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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하순 권 처장에 90명 명단보고"|국회 문공위 청문회 지상 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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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0년의 「언론대학살」을 다룰 국회 문공위 청문회가 21일부터 시작됐다.
23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청문회에는 연 인원 30여명이 출석해 언론인 숙정·언론 통폐합·5공의 언론정책 등에 관해 의원들의 신문에 응하게 돼있어 광주청문회에 이어 또다시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용린(보안사 정보2과장) 전재오 김태진(보안사 언론담당) 한중혁(치안본부언론담당)씨 증언>
◇손주환 의원(민정) 신문
-정보 2과장의 역할은.
▲이용린씨=정보 2과엔 언론 담당계와 사회노동 분야 담당계가 있었으나 80년 3월말께 권정달 정보처장 지시에 따라 언론분야업무는 요원 5명과 함께 정식 명령에 따라 언론 대책반으로 이관됐다.
-80년 7∼8월 사이 어떤 기관에 의해 언론인 자율정화의 미명 아래 7백11명의 언론인이 강제로 해직된 사실을 아는가.
▲이씨=당시 해직·통폐합 등 언론문제는 언론 대책 반에서 전담했고 나는 귀동냥했을 뿐 구체적 업무수행에 대해선 전혀 들은바 없다.
-언론대책반의 책임자와 구성요원은.
▲이씨=책임자는 이상재씨며 정보2과에서 넘어간 5명, 대공 처에 근무하던 2∼3명, 문공부파견 1명 정도 있던 것으로 안다. 마지막으로 근무한 문공부직원의 이름은 김기철이었다.
-이씨의 신상기록을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부이사관이 되고 1개월만에 이사관이 되는가 하면 계급에 걸맞지 않은 핵심적인 일을 맡았다. 보안사 내에 이씨에 관해 불만이나 오간 얘기는 없나.
▲이씨=언론 대책 반에 나간 윤씨는 이씨보다 고참인데 그 밑에서 일하게 된데 대해 본인에게 불만을 토로했으나 특별한 임무이니 조직업무도 생각하라고 설득했다. 당시 보안사내에는 불만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씨의 언론 대책반은 보안사 편제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였다는 말인가.
▲이씨=그렇다.
-이씨의 언론 대책 반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일했나.
▲이씨=과장은 처장의 지시사항 외에는 독자적인 임무수행이 불가능하다. 정보처장보좌관이니 정보처장에게 보고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대책반 업무중에 증인이 확인한 것 중 중요한 일들은 무엇인가.
▲이씨=당시 분위기로 봐서 시청 검열단을 포함, 각 지역 검열단에 대해 지침이나 업무 조정 등을 했을 것이다.
권정달씨가 미국에서 회견한 내용을 본 후에야 나도 대책반의 구체적 업무를 알게 됐는데 언론인 해직·통폐합 등을 한 것으로 추측한다.
-해직 관계 서류는 어디에 있나.
▲이씨=업무를 관장한 부서에서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보안사 문서는 통상 3년이 경과된 후 폐기되는 것으로 알고있다.
◇박관용 의원(민주) 보충신문
-문공부에서 대책 반에 마지막으로 파견된 사람이 김기철씨라고 증언했는데 그 이전에는 누가 파견됐었나.
▲이씨=2월부터 정보 처의 언론정책에 대해 권정달 처장에게 언론자문을 위해 문공부 직원이 파견됐었다.
당시 권 처장은 이들 자문위원들을 통해 언론계 상황을 파악했고 문공부직원들은 4월에 대책반이 구성되자 그 쪽으로 파견돼 일했다.
문공부직원이 누구누구인지는 기억할 수 없다.
-이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았나.
▲이씨= 지시 받았다기보다 정보처장에 대해 자문역할을 했다.
◇박석무 의원(평민) 신문
-보안사에 출입해 언론문제를 논의한 문공부직원이 이수정·허만일·이경식씨 등으로 아는데 누군지 밝혀라.
▲이씨=나는 잘 모르고 대책 반에 있었던 전재오 증인에게 물어달라.
