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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태국式 체제에 관심"

중앙일보

입력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자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현직 최고위급 인사였던 매들린 올브라이트(66) 전 장관의 회고록이 16일 발행됐다. 세 자녀를 키우는 이혼녀로서의 개인적 고통과 남성 위주의 정치판에서 성공하기까지의 역정이 자세히 담겨 있었다.

북한문제 못내 아쉬워=올브라이트는 "내가 평양을 방문하고, 이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까지 추진했던 2000년이 북.미관계를 풀 수 있었던 결정적 호기였다"고 언급한 뒤 "중동문제 등 뜻하지 않은 일련의 상황으로 당시의 화해분위기가 수포로 돌아가고 이 때문에 오늘날 부시 행정부 아래에서 북한문제가 위기로 치닫게 된 것은 두고두고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녀는 당시 북한에 대해 너무 온건하다거나 문제 해결을 서두른다는 공화당원들의 비판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심지어 대선 이후에도 막바지였던 미사일 협상을 마무리지으려 했으나 예상 밖의 개표 논란에다 정권교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2000년 10월 평양에서 만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상도 소상히 털어놓았다. 당시 金위원장은 분명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공산주의 체제나 자신의 권한에 대한 급속한 변화를 우려한 듯 서구식 또는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고 태국식을 검토 중이었다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 개방과 민주화는 하되 전통적 왕권에 못지않은 형태로 일단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체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 "金위원장에게 방미와 정상회담도 권유했지만 그는 이를 완곡히 거절했다"며 "아마도 이는 갑작스러운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속도조절이 그에게도 필요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金위원장은 그녀에게 "북.미관계 개선을 원하지만 군부가 반으로 갈라져 있고 외무성에도 반대파들이 많다는 점을 내비쳤다"고 밝혔다.

그녀는 金위원장이 예상과 달리 남의 말을 경청하는 훌륭한 대화상대자이자 대단히 실용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으며, 저녁 만찬 때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 자신에게 미국식 칠면조 요리를 김치와 함께 덜어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녀는 "金위원장이 1차회담 때 통역사의 영어 수준을 그 통역사를 통해 나에게 물어와 매우 당혹했으며, 2차회담 때에는 곧바로 다른 통역을 쓰는 모습에서는 착잡함 속에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최근 미국의 대북정책과 관련, "북한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인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빨리 붕괴될 나라가 아니며 1994년 제네바 협상처럼 진지하고 솔직히 임한다면 해결되지 않을 게 없다"고 밝혔다.

그녀는 또 자신이 조지타운대 교수 시절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대북정책에 관심을 가졌다고 밝힘으로써, 이것이 그녀의 재임기간에 코소보 지역에서는 폭격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북한에 대해선 온건적 시각을 갖게 된 배경이 됐음을 시사했다.

부시의 중동정책=그녀는 자서전의 상당부분을 할애해 부시 행정부의 대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과 이라크 전쟁에 대해 비판했다. 우선 부시 행정부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라파트의 추방.제거에 관심을 갖게 내버려둔 것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국무장관일 때도 아라파트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관심과 애정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이스라엘의 강경책이 그를 또다시 영웅으로 만들었고, 아라파트 자신도 "순교자로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최고의 천재=그녀는 미국의 대통령은 "유엔문제를 논의하다가도 의료보험이나 약값문제를 결정해야 할 정도로 두개 이상의 두뇌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클린턴은 모든 일을 무난히 처리했다. 그의 지적 능력은 무한대"라고 평가했다.

르윈스키 스캔들과 관련, 내각을 모아놓고 클린턴이 사과하던 날을 결코 잊지 못한다는 그녀는 "마치 누군가가 대통령을 완전히 파멸시키려 오랫동안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모든 악재가 꼬여서 터져나왔다"고 밝혔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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