성격이 바뀌게 되면 12·12 사태는 새로운 성격규명이 불가피해진다. 이씨는 『12·12가 잘못이 많았다』고 했으나 그 성격을 답변할 입장이 아니라고 회피했고 주씨는 『12.12 사태는 하극상이라기보다 당시의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라고 옹호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5·17이 정권장악을 목적으로 한 의도를 감춘 것으로 드러난다면 언제부터 그런 의도가 구상되기 시작했는가가 문제이고 야당은 이미 12·12가 그 싹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초점은 80년 정권창출의 전위기구였던 국보위가 정말 권정달씨의 개인생각이었느냐에 모아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권씨는 물론 전두환씨 등 당시 군부 실세들의 국회증언이 더욱 필요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야당 측은 이번 청문회 성과를 바탕으로 광주사태를 확고한 「민주항쟁」 또는 「의거」로 규정하고자 하나 민정당 측은 아직도 광주 쪽의 부분적 책임을 주장하는 군부 쪽 입장을 대변해 「광주」의 성격 규정에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따라서 당시 특전사령관인 정호용씨 등이 증인으로 등장하는 24일의 청문회는 「광주」 그 자체를 둘러싼 본격 공방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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