▲전재오씨=내가 대책반에 간 것이 80년 4월이며 당시에는 문공부에선 김기철씨 한 사람만 나왔다.
-김태진 증인은 보안사요원으로서 언론대책 반에 참여, 중앙일보·TBC를 출입한 적 있느 냐.
▲김씨=있다.
-무슨 일을 했나.
▲김씨=80년 5월 초 각 사에서 제작 거부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중앙일보에서 일어난 모든 사항에 대해 정보를 수집·보고했다.
-제작거부를 누가 했느냐.
▲김씨=기억이 안 난다. 제작거부사태는 음성적인 제작 거부 아닌 노출된 상태에서 일어났다. 소리도 지르고 소란스러웠다.
-어떤 사람이 그런 일에 종사하고 있었느냐.
▲김씨=당시 제작 거부 사태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이에 관한 정보보고서를 몇 차례에 걸쳐 썼다. 3∼4명을 주동자로 보고서에 썼다. 대부분 평기자였다.
보고서 쓰는 것이 나중에 처벌과 해직을 전제로 했었던 것은 아니다.
-정보 보고에 올린 기자가 3, 4명에 불과한데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답변거부가 아닌가.
▲김씨=기억이 안 난다.
-어젯밤 청문회에서는 손일권·윤승호 증인들이 80년 7월 초 이상재씨로부터 출입사의 문제 언론인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몇 명씩 올렸다고 증언했다. 중앙일보와 TBC 출입자인 증인에게는 유독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김씨=그런 지시가 없었다.
-타사 출입자에게는 그런 지시를 했으면서 증인에게만 왜 지시를 안 했다고 생각하는가.
▲김씨=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지시한 바 없고 개인적으로도 지시 받지 못했다.
-중앙일보. TBC의 해직기자와 증인과는 아무관계가 없단 말인가.
▲김씨=그렇다.
-그러면 누가 했나.
▲김씨=모르겠다.
-출입하면서 회사내용과 기자동태를 정확히 파악했을 증인이 모르면 누가 아는가.
▲김씨=5월부임 했을 때 제작 거부운동이 활발했고 당시 국장, 부장들의 이름을 외기도 힘들었다. 3, 4명의 기자들을 정보 보고서에 올리긴 했으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다.
-해직 이전 정보보고는 3∼4명만 올렸는데 결과를 보니 파악 못했던 명단도 많이 있었단 말인가.
▲김씨= 그렇다.
◇손주환 의원(평민) 신문
-증인은 검열단으로 구성된 태평회 회원이 아닌가.
▲김씨=아니다.
-전재오 증인은 회원인가.
▲전재오씨=그렇다.
-태평회의 회칙과 정관을 본적 있는가.
▲전씨=주간조선을 보고 알았다.
-태평회의 명예회원을 아는가. 구박 TBC앵커, 심명보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이 명예 회원 이 아니냐.
▲전씨=구씨는 잘 모르며 심씨도 들은바 없다. 심씨는 5월5일 가족모임에 놀러 갔다가 한번 봤다.
-회원 중 김기철 전 대구매일 기자, 이종덕 전 문공부 보도과장, 김한근 농림수산부 농정국장 등이 회원으로 본인이 자료를 입수하고 있다.
▲전씨-김기철씨는 회원이다. 나머지는 모른다.
◇조세형 의원(평민) 신문
-전재오씨와 김태진씨는 언론대책반원이죠.
▲전씨=언론 대책 반이란 명칭은 신문지상을 통해 알았다.
-이상재 팀이냐.
▲김씨=그렇다.
-김태진씨는 이상재 팀이냐.
▲김씨=그렇다.
-해직기자 혹은 문제언론인명단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나.
▲전씨=해직 기자명단을 만들라는 지시는 받지 않았다. 5월의 제작거부 및 검열거부 사태에 있어서 외근요원들의 상황속보를 정리해 보고를 올렸다. 문제언론인의 자료를 정리하라는 지시는 받았다.
-언론대책반의 구성인원은.
▲전씨=정보2과에서 온 5명, 문공부파견직원 1명이며 대공처에선 2∼3명이 아니라 본인 한 명이었다. 모두 7명이며 필경사 1명이 있었다.
-그들의 명단은.
▲전씨=윤승호·김태진·손일근·이건재·윤종태, 문공부 직원 김기철, 그리고 본인 등 7명과 팀장 이상재씨까지 8명이다.
-인원변동 없이 계속 함께 일했나.
▲전씨=8명이 계속 함께 일했다.
◇박관용 의원(민주) 신문
-김태진 증인이 TBC 모 간부를 만나 문제기자를 자체 해직토록 지시했는데 TBC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5명을 좇아내라」고 지명해 해직하라고 했고 그 명단에는 오홍근 기자도 들어 있지 않았느냐.
▲김씨=그런 사실이 없다.
-이병철·홍진기 회장을 보안사로 안내한 사람은 누구냐.
▲김씨=홍 회장은 내가 안내했고 이 회장 안내는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
-누구의 지시였는가.
▲김씨=당시 삐삐로 연락이 와 상황실로 전화를 하니 근무사병이 「사령관이 홍 회장을 뵙자고 한다」고 해 홍 회장을 모셔다 드렸다.
-그것도 위증이다. 정확히 몇 시쯤이냐.
▲김씨=홍 회장을 모시고 사령부 정문에 가니 컴컴했었다.
그때가 6시쯤이었다. 정문에 장교 1명이 나와있어 「중앙일보사장 홍진기」라고 한 뒤 그 쪽에 인계했다.
◇이철 의원(무소속) 신문
-김태진 증인이 받은 훈장표창은 뭐냐.
▲김씨=보국훈장삼일장·국난극복기장·문공 장관 감사장이다.
-정보 사찰 업무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니냐.
▲김씨=언론 팀에 나왔던 5명 모두 다 받았다.
◇최각규 의원(공화) 신문
-누구지시로 무슨 이유로 해직자 명단을 징계했는가.
▲전재오씨=언론사 출입자는 보안사 외근요원들이 자기 담당회사의 해직된 분들 명단을 내게 제출해 강 보좌관에게 보고했더니 강 보좌관이 참고 자료로 서울은 외근요원, 지방은 예하 부대를 통해 전부 취합해 올리라고 해 9월말에 보고했다.
-보안사에서 해직대상 블랙리스트 준 것을 알고있나.
▲전씨=전혀 그런 일없다.
-해직 기자명단은 원래 내준 명단과 실제 해직된 명단을 대조 비교하기 위해 만든 것 아닌가.
▲전씨=대조했으면 내가 기억하고 있을 텐데 대조한 일 없다.
◇이병용 의원(민정) 신문
-김태진 증인은 문제 언론인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없다면서 또 3∼4명은 보고했다고 했으니 지시도 안 받고 명단을 냈는가.
▲김태진씨=정보보고를 6하 원칙에 의해 하니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3∼4명이라 했고 TBC는 몇 명인가.
▲김씨=기억나지 않는다.
-윤승호·손일근씨 등은 출입 처의 문제언론인을 보고하란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는데 증인만 지시를 받은 일이 없단 말인가.
▲김씨=제작 거부 자 명단을 정보보고로 올렸을 뿐 보고하란 지시는 받은 일없다.
◇손주환 의원(평민) 신준
-김태진씨는 태평회에 가입한 일 없다고 했다.
▲김씨=우리 다섯 명은 회원이 될 수 없다.
-김씨는 회원이며 고유번호는 16번이다. 전재오씨는 명단·회칙 등을 신문보고 알았다는데 자신이 회원번호 52번으로 회원수첩을 받지 않았는가. 전씨는 자신이 받은 수첩에 명예회원 명단이 있는데 왜 말하지 않았는가.
▲전재오씨=심명보 의원은 5월5일 가족야유회에서 보았을 뿐 나도 내근자였기 때문에 기억을 하지 못한다.
◇김동영 의원(민주) 신문
-80년 6월9일 경향신문 서동구 편집국장 등이(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것이 언론탄압의 시작이다. 그때 어떤 지시를 받았고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한중혁씨=정보분실은 정보기능이었고 남영동은 대공수사기능으로 분리돼 있었고 나는 전혀 지시 받은 일없다.
-정보분실에서 언론을 담당했으면서 전혀 모른단 말인가. 정보보고에 의해 지명되는 것 아닌가.
▲한씨=양심을 걸고 파악 못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전혀 몰랐다.
◇강삼재 의원(민주) 신문
-정보2과에선 지방언론사정을 맡지 않았는가.
▲이용린씨=안 맡았다.
-대책반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이씨=지방도 대책 반에서 보고 받았다. 다만 초기에는 대책 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니 정보2과 명의로 지시가 내려갔고 정보2과로 보고가 올라와 손 계장이 받는 즉시 대책반에 넘겨줬다.
-전재오 증인은 데스크 역할을 맡았나.
▲전씨=그렇다.
-언론사 비리, 신문 사내정보·동향, 검열·제작 거부 자, 포고령거부·주동·동조자 등이 포함돼있는가
▲전씨=보도검열거부·제작 거부자 등의 명단이었다.
-그것이 해직의 근거자료가 된 것을 아는가.
▲전씨=정리한 건 사실이나 내 위치에서 어디에 쓰여지는가는 모른다.
-보고한 언론인 숫자는.
▲전=정확하지는 않으나 80명을 넘지 않는다.
-80년 7월초 이상재씨로부터 해직자 명단작성을 지시 받았는가.
▲전씨=그런 일이 없다.
-이씨가 치안본부·문공부 분실 등의 자료를 모아 전 증인에게 주면서 해직자 명단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는데.
▲전씨=그런 명단 작성을 지시 받은 일없다. 그때까지 문제언론인 명단을 작성해 보라고해 정리해 보고하니 이씨가 윗 분에게 보고한 후 관계기관자료를 줄 테니 재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그것으로 어떻게 했나.
▲전씨=그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 보고 6하 원칙에 맡지 않는 것은 외근요원에게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해직결과를 통고 받고 취합해본 일이 있는가.
▲전씨=있다.
-보고한 명단과 실제 해직 자 명단사이에 차이는 없었는가.
▲전씨=내가 만든 자료가 어떻게 쓰이는지 몰랐는데 80명을 넘지 않는다. 다만 7월말 참고자료로 만들어 준건 7백 명이 넘는다.
-누구에게 보고했는가.
▲전씨=이상재씨에게 했다.

<이상재(전 보안사 언론대책반장)씨 증언>
◇박석무 의원(평민) 신문
-일련의 자료검토와 앞선 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해직 및 언론통폐합에 대한 지난 문공위 감사 때의 증인 증언, 곧 『기자해직·언론통폐합에 아는바 없다』 『검열만 했을 뿐이다』 고 한 것은 위증임이 밝혀졌다. 80년 4월 누가 증인을 언론대책반장으로 임명했나.
『80년3월초 권정달 당시보안사정보처장이 불러 「검열 단을 지원하라」고 해 난색을 표명했으나 명령이라 받아들였다.
-당시 준위계급이었는데 언제 전역했나.
『9월1일이었다.』
-윤승호·손일근의 증언에 따르면 언론인해직당시 증인이 문제언론인을 파악, 명단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는데 사실인가.
『7월 권 처장으로부터 경찰·안기부·보안사의 정보보고서를 취합,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윗 분 지시여서 정확을 기해야 하는 만큼 아랫사람들에게 내용상의 차이점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국감 증언당시 태평 회와 관련, 「순수 검열 단원으로만 구성됐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후 이병찬 회장으로부터 못 마땅해 하는 전화를 여러 번 받고 회장이 회칙을 갖고 운영했으니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보도 검열단에 있으면서 증인이 검열지침을 하달했나.
『기본지침은 계엄사 보도처에서 내려 왔다]
-「학생 데모 후에는 휴지나 돌멩이를 치우지 말라」든가 「김일성 오판 말라」는 구호는 보도 금지하라는 지침을 내리라는 것은 사실인가.
『지침은 보도 처에서 내렸다.』
-당시 중앙일보 논설주간인 김승한씨가 기사를 통해 광주「시민」이라는 표현을 쓴데 대해 증인이 폭도요, 난동분자이지 왜 시민이냐며 시비를 걸어 결국 김씨가 해직 당했으며 증인이 사사건건 가로막아 사후복직·전직도 불가능했다는데.
『김씨는 이병찬 당시 대령과 함께 음식점에서 공손히 모신 일이 있다. 중요한 공직에 임명 될 때는 기관의 신원조회가 있게 마련이며 나와는 무관하다
◇조세형 의원(평민) 신문
-권정달 정보처장으로부터 받은 지시내용과 명단작성 경위는.
『해직관계를 권 처장으로부터 지시 받았다. 보도검열에 처음 부닥치는 게 검열과 제작 거부다. 이건 수시로 보고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7월 권 처장은 기왕에 보고한 문제의 포고령 위반자를 유관기관인 중정과 경찰의 협조를 받아 취합, 보고하라고 했다.
보고 때 와 달리 주동자란 걸 규명해야 하니 시간이 걸려 7월 하순쯤 보고했다.』
-몇 명이나 보고했나.
『90명 정도를 보고했다.』
-안기부, 치안본부와는 어떻게 협조했나.
『자료만 우리에게 넘겼다.』
-누가 자료를 가져왔나.
『실무자라 잘 모른다.』
-어느 부서인가.
『담당 부서가 있을 거다. 대공은 알지만 생소해서….』
-언론팀장이 기자 목을 날리는 중대한 일인데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르나.
『기억나지 않는다.』
-지방은.
『우리가 하지 않았다.』
-누가 했는가.
『우리는 임시기구라 행정력이 없었다.』
-최종 취합 안은 지방도 포함됐지 않은가.
『아니다. 90명 보고한 것 밖에 없다.』
-허문도씨와는 몇 번이나 만났나.
『4월말 처장 실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다. 그분과 나의 직책상 나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
-몇 번이나 만났나.
『업무상 만난 일은 없다.』
-증인은 국감 때는 검열 외 아무 것도 안 했다고 했는데 위증 아니냐.
『검열에 치중했다고 말했었다.』
-통폐합에도 관계했나.
『권 처장이 어디서 기록을 갖다주며 정리해달라고 해 정리해줬다.』
-언젠가.
『8월초에 받아 9월말께 드렸다.』
-중앙사와 지방사가 다 들어있었나.
『거의 완벽한 내용으로 일부만 손질했다.』
-그것과 실제의 차이는.
『나에겐 그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인원조정과 처우·복지개선 등의 문제가 많이 제기됐다.』
-신아 일보는 들어있었나.
『골격은 비슷하다.』
-TBC는.
『하나 하나 기억하기 곤란하다.』
-정리가 대필이나 하는 거냐.
『그런 거다.』
-증인은 붓글씨를 잘 쓰나.
『아니…보고하실 내용이 있다니 이렇게 정리해….』
-정리란 검토하는 걸 말하는 것 아니냐.
『우린 부작용 등을 검토했다.』
-거기에 명단은 없었나.
『명단은 있었으나 기억하지 못한다.』
-서울경제 폐간은.
『큰 골격은 비슷했다.』
-90명을 작성했다지만 실제 해직된 기자는 7백17명이다. 그 명단은.
『나로선 알 수 없다. 직속상관인 권 처장에게 보고 한 것뿐이다. 그분이 안 계신 게 답답하다 .』
-명단통고는 언론대책 반에서 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해직을 전제로 90명의 명단을 작성했는가.
『처장님의 큰 뜻은 모르나 포고령위주로 작성하라고 했다.』
-증인은 모든 걸 미국에 가 있는 권 처장에게 떠넘기는데 10월20일에는 검열 외에는 모른다고 했다가 오늘은 해직 자 명단을 취합했다고 하니 위증 아닌가.
『위증이 되는지 모르나 보도검열 유관업무고 보고 하다보니 취합하게된 것이다. 보도검열에 치중했다는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90명이 대부분 해직됐나.
『모른다. 확인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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